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진 계파갈등, 지방선거 앞두고 자중지란?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친박계 주류와 옛 친이계 비주류를 중심으로 한 의원들 사이에서 갈등이 점차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 공천과 전당대회 시기 등 사안을 놓고 양쪽 계파는 격돌을 불사하고 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차 밖에 안 되는 시점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 새누리당 계파 갈등이 한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더니, 다시 분출하기 시작했다. 지방선거 공천 등의 문제로 촉발된 것으로, 양측 간 고성언쟁도 오갔다는 얘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뉴시스

친박 인물난, 지방선거 앞두고 약점 노출
정몽준 vs 최경환 고성언쟁, 결국 터졌다?
차기전대 7월 14일, 일방통행식 결정 논란

2014년 초부터 여당이나 야당 모두 ‘계파 갈등’이 주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여야가 동시에 비슷한 사안과 문제를 놓고 당내에서 심상치 않은 갈등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당내 갈등의 근본 원인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소 차이가 난다.

‘인물론’ 면에서 우세한 비박계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현재 당내 갈등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6·4 지방선거”라며 “특히 후보 선정이나 공천 방식을 놓고 자연스럽게 계파 간 힘겨루기가 나오고 있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그런데 새누리당에 국한시켜 보면 민주당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는 디테일 면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이른바 ‘친박(親朴)’계, 즉 박근혜 대통령의 계보에 속하는 국회의원들의 독주체제가 무척 두드러진 양상을 보였다”라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즉 최경환 원내대표·홍문종 사무총장·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대표적인 ‘친박 실세’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사실상 새누리당을 좌지우지 해왔다”며 “이런 친박계 인물들의 득세는 작년 10월 재·보선에서 서청원 의원의 극적인 컴백으로 가히 정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친박계 의원들이 대내외에 과시하던 압도적인 위세는 올해에 이르러 6·4 지방선거가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견해가 정가 안팎에서 상당수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이렇게 엄청난 힘을 과시하던 친박계가 올해 들어 예상치 못하게 작년에 비해 다소 한풀 꺾인 듯한 양상을 보이는 상황은, 사실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현재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도는 평균 50%대 중반으로 꾸준히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편”이라며 “이와 아울러 새누리당에 대한 정당 지지도 역시 40%대 전후를 계속 찍고 있어 상당히 견고하다. 그러니 당내에서 친박계의 위세가 약해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그런데 이처럼 친박계가 다소 힘을 잃는 듯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이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특히 지자체장 선거에서 정치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로 꼽히는 서울시장 및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 사안을 놓고 친박계는 그동안 숨겼던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는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갈 수 있는 사실상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로 정몽준 의원을 꼽고 있다. 청와대 측이나 친박계 쪽에서는 내심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후보로 미는 눈치이지만,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은 정몽준 의원이 다소 앞서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언성 높이며 말싸움도 불사
한 정치평론가는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친박계가 아닌 새누리당 의원들, 즉 ‘비박(非朴)’ 내지는 친이(親李)에 가깝다고 분류되는 인물들이 대거 약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정몽준 의원은 물론 최근 가장 강력한 세를 과시하고 있는 김무성 의원, 경기도지사후보와 당 원내대표로 거론되고 있는 남경필 의원 등이 ‘비박계’의 급부상을 상징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들”이라며 “이들의 면모에 비해 친박계에서는 인물 그 자체로 강력한 존재감이 다소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친박계 면면의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이들 계보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워낙 ‘2인자’를 꺼려하는 타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박계에서는 강력한 자기 존재감이나 개성을 드러내는 인물이 적을 수밖에 없다. 과거 친박 중심 자리를 차지했다가 결국 비박 포지션으로 돌아선 김무성 의원의 경우가 이를 상징하는 대표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결론적으로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일어나는 계파 갈등 양상은, 집권 2년차 및 6·4 지방선거를 맞이하면서 정당 메커니즘상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에 대한 화두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와중에서, ‘잠룡’으로서의 카리스마나 경륜을 갖춘 인물군이 친박계보다는 비박 쪽에 더 많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했다.

