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간 4개국서 가명(假名)만 4개…왜?

▲ 검찰과 국정원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 서울시 공무원으로 임용돼 탈북자 지원 업무를 맡고 있던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지목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유용준 기자

2013년 1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본격화되고 여론의 비판이 심화되던 시기 국정원은 갑작스럽게 서울시청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을 ‘간첩’으로 지목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탈북자로서 서울시 공무원에 특채로 선발되어 시청 내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 주무관으로 근무하며 탈북자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유우성(34)씨가 사실은 간첩으로, 탈북자 명단과 정착상황 등 관련 정보를 빼내 북한에 넘긴 혐의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1심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유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이에 불복해 즉각 항소를 제기했다. 유 씨를 간첩이라고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필요했던 검찰은 국정원에서 유 씨의 북한 출입국 기록을 받아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이 증거 서류에 대한 진위여부에 대해 중국 당국은 ‘위조’라는 답변을 전해왔다.

이에 검찰과 국정원은 “위조가 아니다”라며 증거위조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국정원의 지시를 받고 문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선족 김 모(61)씨가 검찰 조사에서 ‘문서를 위조했다’는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신상 정보 수시로 바꿔가며 ‘신분 세탁’
檢-국정원 제시 ‘간첩증거’ 위조의혹 ↑
‘국정원 죽이기’에 유 씨 묵과해선 안 돼
“난 간첩 아닌 평범한 사람” 억울함 호소

국정원과 검찰로부터 ‘간첩’으로 지목받은 유 씨는 국내에 첫 입국하던 2004년 당시 인천공항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북한 함경북도 화령 출생의 탈북자로, 이름은 유광일 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유 씨는 중국 국적의 북한 거주 화교로서 본명은 유가강이며 ‘화교’라는 신분적 특성상 북한과 중국을 비교적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北 국적 아냐…‘중국국적 재북 화교’

유광일, 유가강 등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까지 바꿔가며 생활하던 유 씨는 2009년에는 탈북자 신분으로서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에 대한 의심을 가진 중국 공안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유 씨에 대한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이 검찰에 넘긴 유 씨의 ‘북한-중국 출입경 기록’이 모두 위조라는 사실이 드러나 증거 조작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뉴시스

당시 중국 공안당국은 ‘유 씨가 탈북자가 아니라 사실은 중국인이 아니겠느냐’는 의심을 하였으며 이에 대해 유 씨는 자신이 ‘북한 공민권자 유광일’임을 증명하겠다면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라는 제목의 북한 신분증을 제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신분증은 1심 재판 당시에서도 증거로 제출된 바 있으나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유 씨는 탈북자 신분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탈북민 아파트를 비롯한 3700만원의 정착금을 수령했으며 탈북자 특혜를 받아 연세대학교에 입학해 공짜로 수업을 받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는 영국 정부에 탈북자 신분으로 망명을 신청했다는 사실이 1심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유 씨는 ‘조광일’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영국 정부로부터 난민자 카드를 발급받았고, 이에 따라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우리 돈 약 7만원의 생활지원금을 매주 지원받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우리 정부 역시 유 씨에게 탈북자 생계지원비로 매달 38만원의 돈을 지급하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뤄 유 씨는 같은 시기 2개의 나라에서 2개의 이름으로 최소 7개월 이상의 ‘이중생활’을 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처럼 끊임없는 ‘국적․이름 바꾸기’를 시도하다가 2010년에는 한국에서 유우성으로 개명을 신청하고 한국 국적을 얻었다. 이후 2011년 6월, 서울시 공무원 탈북자 특채로 선발되어 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팀에서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탈북자, 즉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이렇듯 유 씨는 최소 4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4차례 이상 가명(假名)을 사용하고 신분증을 위조하는 등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그 정체에 더욱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검찰 조사과정에서 유 씨가 수시로 이름을 바꿔가며 신분세탁을 하고 생일과 국적도 수시로 바꿨던 사실이 드러났다.

탈북자로 인정받아 처음 한국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을 때는 9월생으로, 유우성으로 개명을 신청할 때는 ‘착각했다’며 10월생으로 정정을 요청한 것 등으로 미뤄 유 씨의 실체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유 씨에 대해 2006년 5월 27일, 중국에서 몰래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해 간첩 교육을 받은 후 국내로 돌아와 탈북자 200여명의 신상정보를 넘겼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간첩이 아니라면 왜 수시로 신분을 세탁하며 이중생활을 했겠느냐”면서 이에 대한 증거로 유 씨가 북한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 한 장과 유 씨의 친동생 유가려(30)씨의 증언을 제시했다. 당시 검찰은 유가려 씨가 검찰과 국정원이 6개월에 걸쳐 실시한 합동 심문에서 “서울시 공무원인 오빠 유우성이 간첩”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 검찰이 1심 재판부에 유 씨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사진. 검찰은 이 사진을 두고 ‘유 씨가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중국 연변에서 촬영된 사진인 것으로 밝혀졌다. ⓒ 뉴시스

그러나 1심 재판에서 북한에서 찍었다며 제출된 증거가 사실은 중국 연변에서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데 이어, 가장 유력한 증인인 유가려 씨가 법정에서 “국정원 수사관이 오빠가 모두 자백했다고 했고, 가혹행위와 회유를 통해 허위증언 한 것 뿐 사실이 아니다”라며 증언을 번복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이에 1심법원은 검찰과 국정원이 제출한 증거에 대한 효력이 상실됐다고 판단,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불복, 항소한 검찰과 국정원은 유 씨를 간첩으로 입증할만한 보다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했고 이에 해결책으로 내 놓은 것이 유 씨의 북한 출입국 기록이다.

