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공수거도 옛말, 만수거(滿手去)하는 사람들 많아

기자들은 사건이나 이슈 등 뉴스 소재를 독자들에게 최대한 정확하게, 또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어 낸다. 기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안출해 낸 신조어는 해당 뉴스거리의 함축적 언사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시대상의 한 상징어가 되기도 한다.

요즘 언론 매체에 가장 자주 운위되고 있는 신조어가 ‘황제 노역’이란 단어가 아닌가 싶다.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돼 모든 노동하는 것들을 호령하는 지존(至尊)인 ‘황제’와 가장 아랫것들의 몸뚱이 학대 행위인 ‘노역’이란 대척이 만나 이룬 이 단어가 주는 함의(含意)는 자못 지대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돈으로 환산된다. 상적 유통, 혹은 물적 유통 대상으로서의 상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유, 무형의 각종 가치 있는 것들은 화폐 단위, 즉 값으로 재해석된다.

그 궁극에는 사람이 있다. 인격체로서의 한 인간은 ‘몸값’이란 단순화를 거쳐 냉혹한 화폐화 과정을 거친다.

결혼 시장에서도 처녀 총각은 몸값으로 환산돼 타산의 결과치에 따라 짝짓기가 이뤄진다. 누구든 손해는 보지 않으려 한다. 한쪽으로 크게 기우는 거래가 이뤄지면 그 건 드라마에나 있는 한편의 순애보일 따름이다.

모든 게 기계적인 가격기구(price mechanism, 價格機構)에 편입돼 거래되고 교환된다.

그렇다면 황제가 노역하는 대가는 얼마인가. 일당 5억 원이다. 일당 5만 원도 버거운 이들에겐 5억 원은 황제에나 해당됨직한 귀하디 귀한 노동의 대가인 것이다.

돈은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든다고 했다. 하루 5억 원 벌이 황제 노역의 탄생 배후에는 돈의 광풍이 내달렸음을 감지할 수 있다.

원래 법의 여신상은 돈(정실)을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있다. 이 건 과거 얘기인가.

정홍원 국무총리는 3일 국회에서 허 모 회장에 대한 일당 5억 원 황제 노역 판결과 관련해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서 황제 노역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새누리당 한 의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정 총리는 “검찰에서 은닉 재산에 대해서 정밀 추적 조사를 시행 중”이라며 “그 과정에서 위법이나 비리가 드러날 경우 철저하게 수사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대책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도 옛말이다. 이젠 올 때는 모두 빈손으로 왔지만 갈 때는 저승 노잣돈을 손안에 가득 쥐고 가는 만수거(滿手去)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누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했던가. 누구나 몸값에 따라 그에 대등한 대우를 받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몸값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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