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부채 감당 못하면 성장 엔진에 불꺼져

경제주체들의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가장 염려되는 건 역시 경제 활력(vitality) 측면이다. 빚이 한계에 다다르면 돈을 쓸 수 없다. 가정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기업은 내핍경영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재정건전화를 겨냥하면서 축소재정을 운영해야 한다. 결국 국민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민주당 의원 등 관계자들이 작년 여름 서울 중구 서울광장 국민운동본부에서 가계부채 상담소 개소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부채 의존해 성장하는 건 사상누각
경제 위기 때 절벽에서 쉽게 추락
경제주체들 빚 줄이기에 매진해야


‘외상이라면 황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언이 있다. 분수에 안 맞을지라도 일단 쓰고 보자는 심사다. ‘지름신’이 강림하면 제 아무리 자린고비라도 안 쓸 재간이 없다.

소득 수준을 넘어 소비의 유혹에 휘말리면 빚을 지게 된다. 벌기는 어려워도 쓰긴 쉽다. 버는 것은 쥐꼬리인데 쓰는 건 황소만큼이면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개인은 패가망신이요, 기업은 도산하게 된다. 나라 곳간이 비게 되면 백성들은 도탄(塗炭)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집안 어르신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가르치신다. 근검절약하고, 분수에 맞게 살고, 절대 남의 돈 함부로 쓰지 말라고….

그런데 요즘 세태는 어떤가. 몇 해 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곳저곳에서 돈을 갖다 쓰라고 종용한다. 빚 독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빌려가라고 독촉한다.

하루에도 어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여기저기서 돈 빌려가라고 종용한다. 얼마 전 있었던 일부 카드사 고객정보유출 사고 이후에는 단속이 심해 조금 뜸했지만 대출알림 메시지는 끊이지 않는다. 참으로 ‘빚 권하는 사회’다.

빚이 범람하다 보니 한국경제가 빚더미에 눌려 압사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미 가계 부채가 1000조원을 돌파한 상태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25일 발표한 ‘2013년 4분기 중 가계신용(잠정치)’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가계신용 잔액은 1021조3000억 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신용이란 가계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가계대출’과 카드·할부금융사를 통한 ‘판매신용’을 합한 것을 뜻한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은 963조원, 판매신용은 58조3000억 원으로 1년 새 57조5000억 원(6.0%) 증가했다.

이는 부동산 경기회복과 연계된 부분이 많은데,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생애최초주택구입자에 대한 세제혜택 종료를 앞두고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활성화 정책 중 서민을 위한 주택 수요를 전세자금 수요에서 매매 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대책이 많았다”면서 “생애최초 구입자에 대한 세제혜택이나 공유형 모기지 등이 취급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4분기 중 판매신용은 계절적인 요인 등으로 3조7000억 원 증가했다. 3분기 증가액 1조300억원보다 3배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 감독당국에 의해 시행된 신용카드 한도 축소 방안의 여파가 컸다”고 전하면서 “체크카드에 세제 혜택을 많이 주면서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하게 된 영향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 소득 수준을 넘어 소비의 유혹에 휘말리면 빚을 지게 된다. 벌기는 어려워도 쓰긴 쉽다. 사진은 한 백화점의 세일 장면. (사진은 기사내용과 상관없음) ⓒ뉴시스

가계부채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는 양상이다. 경제전문가들 역시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4.1부동산대책과 8.28전월세 대책 등을 지목하고 있다.

정부는 침체된 주택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주택 매매 시 정부 지원 대출 금리를 크게 낮춰줬다. 아울러 한시적이긴 하지만, 각종 세제 혜택을 줌으로써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한다’는 구매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가계빚, 공공부채 동시에 시한폭탄

가계빚 1000조와 함께 공공 부채도 1000조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정부와 비(非)금융 공기업의 빚을 모두 합친 우리나라 공공 부채가 821조원(2012년 기준)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821조원은 국민 1인당 1628만원에 해당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64.5%에 이른다. 그동안 국제기구들이 인용해온 우리나라 정부 부채비율(39.7%)의 1.6배나 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계산한 것인데 정부가 공기업 부채를 정부 부채와 합쳐 통계를 낸 것은 처음이다. 공기업 부채는 국가가 결국 지급보증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같이 합쳐서 공공 부채로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공공 부채에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 공사채권 물량(134조원)과 금융 공기업 채무가 빠져 있다.

