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명화의 비밀>(호크니가 파헤친 거장들의 비법)

사진과 영화, TV의 탄생으로 인해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그림에 대한 관심이 다소 떨어지고, 이에 따른 추상화의 전성기가 도래한지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일반 대중에게 있어 소위 '잘 그린' 그림의 기준은 '얼마나 실제와 똑같이 그렸는가'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예술적 영감보다는 기술적 완성도가 즉각적 판단의 측면에서 더 수월한 것이기에 대중들은 이 '손쉬운 판정' 쪽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손쉬운 판정'에 영합하려는 화가들에게도 딜레마는 존재한다. 현대 작가들이 아무리 노력과 고심을 가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비잔틴 시대,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들이 보여주는 '실제와 똑같은' 이미지에 근접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재와 범인의 차이인가. 아니면 사진의 등장 이후, 화가들이 실제를 그대로 재현하는 일에 관심을 잃어, 기술적인 진보는 커녕 퇴보가 이루어지고 만 것인가. 팝 아트의 기수이자 '수영장의 화가'로 유명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자신의 저서 <명화의 비밀>을 통해, 이것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성'이 아닌, 그저 광학장치의 활용일 뿐이었다고 충격적인 의견을 제시한다. 키워드는 '렌즈'와 '거울'. 호크니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1434)에 등장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중앙의 볼록거울과 라파엘로가 1518년에서 1519년 사이에 그린 교황 레오 10세의 초상화에서 교황이 들고 있는 렌즈를 예로 들고 있다. '아르놀피니의 결혼'에 등장하는 볼록거울의 경우, 지금까지는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의 '부부의 결혼식 현장에 증인을 그려넣기 위해 넣은 상징적 도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호크니는 이에 대해 '작품제작에 필요했던 도구'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렌즈와 거울 등을 통해, 3차원적인 사물의 이미지를 2차원 평면에 투영한 뒤, 그 이미지를 종이에 트레이싱하는 기법을 사용했다는 것. '천재'의 솜씨라고 여겨졌던 고전 미술작품에 대해, 광학기술을 응용한 '베껴그리기'에 불과했다는 호크니의 주장은 예술사가들을 비롯한 미술계 전반의 '열화와도 같은' 비판과 부정을 얻어냈고, 현재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주장으로 인해 베르메르, 램브란트, 할스, 반 아이크와 같은 플랑드르 화파의 정확한 이미지 구사가 모조리 '광학적 그림그리기'설의 도마에 올랐고,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베르메르의 경우는 참혹하게 재해석되어, 노동자 계급의 일상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해낸 독특한 성향의 화가라는 평가에서, 그저 가정부나 하녀와 같은 노동자 계급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둠상자)를 이용한 '베껴 그리기'에 적합한, 한 마디로 '만만한 계층'이었기에 이들을 주로 다루었다는 평가로 상당부분 절하되고 말았다. 호크니의 주장은 너무나도 과격한 것이어서 일견 충격효과만을 노린 상업적 전략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가 2년여에 걸쳐 수집한 수많은 사료들과 미술사학자, 광학박사, 미술관장 등과의 인터뷰 내용 등에서는 미스테리를 풀고 싶어하는 '예술 탐정'의 욕구가 엿보여, 선정적 의도와 다른 독특한 재미를 맛볼 수 있게 한다. 다소 비싼 가격으로 출간되었지만 화집 사이즈로 나와있어 고전 걸작 미술품을 감상하는 기회로도 좋을 법한, 예술비평과 추리소설이 만난 독특한 성격의 서적으로서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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