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담보로 한 최루영화의 극단

한국 최루영화를 보고 눈물 흘려본 일이 없다. 최루영화 자체의 지극한 통속성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국 최루영화의 경우 희극과 비극의 톤을 적절히 배합하지 못하고, 그저 '한 많은 내 팔자' 류의 박복한 인생괴담으로 한꺼번에 치달아 버려, 일단 그 극악스런 처절함에 공감하기 힘들고, 상식적 사고가 불가능한 듯한 인물들을 보기가 힘겨워지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한국영화에서의 '최루'란 '퇴폐'의 일종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이 무조건 사대주의의 80년대 한국영화계는 아니지만, 지난 해 일본 내에서 300만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인 대히트작 <환생>을 보고 있자면, 역시 일본이 '눈물의 노하우'만은 우리보다 우위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류 열풍으로 얻어진 문화적 자신감이 조금 수그러드는 느낌마저 든다. <환생>은 일본 최루영화가 지니고 있는 장점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흥미로운 상황 설정과 가볍고 감상적인 인물접근 방식, 등장인물의 개인적 감정 고조가 아니라 그 동안 쌓아나간 상황의 복합적 결과로 인해 터뜨리는 클라이맥스의 눈물바다. 이런 '미리 짜여진 틀' 안에서 드라마 뉴웨이브로 평가받는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지극히 드라마적인 연기와 돌발적인 애드립 연기, 효율성을 위주로 평이한 장면들과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롱 테이크 등을 자유자재로 뒤섞어, 통속성과 독창성 사이의 벽을 허무는 작업에 상당부분 성공해내고 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은 오히려 카지오 신지의 원작 자체에서 발견된다. '죽은 사람이 그들을 떠나보낸 사람의 애절한 소망으로 되돌아온다'는 간단한 컨셉을 가감없이 그대로 밀고 나갔다면 본래의 환타지 우화적 성격이 잘 드러날 수 있었을텐데, 영화의 중반부에 이르면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그럴싸한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 SF적 요소를 플롯 안으로 밀어넣기 시작한다. 이런 시도는 이야기의 감정적 흐름을 깨뜨릴 뿐더러, 결과적으로 가장 지루하고 이해하기 힘든 파트로 남아 최루영화라는 한계를 지니고도 상당히 잘 끌어갔던 영화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보다 날카롭고 세련된 센스로 판단하자면 분명 '유치한 영화'이다. 모든 드라마적 과잉 상황설정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날카로움과 냉정함을 버리고 유치해지고 싶고, 이성적 프라이드를 버리고 한번 크게 울어보고도 싶다. 만일 이런 정서적 갈증을 느끼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환생>은 최루영화의 최극단에 서있는 영화로서 이들에게 최고의 처방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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