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라재(氣羅齊)로 돌아오다

▲ 주작산 계곡. 사진 / 시사포커스 이영호

“그래 농사지으며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한 세상 살아도 좋겠다.”

내 본가의 당호(堂號)는 ‘기운이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을 가진 ‘기라재(氣羅齊)’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결혼 후 아내가 친척들이나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니 대화 중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말이 “그라제!, 그라제!” 라는 말이라며, 부모님 형제분들의 우애가 각별한 이유가 아마도 ‘그라제 가풍’에 있는 거 같다고 했다.
‘그라제!’는 ‘그렇지!’의 전라도 사투리로서, 상대를 인정해 주고 응원해 주는 추임새이다. 그런데 이 말은 전염성이 강하여 친척어른들 뿐만 아니라 도시 사는 어린 조카들까지도 습관처럼 쓰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대화 중 상대가 “그라제!”라는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면 일부러 “그라제?”라고 반응을 묻는다. 그런데 대답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니라 “그라제!” 또는 “안 그라제!”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그라제 대화법’은 대화를 웃음으로 유도하고 무한 긍정에너지를 확산시켜 준다.

경제적으로 모두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잘 극복하고 우애 있는 집안으로 이끌어 오신 부모님이 물려준 소중한 가치인 ‘그라제’ 가풍을 우리 후손들이 이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가의 당호를 ‘기라제’라고 지은 것이다.
기라제는 내 일터의 본부이자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일 때문에 멀리 떠나와 있어도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기에 든든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살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평소 느긋하게 쉬어 본 적이 없었던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종일 땅을 파고, 나무를 손질하며 보냈다.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나무들이 내 손길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뒷산과 연결된 밭은 완전히 덤불숲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밭을 일구고 나무들을 손질하며 땀을 흘리노라니, 점점 나무들이 더욱 푸르고 반짝이는 잎들과 꽃으로 응답했다. 덤불숲이었던 밭에는 상추, 고추, 쑥갓, 파, 부추가 싱그러웠다. 까무잡잡한 얼굴은 더욱 까매지고 행색은 남루해졌을망정, 내 입가에 다시 미소가 생겨나고 입술에서는 어느새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이 봄도 산허리엔 초록빛 물들었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서 살리라.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이 노래는 마치 지금의 상황이, 내 스스로 선택한 삶인 것 같은 위안을 주었다. 잊고 살았던 태생적인 농부근성이 서서히 살아났다. 내 이력서의 직업란을 “농업”으로 적게 된 시점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해양수산전문가이기 때문에 육지농사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농부였다. 내 신분이 학생, 공무원, 정치인으로 변하여도 늘 농업을 겸직했다. 부모님으로 부터 밭둑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산과 들을 쏘다니며 본능적으로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경제원리를 짐작했고 결코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도 깨달았다.

오랜만에 직접 느껴보는 흙의 촉감과 냄새, 집과 연결된 숲길을 거닐며 그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새소리, 바람의 냄새와 촉감, 나무들의 갖가지 표정과 새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내 어릴 적 동무들이었던 바위며 어린 생명들, 허기를 달래 주던 새알이며 나무의 여린 새순, 아침이슬을 머금은 꽃물이 추억과 함께 나를 반기니 잠자고 있던 오감이 일시에 깨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농사지으며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한 세상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사 잊고 청산에 살겠노라 마음먹고 둘러보니 모든 것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감나무 가지가 손을 내밀어 반겨 주고, 어린 단풍잎들이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지었다.

[등헌이영호 칼럼니스트 basemi05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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