국정원으로부터 전달받아 검찰이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기록은 △허룽시 공안국 발급 출입경 기록(유 씨의 북한-중국 출입국 기록) △허룽시 공안국 발급사실 확인서(출입경 기록을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이 맞다는 취지의 회신) △싼허 공안국 발급 정황설명서에 대한 싼허 공안국 회신으로 총 3건이다.

탈북자 신분, 자유로운 北출입 의문

이 기록에 따르면 유 씨는 2006년 5월 23일, 중국에서 북한으로 나갔다가(출경) 4일 후인 27일 다시 중국으로 돌아온(입경)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유 씨는 “어머니가 갑자기 사망해 장례식 참석 차 북한을 다녀왔던 것”이라고 주장하며 방북 사실을 인정했으며 2010년 검찰이 이 건에 대해 수사를 실시한 결과 유 씨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져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기록은 이후 유 씨가 북한에 한 차례 더 방문한 것으로 기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유 씨는 27일 입경한 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북한으로 재차 나갔고, 10여일 후인 6월 10일 중국으로 돌아왔다. 검찰과 국정원은 이를 들어, 이 시기에 북한 보위부가 유 씨를 체포해 조사하면서 그를 북한 공작원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유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이에 대해 “위조된 증거”라고 주장하며 증거 문서의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중국 당국은 해당 문서에 대해 모두 ‘위조’라고 판명한 회신을 보내옴에 따라 사실을 입증할 것으로 기대했던 증거는 공신력을 잃은 채 오히려 유 씨에 대한 간첩여부의 핵심이 국정원의 증거위조 의혹으로 넘어가 버리게 됐다.

▲ 검찰과 국정원이 2심 재판부에 제출한 유 씨의 북한-중국 출입경 기록과 관련한 문서 3건이 모두 위조됐다는 중국의 회신 전문. 이로서 국정원과 검찰의 ‘증거 조작’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뉴시스

특히 검찰과 국정원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극구 부인했으나 국정원의 증거위조 협조자로 지목받았던 조선족 김모(61)씨가 검찰조사에서 ‘국정원의 위조지시를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갑작스럽게 자살을 기도하면서 이와 관련한 유서에 “국정원은 국조원(국가조작원)이다”라면서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돈이 있다”고 폭로함으로서 ‘문서 위조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검찰과 국정원의 주장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김 씨가 자살을 시도한 4일 후인 9일 밤, 국정원의 기습사과에 이어 10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한데 이어 같은날 오후 검찰이 국정원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등 증거 위조 의혹에 대한 수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렇듯 증거위조 의혹이 점차 ‘사실’로 굳어지면서 일부에서는 국정원이 ‘증거위조’까지 해 가면서 유 씨를 간첩으로 지목한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은 대선 당시, 정보기관이 대선에 불법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에서 국정원 자체의 존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도 하는 등 수세에 몰렸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정원이 유 씨를 간첩으로 지목해 이슈를 만들어 여론을 움직인 것이 아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위조의혹을 받고 있는 문서 외에 유 씨가 간첩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탓에, 실질적으로 검찰이나 국정원이 증거위조 혐의에 대해 ‘수사중일 뿐’ 사실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음에도 그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까지 조작했다는 것이 사실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논란 속에서도 유 씨가 탈북자로 위장한 중국 국적의 재북화교로, 탈북 후 한국을 비롯한 영국에서 수시로 이름을 바꿔가며 각국에서 탈북자 지원을 받았고 이후에도 북한을 밀입북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씨가 이같은 ‘수상한 행적’에 대한 명백한 답변을 하지 않은 가운데 ‘국정원 죽이기’에 바빠 유 씨에 대한 의문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내달 4월 중순께 항소심 선고…재판결과 주목

한편, 유 씨는 지난 12일 ‘증거조작 의혹’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기 위해 출석하기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실시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간첩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면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아 대한민국에 왔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계속되는 ‘증거 조작’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와 별개로 오는 28일 예정대로 유 씨에 대한 결심공판을 오는 28일 실시하기로 한 만큼 사실상 재판부 내에서는 유 씨에 대한 간첩 여부의 판단이 끝났을 것이라는 것이 법조인들의 의견이다.

특히 4월 중순 전에는 법원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유 씨가 1심 판결대로 무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대로 ‘간첩’으로 인정될지에 대한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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