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환상으로 바라보는 기괴한 세계 탐험

<"암스테르담"의 쾌거와 비교될 수 밖에 없는 후속작> 자극적이고 논란적인 소설 "시멘트 가든"과 1998년 부커상 수상작 "암스테르담"으로 잘 알려진 문제작가 이언 매큐언의 신작 "속죄"("Atonement")는, 소위 '매큐언 스타일'을 원했던 독자들에게는 조금 의외의 작품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답지 않게 과감히 절제된 묘사와, 형식주의적 텍스쳐의 구사에서 이런 이질감이 주로 느껴지는데, 그의 전작 "암스테르담"이 날렵함과 매끄러움을 강조한 날카로운 작품이었다면, "속죄"는 보다 에너제틱하고, 보다 야심적이며, 매큐언으로 하여금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 파트의 이야기, 맥빠지는 결말> 1935년,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의 영국 중산층을 그리고 있는 "속죄"의 길고, 면밀히 운용된 첫 파트는, 일견 버지니아 울프나 헨리 그린의 작품들을 연상시키지만, 이야기가 점차 진행되면서 매큐언 특유의 색채가 배어나오고 있다. "속죄"의 주인공 브리오니 탈리스는 자신의 상상세계와 사춘기적 낭만에 사로잡혀 사는 정서불안적인 13세 소녀. 여기에 대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브리오니의 언니 세실리아와, 세실리아의 소꿉친구이자 막 싹트기 시작한 성적 긴장감 때문에 세실리아를 멀리해온 로비, 이들 셋이 그려내는 심리적 압박과 긴장의 첫 파트는, 이 소설 최고의 백미이다. 시대 상황과 배경은 능란하고 세심하게 그려져있고, 변덕스럽고 현실감각이 파괴된, 근래에 볼 수 있었던 허구적 인물들 중 가장 매혹적인 주인공 브리오니를, 매큐언은 이 첫번째 파트에서 능숙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브리오니의 어머니 역할 자처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세실리아의 캐릭터 역시 잘 그려져 있고, 이들 훌륭히 다루어진 인물들을 한데 엮어, '범죄'로까지 비화되는 특이상황의 전개를 다층적이며 면밀하게 조성해내고 있다. 하지만 "속죄"의 나머지 부분들은 이 정도로 잘 구성되지도, 첫 파트에서 발생된 추진력을 이끌어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다음 파트는 5년 뒤, 로비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한 댓가로 옥고를 마치고 나와, 프랑스 전선에서 겪는 일들과, 로비의 무고한 옥고의 원인이 된 '가상 진술'을 했다는 죄의식으로 간호사의 길을 선택해 봉사하기로 한 브리오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전쟁에서 부상당한 로비의 이야기는 방대적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상세하게 그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들의 필요성은 의문으로 남는다. 이 부분은 그 자체로도 존재를 정당화시키지 못할 뿐더러, 이후에 전개될 상황들에도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데, 대신 간호사로서의 브리오니의 삶을 다룬 부분들은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약간 설득력이 부족하긴 해도,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무지하고 무책임한 18세 소녀에서 한 명의 성숙한 성인 여성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실팍하지 않게 잘 묘사되어 있고, 소설의 제목이자 주제인 '속죄'의 테마를 성실히 구현하고 있다. 이 소설은 55년 뒤의 에피소드로 막을 내리고 있다. 노년의 성공한 작가로서, 자신의 77세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는 브리오니를 그리고 있는 이 마지막 파트는, 이 소설에서 가장 부실하고 맥빠지는 파트이기도 하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개념을 동원하고, 작가의 특권을 이용해 이야기 내 중심적인 정보를 편입/변용하는 기발한 착상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설득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속죄'라는 테마 자체를 구현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엔딩에서 매큐언이 의도했던 바를 읽어내기 힘든 것은 아니다. "속죄"는 어찌 보면, 많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양상과 견해로 이야기를 짜 기워나가는 다층적인 소설이 아니라, 주인공 브리오니의 시각과 감상으로 전해지는 브리오니 자신의 이야기일 뿐이며, 그녀의 비틀린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세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해피 엔딩'으로 재설정된 열린 엔딩은, 소설 전체의 신랄한 자세와 삶의 숙명성에 대한 고찰을 약화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어딘지 사랑스럽고 애틋하다는 인상을 남기게도 한다. <"속죄"의 미덕> 대부분의 소설들이 '플롯 중심'이거나 '인물 중심'이라는 두 가지 갈래로 나뉘어지곤 하지만, "속죄"는 이 두 갈래를 밸런스를 훌륭히 이뤄내고 있다. 플롯이 인물묘사에 가려지는 일도 없고, 인물이 플롯에 억눌려 흩어지는 일도 없다. "속죄"는 1935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64년의 세월을 훑고 있지만, 이 절묘한 밸런스는 종결까지 꾸준히 유지되고 있고, 전체적으로 고르고 여유있게 구성되어 있다. 또한 매큐언이 "속죄"에서 시도한 냉정하고 형식주의적인 문체도 매큐언 작품세계에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독자들은 등장인물들로부터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됐고, 혹시 모를 멜로드라마로의 천착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도 동시에 감수해내고 있다. 한편, 이런 절제된 무드에는 나름의 약점도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주인공 브리오니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들을 창조해놓고 정작 이들을 이해시키고, 이들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지 못하도록 의도되었다는 점은, 그 장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여러모로 기이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속죄"는 여전히 아름다운 소설이다. 시제와 장소의 이동에 의식의 흐름을 개입시킨다는 점에서 얼핏 마이클 온다체의 "잉글리쉬 페이션트"가 연상되는 이 소설은, 내러티브 전체를 지배하는 전지적 시점을 최대치 활용과 함께, '드러나지 않는 정보'들을 재치있게 사용하고 있으며, 매큐언의 작품들 중 가장 섬세한 시대탐구이자, 통렬한 정신분석학 보고서이기도 하다. 그가 그려내는 이 기괴한 세계, 77세가 되어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이고 무책임하며 환상 속에 빠져사는 '만년 소녀' 브리오니가 바라보는 이상한 세계의 이상한 이야기들은, 비록 이해하긴 힘들지라도 한번 쯤 들여다보고, 체험해 볼만한 특별하고 독창적인 세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문원 기자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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