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기슭 한 줌의 땅도 소중하다

근래에 SNS에 필자가 산으로 간 어부라고 했더니, “어부가 바다로 나가야지 왜 산으로 들어갔나요?”, “세상이 꼴 보기 싫어 산 속으로 숨었나?”, “도 닦으러 들어가셨나요?” 등등 다양한 반응이었다. 세상사람들의 각자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고 반응도 다양하지만, 딱히 틀린 말들이 아니어서 그저 허허로운 웃음으로만 대답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것이 자타가 인정하는 소위 바다전문가라는 사람이 바다농사가 아니라 산에서 나무농사를 짓는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어부가 산에 간 이유는 감정적인 것에 앞서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다음 항해를 위한 준비차 선택한 길이었다.

우리는 고통의 바다라는 인생길을 항해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태풍을 만나 배는 난파되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바닷가에 버려질 수 있다. 어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백사장에 남아 구조선이 올 때 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인가?’ 그 중 나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새로운 항해를 위해서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도 구해야 되고, 고기 잡을 그물과 식량도 갈무리 해 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태풍을 만나 비록 잠시 항해를 멈추고 있지만 꿈을 접은 것은 아니며, 다음 항해를 위하여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견디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은유적인 이유 외에도 대체로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간다. 자연인의 상태에서 진실한 나와 만나고 싶었다. 가해자들은 전혀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데, 나 혼자서 미움 · 원망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내 자신을 해치는 것이기에 용서는 아니더라도 그 마음을 버리고 싶었다. 우주의 섭리를 이해하고 자신을 수행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동안 바다농사는 많이 지어보았다. 우리나라 해조류 · 어류 · 패류 및 담수어에 이르기 까지 양식 실험연구에서 보급에 이르기까지 필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거의 없기에, 이제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나무농사를 짓고 싶었다. 농업은 수산업만큼 벤처산업이다. 위험도 있지만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에, 말뿐이 아니라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나라 농업이 나아가야 할 지표를 정리하고 싶었다.

 

내가 선택한 나무 농사터는 강진군과 해남군 경계에 있는 주작산이다. 주작산에서 본가까지는 15, 대흥사가 10, 해남읍도 10분 거리다. 높이가 475m로서 산세가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듯하다해서 주작(朱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작산은 정상과 능선은 아기자기한 바위산이다. 봄이면 바위틈 사이에 아기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고 계곡 사이로 제법 큰 물줄기가 흐른다. 마을 앞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큰 저수지가 있다.

 

본가의 농장과 주작의 농장을 겸하여 관리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고 특히, 이곳은 나의 안태(安胎)고향이기도 하니 주작산을 어머니 삼아 제2의 모태에 깃들어 상처받은 영육을 치유하고 싶었다.

주작산의 아기자기한 줄기를 거닐며 숲속의 생명들과 만나고, 골 안을 흐르는 개울물을 마시며 내 목숨이 새롭게 움터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항해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자 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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