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삶 위협받지 않기를

가랑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로 지지리도 고생만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다독거리는 말로 흔히 ‘아무개는 팔자가 세다’라고 말한다. 남의 약한 점을 깍듯이 어루만져 두둔해 주는 빈민가 사람들의 동병상련의 아픔들이 나타나 있기도 하다. 군산의 어촌마을인 해신동의 빈민가로 출가해 17살부터 굴 채취로 간고를 이겨내며 파란만장 한 삶을 살아가는 심현순(해신동,72세)씨는 고희를 훌쩍 넘긴 고령에도 고생의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자 마을주민들에게 팔자가 센 여인으로 비유되며 노역만이 천직인 냥 고된 역경 속에 가시밭길 험난한 삶을 살아 가고 있다. 심 씨는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잠에서 깬다. 반세기를 넘게 억척스레 굴 채취 작업으로 잔뼈가 굵어지면서 반복된 일로 인해 한치의 오차 없이 자명종이 따로 없다. 일기가 고르지 못해 하루라도 쉬는 날일지라면 늦잠을 청하고 싶건만 날씨변화에 민감한 신경통 증세는 심 씨를 더 괴롭히며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기상이다. 아침식사를 밥에 물 말아 대충 해결하고 새벽 4시 30분 굴 채취 장소인 야미도로 향한다. 이 곳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비응도를 경유해야 한다. 비응도는 간척사업으로 먼저 육지로 변모된 땅이며 일반교통편이 없어 부득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야미도는 비응도를 출발해 새만금 방조제길(비포장)로 15km지점에 위치하며 평소에도 바다 바람이 강해 토사를 퍼올린 방조제길이 바람에 날려 앞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워 추운 사막을 걷는 기분으로 해석되는 고초를 겪게 되며 5시간여를 정신 없이 걸어 가다 보면 눈물의 사투 끝에 야미도가 눈에 나타난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도 심씨를 괴롭혀 온 정신적 고통은 더 심했다. 야미도의 진입구인 새만금 방조제 길은 안전과 보안상을 이유로 특수목적 외에는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최고의 걸림돌로서 이들의 삶을 농락해 왔다. 야미도 주민 생계와 관련해 횟집 이용객과 낚시꾼들의 출입은 허용되는 반면 굴 채취가 유일한 생계수단으로 평생을 살아 온 이들의 출입제한은 서민들을 고사 시키려는 행위라는 비난들이 쏟아지며 파행적 운영관리에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공사관계자들과 출입자간 이해관계로 설전이 오가며 마찰이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출입의 진통과 몸의 통증들이 만나 굴 체취작업이 끝이 나면 굴 까기 작업을 걸쳐 도깨비 시장인 군산역 새벽시장을 통해 내다 파는데 얻어진 수입은 교통비(택시비)를 제외하고 나면 겨우 생계비가 고작이어서 고생의 대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돈은 못 벌어, 목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면 죽는 날까지 이 짓(굴 채취)을 해야 혀, 근데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절룩거려 약값이라도 해야 하는디 턱 없네, 이 늙은이들을 굴 따러 들어가지 못하게(야미도행) 하니 어찌 살아야 할지 암담도 하고….” 심 씨의 생계의 절박함이 나타나 있는 푸념이 안타까움을 더해 준다. 한편 심 씨의 가족으로는 2남과 딸들이 있으나 빈민가 출신의 교육기회의 불평등이 가난 대물림 현상으로 나타나 장남(39)은 어부, 차남(35)은 노동일을 하고 있어 노총각 신세 면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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