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한국으로 전도된 종합예술, 아트록

아트록<3> -혁명 통한 음악 진보

이 같은 아트록 그룹 특유의 클래식컬하고도 전위적인 색채는 아트록의 탄생 배경을 되짚어보면 고개 끄덕여진다. 1992년 발행된 아트록 계간지 <ART ROCK>(1992) 2호의 '아트 록의 역사-그 탄생회'에 따르면 그 시작은 1965년 경 영국의 예술학교 젊은이들에게서 부터다.

 

1996, 조윤 1집 (Mobius Strip)

 그들은 근처 카페나 선술집에서 재즈와 블루스, 록 음악을 듣고 즉흥성과 음악성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는 당시 유행처럼 번져있던 허무주의와 프랑스의 앙가주망(실천주의) 철학을, 문학에 있어서는 앵그리 영맨을 외치던 미국의 비트 문학을 추종하고 있었다고. 이러한 분위기에 특히 예술 음악학교 출신의 몇몇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클래식 교육의 고답성에 반발했고 새로운 창작에의 의욕을 품고 밴드를 조직해 작곡을 하고 음반을 취입했다.

 이처럼 결국 아트록은 순수예술을 배우던 예술학교 학생들에 내재된 자유정신과 무정부주의적 정치성, 실존주의의 시대적 분위기, 젊은이들의 반항적 기질이 혼합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려던 움직임 속에서 탄생하였다.

 이러한 혁명성을 기반으로 예술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영국의 아트록 그룹들은 특히나 대중을 아연실색케 하는 쇼크로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극시 <목신의 오후>에서 튀어나온 마르시아스 인 듯 염소의 분장을 하고 신들린 듯 화려한 기교로 플룻을 불어 제꼈던 제스로 툴의 이언 앤더슨 등이 그 한 예다.

 
신기원의 예술 혁명을 제시하고 싶었던 프로그레시브 ․ 아트록 밴드들의 의지는 환타지 테마의 컨셉트(Concept, 주제)를 취하는 것과 기괴한 무대 매너 외에, 이들의 초현실적인 앨범 표지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 프로그레시브․ 아트록은 앨범 커버의 재킷 디자인이 매우 개성적이고 강렬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1960년대 말 미술, 조각, 인쇄 분야에서 활약한 예술학도들은 기술의 발달에 따라 커버아트 세계에 뉴 미디어를 수용한다.

  아트록 그룹들의 커버 아트를 단골로 담당한 디자이너 로저 딘(Roger Dean)을 위시해서 아트 스쿨 출신의 젊은 화가 및 디자이너들은 살바도르 달리 식의 재치 넘치는 하이퍼 리얼리즘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196․70년 대 아트록 밴드들의 앨범커버 디자인은 각각의 그룹이 행하는 음악과 걸맞게 중세풍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또는 우주적이었고 에로틱했으며 때로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모두 혼재되어 4차원 시공간이 구축된 독특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커버아트는 대부분 환상적인 컨셉트를 지향했던 아트록 특유의 '구상음악'으로서의 메시지를 예측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청각 예술을 즉자적 감각인 커버를 통한 시각예술로 전달함으로써 신비함을 추구하는 예술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한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한 아트록 앨범들의 독보적인 미술성은 많은 언론들이 그 미적 신선함에 주목했던 2010년 대림미술관 <성시완 컬렉션40/30/20> ‘커버 아트의 세계’ 기획전을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아트록과 넓게 보아 아트록의 범주에 속하는 전위음악은 드라마틱한 구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조성(調聲), 신비로운 분위기로 많은 실험적 대안영화와 반리얼리즘 색채의 작가주의 영화들에 영화음악으로 활용되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974년 조직된 로마 출신 5인조 밴드 '고블린(Goblin)'의 경우 <페노미나(Phenomena)>의 다리오 아르젠토의 일련의 공포영화 사운드 트랙들을 담당, 현재까지도 대단히 인상적이고 탁월한 조합의 영화 사운드로 회자되고 있다. 영화 속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인간의 광기와 불안을 반복적 불협화음으로 표현 했던 것이다. 특히 묘지 분위기를 풍기던 이탈리아 아트록 밴드들의 음악은 호러나 스릴러 영화에 자주 쓰였는데, 이는 (이태리) 아트록이 대부분 인간 내면의 깊숙한 무의식이나 감춰진 욕망을 추구하며 심각성을 띄었기에 호러 및 스릴러와의 결합에 화학적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던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글램과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조명되는 록 그룹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이노는 데이빗 린치의 <사구>를 비롯하여, 빔벤더스 감독의 <밀리언 달러 호텔>에 참여했다. 난니 모레띠의 근작 <아들의 방>에 단순한 기계음으로 명상의 경지에 이르는 엠비언트 주제곡 ‘By this river’를 작곡했다. 알란 파커는 핑크플로이드의 걸작 음악영화 'The Wall' <벽>을 연출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제너시스의 리더 피터 가브리엘 또한 알란 파커의 <버디>를 거쳐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으로 주목받는 영화음악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반젤리스(Vangelis)와 텐저린 드림(Tangerine Dream)도 전자음악의 다양한 사운드를 영화에 도입한 아트록 음악가다. SF 영화의 기념비적 고전 리들리 소코드의 <블레이드 러너>에서 반젤리스는 암울한 미래상을 어두운 건반으로 표현했고 텐저림 드림은 느와르 <비정한 거리>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담당했다.