민간 기업이 못 갚으면 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보증채무(146조원) 중의 일부도 정부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재정 전문가들은 이런 부담을 모두 합하면 사실상 공공 부채는 이미 1000조원을 넘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획재정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 “IMF 기준에 따라 연금 관련 부채와 민간 기업에 1차 책임이 있는 보증채무는 별도로 집계했고 선진국에서도 이를 합산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작년 말 가계 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연금과 보증채무를 포함한 공공 부문 부채까지 1000조원을 훌쩍 넘겨 우리나라가 ‘공공 부채 1000조, 가계 부채 1000조원’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한편, 민간 기업의 부채도 15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 잘나가는 대기업집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업들이 기업내부에 쌓아둔 자금이 없기 때문에 운영자금이나 설비투자 등 자금 수요가 있을 때 빚을 내 쓸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부채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사업이 잘 돼 지급여력이 생기면 금융부채를 해소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빚은 눈덩이처럼 쌓여 잘못하다간 부도의 위기로까지 내몰리게 된다.

국민경제는 정부·가계·기업 등 3대(大) 경제주체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이들 세 주체가 모두 빚더미에 눌려 있다. 주지하듯이 빚은 적당한 수준이면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레버리지란 지렛대를 의미하는 레버(lever)에서 파생된 말로 사전적으로는 지렛대의 원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재무적 측면에서는 타인자본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 이익률을 높이는 효과를 일컫는다.

그러나 부채가 지나치면 역효과는 걷잡을 수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부채에 의존해 성장한 나라는 경제가 위기 때 절벽에서 쉽게 추락하고, 경제 침체의 구렁에서도 좀체 헤어나지 못한다.

경제전문가들은 공공 부문이 앞장서서 빚더미를 통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변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출을 늘릴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세입(歲入) 확보 방안을 마련하거나 다른 지출을 축소하도록 의무화하는 엄격한 준칙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공부채는 사실 앞으로가 더 큰 걱정거리다. 복지 공약 실천을 위해 재정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나기 때문이다.

복지 예산은 올해만 105조9000억원이 들어간다. 박근혜 정부 내내 연평균 7%씩 불어날 예정이다. 2016년에는 120조원을 넘어서고 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127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작년 12월 24일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세미나에서 기관장들이 현 부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경제주체들의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면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빚 한계에 달하면 경제동력 상실

가장 염려되는 건 역시 경제 활력(vitality) 측면이다. 빚이 한계에 다다르면 돈을 쓸 수 없다.

가정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기업은 내핍경영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재정건전화를 겨냥하면서 축소재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국민경제의 유효수요 창출의 원천인 소비와 투자가 시들게 된다. 결국 국민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경제호의 성장 엔진에 불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장이 멈추면 고용창출이 안 된다. 실업률이 높아지면 가계 지출이 위축되고, 민간소비가 줄면 기업경영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기업이 동력을 상실하면 경제 전체도 후퇴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vicious circle) 함정에 빠지면 모든 것이 우울(depression)해 진다.

경제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리를 깊이 인식하고 하루속히 거시적 안목의 부채 관리 전략이 나와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정부도 가계부채 연착륙을 위해 다각적인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25일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가계부채의 구조를 개선하는 등 종합적·체계적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는 주택거래 회복세, 전세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금대출, 전세대출 등 주거 관련 대출이 크게 늘어난데 따른 것”이라며 “생활자금 용도의 신용대출, 비은행권 대출 등도 증가세를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이에 앞서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가계부채 관리 강화를 위해 전세대출 보증을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정부는 공공부채에 관해서는 오는 2017년까지 공기업 평균부채율을 200%까지 끌어내릴 방침을 세우고 공공부문 부채 줄이기 위해 총력을 경주하기로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부채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최근 “공공부문 부채와 가계부채를 장기적 전략에 따라 대폭 축소하고 관리하는 게 시급하다”며 국가·국민 부채 관리기구 신설을 제안했다.

그는 “공기업 방만 경영의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합리적인 자산과 부채관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또 나라든 빚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이미 고착화된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씀씀이를 줄이는 습관이 배어야 하고 기업은 실속경영을 체질화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그간 구조화된 방만경영의 틀을 벗어나 뼈를 깎는 군살빼기 작업에 진력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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