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으로 간 어부의 휴식

 

자연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자연과 이질적이지 않고 일체감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의 도가(道家)적 표현으로는 자연은 인위(人爲)의 반대말인 무위(無爲). 말 그대로 꾸밈없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원시인처럼 사는 삶이거나 야생동물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숲으로 들어오기 이전에도 원래 꾸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아직 샴푸나 린스 같은 것은 사용해 본적이 없고 화장품을 얼굴에 바른 것도 손꼽을 정도다. 옷치장이야 물론 말 할 것도 없고, 말이나 행동을 꾸며 본적도 없다. 희로애락조차도 그대로 모두 표현하니, 사람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가 양분된다. 어떤 이는 거칠다 하고 어떤 이는 순수하다 한다. 남에게 속을 그대로 보여주니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부적합하다는 말을 듣곤 하지만 태생이 그러한지라 인위적으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 성정이다.

결국 자연 속으로 들어와 자연에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인위적인 것을 일부러 버릴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모든 것이 말 그대로 자연스러웠다. 산에서 일하는 것, 먹고 자는 것이 동네의 어느 농부보다 더 농부 같았기에 그대로 동화되었고, 개울가에서 만나 고라니와 눈 마주치며 함께 계곡물을 마시니 산속 생명체들과도 이질감 없이 일체가 된 느낌이 들었다.

 

 

조선시대의 선비였던 김인후(1510~1560)의 시처럼 나는 절로 절로 자연과 일체가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속에 절로 절로 자란 몸이

늙기조차 절로 절로 하리라

 

자연이란 그저 절로 절로생긴 대로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하늘아래 제 스스로 저절로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특히, 자연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산다.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자연의 지혜를 깨닫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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