 

▲ (Gun,Gun)의 커버 아트, 로저 딘(Roger Dean)

 지난 세기 유럽을 휩쓴 일시적인 유행의 조류를 과장해 예찬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뉴트롤스를 위시한 아트록이라는 장르는 한 시절 국내에서도 큰 반향이 일어 콜렉터들을 양산했던 특별한 음악장르이기도 했다. 그러한 간과할 수 없는 이례적 현상에는 몇몇 선구적 인물들의 공이 컸다. 국내 유일의 아트록 레이블 <시완레코드>의 대표로 아시아에서 아트록 전문잡지 계간 <아트록>을 창간했던 성시완은 우리나라 아트록의 전도사라 할 인물이다. 1980년대초 FM MBC <음악이 흐르는 밤에>를 시작으로, <디스크쇼>, SBS <음악천국> 등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크자키를 역임했던 그는 방송을 통해서 그 이전엔 접할 수 없었던 스펙타클하고 센세이셔널 한 아트록음악들을 소개했다. 그런가 하면 유학경험을 통해 세계를 돌며 음반들을 콜렉팅, 라이센스를 따내 Si-Wan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발매했다. 덕분에 뉴트롤스와 라떼 에 밀레 음반등은 국내 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계간 <아트록>은 일본과 유럽으로 역발간 되어 국내 필진들의 아트록 에세이들은 역으로, 세계로 수출되었다.

 아트록 불모지 한국에 신기원의 문화를 일궈 아트록의 주요한 향유국이 되는데 큰 기여를 했던 것이다.

 나아가 유럽 아트록 향유의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1994년부터 발매된 '시완 코리안 시리즈'는 의욕에 찬 창의적인 국내 음악인들의 아트록 앨범을 제작하여 그들이 실험적인 음악을 창작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시리즈의 첫 주인공으로 국내 최초 아트록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운 역작 <뫼비우스의 띠>의 주인공 조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트록 아티스트다. 걸작으로 회자되는 해당 앨범의 <잃어버린 천국>과 <바람코지>란 곡 등은 청자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주며 화제가 되었다. 그 외에도 거슬러 보면 박두진 시인의 ‘해’를 노래한 그룹 <마그마>의 앨범이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가 수록된 산울림 2집, 한대수의 초기 앨범 <무한대> 또한 기승전결 뚜렷한 드라마틱한 곡 전개와 철학적이고 상징적인 가사들로 사이키델릭 필이 강해 넓은 관점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락으로도 이해 가능하다.

 이어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광민이 키보드스트이자 작곡자로 참여한 데뷔작 그룹 <동서남북>은 타이틀곡 '나비'를 통해 대곡적 취향과 변화무쌍한 키보드 전개로 1980년 대 사이키한 선진적 사운드로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었다.

