▲ 기라재의 봄맞이 - 자연도 사람도 바쁘다

자연과 함께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류시화 님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구처럼, 모처럼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보겠노라고 컴퓨터를 펼치지만 얼마 못가서 밀짚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길을 나선다. 남자 나이 사십을 불혹(不惑)이라 한다는데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연이 유혹하기 때문이다. 온갖 새들이 불러내고, 단 내음을 품고 산과 들을 지나온 산들 바람이 유혹한다.

 

씨 뿌림하여 돋아나기 시작한 아기 꾸지뽕 떡잎이 얼마큼 자랐을지 궁금하고, 어린 사과나무랑 황칠나무 묘목이 비틀거리고 있지나 않는지, 하수오 줄기가 칡넝쿨에 목 졸려 있지는 않는지 궁금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반기는 것은 강아지뿐만이 아니다. 식물들도 보살피는 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밭에 가면 부모 잃은 아이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식물들도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자주 들으면 안정을 얻어 확실히 더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이는 맞는 말이다. 식물들도 안정적인 생육환경을 좋아하는지라 농부가 자신들을 불규칙적으로 보살피거나 건성으로 키우는 것을 알면 삐뚤어진다. 늘 성장하는 것을 지켜봐주고 바로 세워주고 쓰다듬어 주면 훨씬 예쁘게 잘 자란다. 식물들도 자신들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아는 것이다.

 

화단에 피는 꽃 들을 보면, 마치 학예회 때 무대에 나가기 위해 몸단장하며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겨우내 땅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꽃씨들이 봄이면 하나 둘씩 파란 움을 틔운다. 작약과 패랭이가 화사한 눈웃음을 짓고 떠나면, 수국이 불꽃놀이 하듯 어느 날 활짝 핀다. 그 다음을 이어 접시꽃과 어린 채송화와 봉숭아, 원추리가 꽃봉오리를 열었고 지금은 맨드라미와 코스모스가 제 차례를 기다리며 한껏 준비한다. 꽃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데 꽃이 웃는 모습이라니 반백이 된 이 나이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숲 속에는 나무와 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들과 인간들을 향한 은유가 존재한다. 날마다 숲속 학교에는 깨우침이 있다. 하나씩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기쁨으로 설렌다.

시간 따라 바뀌는 하늘의 모습, 구름과 빛의 향연, 별들의 음악소리,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속삼임, 철 따라 바뀌는 숲의 향기, 바람의 간지럼과 같은 자연과의 교류는 사람들과의 교감과는 또 다른 설렘을 준다.

 

이런 느낌을 SNS에 올렸더니 사람들이 좋아하며, 날 더러 시인이라고 하였다.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글이 써지는 것이다. 그저 숲속의 다양한 나무들, 들풀과 들꽃들, 구름, 산새, 다람쥐와 같은 자연이 내게 말을 거니, 나는 그들의 표정을 읽고 언어를 들으려고 노력했더니 그게 시의 재료가 되었나 보다.

 

시인이 되고 싶은 그대여! 귀농하시라. 자연과 함께라면 산으로 간 어부도 시를 쓴다하니, 원래 자연이었던 그대여! 더 늦기 전에 오시라. 이 생기발랄한 자연의 품으로.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