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보험공단 “민영의료보험은 안돼” 총력투쟁

의료보장제도는 사회복지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적인 제도이다. 줄기세포 기술 등 난치병에 대한 치료기법들이 아무리 발달됐다 하더라도 치료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첨단 의학이 무용지물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줄기세포 치료기술, 암, 에이즈 등 최근에 개발된 치료 기법 및 의약품 일수록 치료비는 당연히 폭증하게 된다. 그러므로 줄기세포 등 의료기술의 발달이 국가경제에 도움은 줄 수 있을지언정 서민들의 의료복지와는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다. 똑같은 병을 가진 환자라도 부자는 알약 한 알 먹고 씻은 듯이 나았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것이 없어서 당장 죽어나가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이다. 의료보장제도는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이다. 반면 공산주의와 달리 자본주의 아래서 의료보장은 보험제도의 법칙에 따른다. 국가에서 준조세 개념으로 보험료를 강제 징수하고 그 돈으로 국민들에게 의료 혜택을 분배하는 것을 공적보험제도라고 하고 개개인이 원하는 바에 따라 보험사를 선택하여 의료계약을 하는 것을 민영의료보장제도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공적의료보장제도였다. 최근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는 생명보험업계가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실손형 민영 의료보험과 관련 국민건강보험 중심의 공적 의료보험제도가 공·민 이원화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민영 의료보험이 국가에서 운용하는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단지 보충적으로 운영될 뿐”이라는 입장이다. ▲생명보험사 개인 실손 의료보험상품 판매 그러나 민영보험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료계측은 실손형 의료보험상품 자체가 공적 의료보험제도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공단 및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생명보험사들이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에 적극 나설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위상 및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공공적 기능이 훼손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및 생명보험업계는 내달 1일부터 실손형 의료보험을 생명보험사에서도 판매한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생명보험사에서 취급한 의료관련 상품은 정액형 암·CI·질명보험이 전부였다. 의료보장보험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실손형 의료보험 상품은 손해보험회사의 전유물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민간 의료보험 시장은 매년 성장세를 보여 6조원대 규모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보험 전문가들은 설계사들의 수와 영업력, 회사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손해보험업계를 압도하고 있는 생명보험사들이 실손형 의료보험상품에 전사적 역량을 쏟을 경우 6조원대 시장 규모가 12조원, 24조원으로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데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및 의료계 측은 민영 의료보험 시장이 국민들의 관심 속에 확대를 거듭할 경우 자연스럽게 국민건강보험을 대체하려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금은 단지 공적 의료보험에서 보장이 약한 부분 등을 보충해 주는 형태로 출발하지만 언젠가는 공적 의료보험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인식이다.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불신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은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감이 어느 정도인가를 잘 알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건강보험공단측은 의료보험의 보장성 확대와 저소득층 의료비 감소 등 개선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하는 한편 공중파 TV광고 등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공 의료보험을 지키기 위한 자구노력이며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의료보험상품 판매를 힘써 반대하는 것도 그 일환 중 하나라고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의료보험제도는 공공적이라는 형평상 저부담-저급여 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보장되지 않는 질병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암 치명적 질병에서 보장상이 상당히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조산아의 잉큐베이터 비용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성형수술 비용 등은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보험만으로는 치명적인 질병, 성병, 사고 후유증 등의 치료에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된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 관계자는 “대한민국 4,000만 국민들 전부의 의료비용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건강보험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지난 6월 마련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보고서를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OECD국가의 평균 보장률 70%보다 훨씬 낮은 61.3%이고 암 등 중증질환은 이보다 더 낮은 4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큰 불신은 건강보험공단의 의료보험 운영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데 대한 불신감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이해훈 의원은 “국민건강보험은 연간 16조 2,654억원이라는 규모에서 보듯 전체재정지출의 8%를 점하는 큰 비중을 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서민들의 의료복지를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어느 재정지출보다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과는 달리 정부의 통합재정체계 밖에 존재하고 있어 어떠한 법적 검증도 없이 공단측에서 임의로 운영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나라당, 국민건강보험의 기금화 입장 이에 대해 이 의원측 관계자는 “현재의 국민건강보험이 급여범위, 보험료·수가, 자산운용 등에서 투명성, 합리성, 대표성, 효율성이 결여됐을 뿐만 아니라 요율 산정 등에 적용되는 각종 통계들도 오류투성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건강보험이 보험요율·수가·급여범위 등의 결정과정 속에서 투명성, 합리성, 대표성 등을 결여됐고, 국회 및 정부에는 보험료 거치 및 보험금 지급 등이 축소 발표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의원은 작년 11월 의료보험의 기금화를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를 폐지하고 의료보험 운영실적을 매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보고·승인 받도록 했다. 