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하나 되어 평화를 느끼는 순간. 사진 / 시사포커스 이영호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느낀 것은 매우 역설적인 깨달음이다. ‘몸이 고달프다고 해서 건강을 해치지는 않으며, 혼자 일해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몸은 더욱 건강해지고 영적으로는 성숙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한, 사람이 아닌 풀 · 나무 · 야생화 · · 시냇물 · 바위 · 하늘 · 구름 · 바람 · 별과 같은 자연을 접하면서 인간세상의 번잡함을 잊게 되어 마음이 평온해 진다. 대신 자연의 표정을 읽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오히려 바쁘다.

또 하나, 조심스러운 고백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신의 존재를, 자연과 하나 되어 평화를 느끼는 순간 나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살아가면서 웅대한 대자연 앞에서 나약하기만 한 인간,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는 어리석음, 심각한 빈부격차와 이유 없이 병마에 시달리는 어린아이들, 약육강식 속에서 승승장구하는 악인들, 권선징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모순된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었다.

그런데 온갖 생물들이 조화와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는 숲속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보살피기에 너희들은 이렇게 푸르며, 누구를 위해 그 바위틈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지묻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거부한다면, 이 거대한 우주질서와 천지만물의 조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인위적인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머무르며 느끼는 것은 역시 미약한 인간의 존재와 신의 위대함이었다. 겸허한 마음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너럭바위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을 때 느끼는 최상의 평화와 기쁨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농사를 짓다보니 비 오기를 기다리는 때가 많아진다. 몇 달 동안 계속 햇빛만 내리쬐는 맑은 날이 계속되자 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어린 묘목들이 말라죽어갔다. 더 이상 맑은 날좋은 날이 아니라 슬픈 날이 되었다. 맑은 하늘이 캄캄해지고 금새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흐린 날이 단비가 내릴 징조여서 오히려 기쁜 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새삼스레 인생도 날씨와 다를 바 없음을 느꼈다. 비바람과 폭풍은 귀찮고 혹독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씨앗은 싹을 틔운다. 때로는 태풍과 같은 세찬 비바람이나 눈보라에 가슴 졸이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견뎌낸 식물들은 오히려 생기를 충전하고 더 강해진다. 우리 인생도 삶의 여정 중에 겪어야 하는 힘든 시련과 아픔도 우리 삶을 거목으로 키우기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안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스스로을 위안하며, ‘장자선성편에 나오는 은자(隱者)처럼 세상근심 다 잊고 농사지으며 살리라고 맘먹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천명을 기다리며 살리라.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시간들을 반성하고 지키고자 노력했던 가치관과 철학을 재점검하리라. 그리고 반드시 나와 동지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터전을 만들리라 다짐했다.

[등헌이영호 칼럼니스트 basemi0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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