 블랙신드롬의 <짜라투스트라>, 부활의 1994년 작 <잡념에 관하여>, 신중현과 공동 작업으로 신중현의 색채가 강했던 시나위의 2집도 앨범 전체가 한 가지 주제를 지향하며 전위적인 대곡 취향을 띈다는 데 프로그록적 색채 강한 앨범들이었다. 이 외 항아리 콘체르토라고 명명된 <김병덕과 덕 프로젝트>의 일련의 앨범들, <無>의 한의수, 몽환적인 심포니 록으로 발군의 음악성을 보여준 숨어있는 명반 <Dreamer's island>의 Horizon(이승태), <현기증>의 안과의사, 카프카의 <단식광대>를 소재로 예술가의 존재론을 설했던 <단식예술가>의 이창식 , <푸른 별에서의 하루> 앨범을 냈던 조한웅도 떠오른다. 좀 더 근자에는 인디 그룹 <어어부프로젝트>, <99>, <가이아> 등도 프로그 ․ 아트록적 성향의 음악을 선보인 바 있다.

▲ 로저 딘 회고전 Dragon's dream (2010, 대림미술관)

음반시장이 이윤의 논리로 무장한 현실에서 가사와 창법은 날로 저속해져 막장문화 코드로 좌지우지되고, 말초적이고 단세포적인 후크송이 국내 음악 시장의 판도를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트록이라는 묵중한 무게감을 지닌 예술 바위(ART ROCK)음악함대가 어찌하여 다시 돛대를 달아 항해를 계속해갈 수 있을까.

 우선은 무엇보다 공중파 FM 음악방송부터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는 등 미디어의 쇄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묻혀있던 국내 인디 뮤지션들을 발굴해 대중들에게 그들의 놀라운 음악성을 알려주는데 주력했던 경기방송 조경서의 <음악느낌>, 아트록 코너와 커버아트 코너를 마련하여 기존 방송에서 소화하기 힘든 대곡들을 소개했던 원음방송 박지원 PD의 <팝스갤러리>, 그리고 <25시의 데이트>와 <음악세계>도 쉽게 듣기 힘든 메탈과 락 음악을 접하게 하는 화수분이 되었다. 몇몇 방송 프로그램이 음악 대중들에게 양질의 음악을 수혈하는 전령사가 되어준 바 이처럼 방송의 영향력은 매우 중요하다. 현재에도 KBS 1FM 내 재즈프로그램이나 국악방송, 종교방송 내 몇몇 전문음악 방송 프로그램이 외로이 그러나 묵묵히 전파를 쏘고 있고 세이클럽 <파란아트록> 방송 CJ들이 발군의 선곡능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방송들은 여전히 안일하기만 하다.

 클래식의 외연에 당대 다다이즘이 결합된 것이 '현대음악'이고 록의 바탕에 다다이즘의 전위성이 결합된 것이 '아트록'이라 생각해본다면, 1960년 대 말 클래식 음악 교육생들에 의해 일어난 일대 센세이션이었던 아트록 음악은 '무릇 진보란 혁명적 시도들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해외 및 국내의 아트록 음악, 이 아트록의 태동과 발전 사례를 통해 음악의 한 장르를 예찬하는데 멈추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문화가 어떠한 혁명적 시도들을 통해 진일보 할 수 있는지를 새삼 떠올려보았으면 한다.

음악팬들과 콜렉터들을 현실인식이 결여된 편집증이나 극단적으로는 오타쿠 현상의 하나로 치부하는 시대적 조류는 문화 콘텐츠 차원 뿐 아니라 인간적 차원에서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소수의 고급한 마니아 문화가 보호받고 균형감 있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적 분위기야말로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초석임은 상식이다.

 다양한 음악시장과 청취권이 공존해야 하는 까닭에 관해서는 "음악은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과 같고, 반짝이는 별보다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감춰진 별들이 더 많다"라던 성시완 씨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갈음을 하자.

 현재 조심스레 일고 있는 아트록 애청자들의 결집의 조짐들은 시대적 압박 속에 질식해가는 마니아 문화의 소멸 현상을 떠올릴 때 상당히 의미심장한 징후로 느껴진다. 진행형의 신화, 뉴트롤스. 이들 Art Rock 영웅의 내한 공연과 마니아들의 고군분투가 그러한 '넓고도 깊은' 음악 향유 문화의 도화선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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