또 회계기준도 4월을 기준으로 하는 기존 회계연도를 폐지하고 매년 1월부터 시작되는 정부 회계기준을 따르도록 법제화 하여 정부에서 관리·운영토록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반대 그러나 공단측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와중에서 의료 복지에서까지도 상대적 박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보험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공보험 체질개선을 위한 경영 투명화, 기금화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하 건보연)도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건보연은 민간의료보험이 결국 의료 서비스 체계를 부유층으로 쏠릴 것으로 내다보며 강한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건보연의 한 관계자는 “재경부 등 정부에서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현재의 진행방향은 재벌보험사들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민영보험이 공보험의 아성에 도전할 날이 조만간 올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는 적어도 공적 의료보험제도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세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타킷은 공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맞춰져 있는 형국이다. 보건복지부도 재정경제부와 정책협의를 거치면서 공적 의료보험의 권위와 기능을 침해하지 않고 보충하는 한도 내에서 생명보험사의 개인실손 의료보험 상품을 허용키로 합의한 바 있다. 이와관련 금융감독원의 강영구 부국장은 “민영의료보험 활성화는 재벌 보험사가 아닌 금감원 측에서 발벗고 나서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보험료 징수대상은 적어지는 반면 의료보장 대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공보험만으로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경부, 금감원과 대통령 자문기구인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등은 민영 의료보험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공단, 건보연측 반대투쟁 적극 나서 이같은 대세로 인해 공단, 건보연 및 일부 시민단체 등 민영의료보험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대국민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정부 권력기관의 인터넷 민원실에 공개 민원을 넣는 것. 현재 청와대 자유게시판과 감사원의 국민감사제안 게시판, 대검찰청 사이트의 국민의 소리 게시판, 국무총리실의 자유게시판, 공정거래 위원회의 친절/불친절 신고 등 게시판을 중심으로 매일 첫 면을 장식할 수 있도록 같은 내용이 계속 갱신되고 있다. 이를 통해 반대측은 민영의료보험 도입과 공무원 및 보험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에 직접 민원을 넣으면서 이곳을 방문하는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는 두가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민영의료보험 발전 쏠림현상 일어나 이에 비해 민영의료보험 상품은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민영의료보험의 발전 방향을 자세히 보면 분석해 보면 암보험과 CI(치명적 질명)보험 중심으로 치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험학자들 사이에서 민영건강보험 체계가 한 쪽으로 쏠리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잇따라 지적한다. 실제로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종신보험특약 등을 제외한 생보사들의 암 등 질병보험, 장기간병보험 등 의료보장 관련 보험료 수입은 2003년 5조 786억원에서 2005년 8조 8079억원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CI보험은 수보료 기준으로 2004년 2조 7879억원으로 전년동기 4847억원 대비 2조 3032억원이나 증가했다. 그런데 문제는 민영보험의 보장이 쏠려 있는 방향 자체가 국민건강보험이 보장성을 강화하려는 쪽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암, 급성폐렴 등에 의한 환자들은 종양을 초기 발견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해당 보험사 등에서 수령받은 보험금의 합계가 병원비 보다 많은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 병에 걸려 돈을 벌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반면 희귀 난치병 질환 등의 경우 공보험과 민영보험 모두가 외면하고 있어 의료보장 자체를 기대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경희대학교 정기택 교수는“대표적인 민영의보상품인 암보험은 이미 보험금이 본인부담금 총액을 훨씬 초과하는 과당보장 상태에서 지난 4월 복지부가 발표한 암 등 고액중증 환자의 진료비 부담 경감에 건보재정을 집중 투입할 방침이라는 입장과 맞물려 특정 질병에 대한 중복과잉보장이 심화될 수 있어 암·CI보험 미가입자 및 기타 질환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과소보장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즉 특정 질환 중심의 의료보험상품, 실손 보상상품, 국민건강보험간 중복보장으로 인해 매우 비효율적인 의료보장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성확대에 관한 로드맵을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발표하지 않는 경우 실손보상상품 가입자들은 이미 약정한 보험료에 비해 민영보험의 급여범위가 줄어들고 국민건강보험의 보험료가 인상됨에 따라 이중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민영의료보험의 활성화에 대한 공단측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공적 의료보험 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한 목소리를 냈다. YMCA의 한 관계자는 “민영의료보험과는 상관없이 공보험을 개혁할 필요는 있으며 그 일환으로 의료보험의 정부 기금화도 한 과정”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민영의료보험을 통해 의료 서비스의 양극화가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공보험이 계속해서 방만하게 운영되어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 경우 민영보험으로 대체하는 수 밖에 방법이 없지 않느냐”며 “민영의료보험 도입을 막기 보다는 민영의료보험이 공보험을 대체할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합리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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