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이상 ‘히딩크의 아류’라고 부르지 마라"

한국 축구대표팀의 마지막 보루 딕 아드보카트 감독. 지난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룩한 ‘4강 신화’의 산물들을 최대한 활용해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필승의 다짐을 거듭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히딩크의 뒤를 이어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이나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한국 축구와 더불어 좌절과 몰락을 경험하며 쓸쓸히 물러서야 했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현재 아드보카트 감독은 히딩크 못지않은 능력을 보이며, 대표팀을 잘 이끌어주고 있는 편이다. 히딩크 감독이 써 내려간 ‘성공 신화’를 극복하고 한국 축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야할 막중한 책임은 이제 아드보카트 그의 어깨에 짊어져 있는 것이다. 쿠엘류나 본프레레 감독이 견뎌내지 못 했던 히딩크 시절과의 비교는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도 물론 큰 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감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히딩크가 이룩한 업적을 다시 한 번 이뤄보자.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히딩크가 부담스럽지 않다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는 오히려 히딩크 때보다 아쉬운 상황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히딩크 감독에게는 선수를 발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드보카트는 “히딩크 감독의 업적이 부담스럽다고 전임 감독들이 말했다지만 나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 그런 부분에 대한 경험을 많이 축적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하며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히딩크 전임 감독의 그림자를 극복하기 위한 그만의 해법은 바로 ‘닮은 듯 다른 꼴’ 전략인 것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네덜란드식 ‘토털사커’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분명 히딩크 감독과 전술적인 면은 물론 축구철학에 있어서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의 주위에는 4강 신화를 이룩했던 핌 베어벡 코치나 압신 고트비 비디오분석관, 홍명보 코치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다. 아드보카트는 그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히딩크의 업적에 버금가는 성적을 일구어 내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각오만으로 성적을 일구어 내기는 힘들다는 것을 아드보카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각오 못지않은 근거도 있다.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활약하는 해외파들의 기량이 3년 전 당시에 비해 한 단계 성숙된 점이다. ◈비슷하지만 분명 다르다 닮았지만, 또 다르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감독이 강한 압박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이나 처해 있는 상황은 또 다르다. 히딩크에게는 월드컵 개최국이라는 자존심이 달려 있었기에 전무후무한 전폭적인 지원이 제공 됐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아드보카트 역시 그에 못지않은 지원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중요도의 우위를 꼭 가려야만 한다면, 우리로서는 독일 월드컵보다는 한일 월드컵이 중요했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오랜 기간 자신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히딩크 감독과의 끊임없는 비교도 감내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때로는 히딩크의 ‘아류’라는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것 또한 마치 히딩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드보카트는 강인한 체력과 조직력이 살아 있는 공격적인 축구, 압박하는 축구를 추구한다.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다보니 수비가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포백 시스템을 통하여 수비 또한 많이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히딩크의 전술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때에는 4-4-1-1(4-4-2에서 투톱을 위 아래로 배치한 형태)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골을 많이 넣지 못하는 우리 대표팀에게는 이 포백시스템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제시한 전술이 바로 3-4-1-2(3-5-2 변형 형태)형태였다. 이 전술을 통해 대표팀은 당시 이집트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어진 체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0:5라는 엄청난 스코어 차이로 패하면서 히딩크 감독은 한 때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 나온 최종적인 전술이 바로 3-4-3이다. 공격에 올인을 한 전술로 2명의 윙포워드와 2명의 측면미드필더로 이루어진 폭발적인 측면 돌파에 이은 1명의 원톱(센터포워드)의 머리로 해결하는 공격루트를 많이 사용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단이나 카카처럼 중앙 플레이메이커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전술을 사용한 것인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수비는 포메이션상 3명이지만 압박수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앞에 공격수 원톱부터 최우방 3명까지 전원이 열심히 수비를 하였다. 바로 히딩크의 핵심, 공격은 측면 돌파로 수비는 압박으로였던 것이다. ◈경질당한 두 전임 감독 코엘류는 4-2-3-1(4-5-1의 변형), 일명 크리스마스트리(모양이 트리랑 비슷)전법을 썼다. 이 전술은 과거 프랑스나, 포루투갈, 레알 마드리드 등 유럽팀이 많이 사용하거나 하고 있는 전술이다. 원톱이 고립되어있기는 하지만 두터운 미드필더로 승부를 거는 전술인데, 여기서 코엘류는 뚜렷한 컬러를 보여주지 못했다. 측면 중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처럼 중앙 패스 돌파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코엘류가 경질되는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오만쇼크를 당하면서였다. 월드컵 1차 예선전에서 오만을 포함해 베트남과의 2경기는 우리가 이겨야 되는 경기였다. 그런데, 어이없이 2경기 모두 지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이 피파 랭킹 120위권의 몰디브와의 경기에서는 코 부상을 겪고 있는 설기현과 대표팀 공격수의 핵심인 안정환까지 총 동원해서 경기를 치렀지만 0-0 무승부라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별다른 특징 없는 경기 스타일을 보여줬던 코엘류는 축구팬들의 비난에 못 이겨서라도 경질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본프레레 역시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처음 이동국과 안정환을 투톱으로 내세운 4-4-2 전술을 사용하다가 기대만큼 호흡이 맞지 않자 3-4-3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프레레 감독이 경질 당하게 되는 데는 사우디에게 2번 패하고, 아시안컵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냈던 것이 주요 원인이 되었다. ◈팬들의 믿음이 아드보카트의 힘 시간이 지나며, 한 경기 한 경기 치를 때마다 우리 대표팀의 모습에서 믿음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앞서 경질 당했던 두 전임 감독과는 다르게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축구의 가능성과 미래를 열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그의 모습을 보고, 히딩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에 그 역시도 자신의 색깔은 없이 따라 하기 식의 축구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냐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주고 있기에 우리는 2002년의 신화를 또다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잘 된 선택이었든, 잘못 된 선택이었든 더 이상 감독의 자질을 운운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믿고 지켜봐주는 수밖에 없다. 축구팬들의 진심어린 믿음. 그것이 바로 아드보카트에게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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