이처럼 친박-비박계 의원 간의 신경전과 갈등 국면이 가장 극명하게 터져 나온 해프닝으로는 바로 지난 2월 19일 최경환 원내대표와 정몽준 의원 사이에 일어난 ‘언쟁’ 사건이 꼽히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한중의원외교협의회 위원장인 정몽준 의원이 지난 2월 20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여·야 의원 40여 명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 등과 면담하며 의원외교를 벌이는 일정으로부터 비롯됐다.

그런데 최경환 원내대표가 19일에 열린 비공개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몽준 의원의 방중 일정을 문제 삼으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다수에 따르면 최경환 원내대표는 “20일에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는 상황에서 의원 40명이 한꺼번에 출장을 가게 되면 문제가 있다”며 정몽준 의원에게 의원단 규모 축소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렇게 최경환 원내대표가 ‘요구’를 하게 된 연유는 현재 해외 순방 중이거나 정몽준 의원과 함께 중국을 순방할 의원 20여 명을 다 합치면 국회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무려 5분의 1 가량이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되어,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률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최경환 원내대표의 요구에 대해 정몽준 의원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무슨 소리냐. 사전에 원내지도부에 협조를 구하지 않았느냐”며 맞섰다. 이에 최경환 원내대표도 “그런 보고는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박하며 두 의원 사이에는 공개석상에서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두 의원 간의 설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감정이 상한 정몽준 의원은 최경환 원내대표를 향해 “나를 두고 ‘현대중공업 주식 백지신탁 문제를 이유로 서울시장 출마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그런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거세게 항의했다. 뜻하지 않은 반격에 당황한 최경환 원내대표는 “그런 적은 절대 없다”며 부인했다.

▲ 새누리당 비주류 측에서는 최경환 원내대표와 홍문종 사무총장,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 핵심실세들에 대한 불만을 높여가고 있다. 이들이 당의 주요 결정사항들에 대해 일방통행식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뉴시스

전당대회 시기 놓고도 ‘격돌’
이어 두 의원 측은 다시 “왜 언성을 높이느냐”(정 의원), “언제 목소리를 높였으냐”(최 원내대표), “동영상 한번 틀어보겠느냐”(정 의원)며 격한 언쟁을 벌였다. 이렇게 분위기가 진정될 길 없이 험악해지는 양상을 보이자, 급기야 당 중진들은 당직자들을 전부 회의실 바깥으로 내보냈다고도 한다.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당 관계자는 “두 분 모두 당 중진답게 처신하지 못했다”며 “특히 백지신탁은 개인적인 사안인데 갑자기 공식 석상에서 언급해 언쟁으로 이어진 것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언쟁은 일견 단순한 해프닝으로도 볼 수 있으나, 정가 안팎에서는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친박-비박의 해묵은 갈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사례”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정몽준 의원이 이렇게 최경환 원내대표에 대해 격분을 감추지 못했던 이유를 두고 “청와대 쪽의 의중을 놓고 본인이 일종의 차별을 당하는 것 같은 서운함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수의 새누리당 관계자에 따르면 정몽준 의원은 앞서서도 최경환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가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김황식 전 총리에 대한 ‘친박계 지원설’과 관련해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 같은 상황에 더하여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시기를 놓고도 친박-비박 양 계파 간의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전개된 바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 등 친박 지도부는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 등 선거 대비를 위해 전당대회 시기를 5월이 아닌 재·보선 이후인 8월 18일 경으로 늦춰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이에 대해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 의원들은 “4~5월 사이에 조기 전대를 개최하여 당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한 다음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강력하게 맞서는 바람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이렇게 상당한 진통과 절충 끝에 결국 지난 2월 20일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오는 7월 14일에 개최하기로 의결하며 최종 확정했다.

7·30 재·보궐선거 후보에 대한 공천이 7월 초순으로 예정된 가운데 전당대회 일자가 그 이후로 확정하게 되며 차기 원내 지도부가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재·보선 공천을 책임지고 마무리하게 됐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 비박계 의원들은 “전당대회 시기를 ‘일방통행’ 식으로 연기한 당 지도부의 독단적인 처사가 가장 큰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 친박-비박계 의원들 간의 갈등과 앙금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아울러 일부 지역의 당협위원장과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 자리를 놓고도 계파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당내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계에서는 “이 같은 계파 간 갈등은 지방선거나 전당대회를 치룬 뒤에도 오히려 더욱 심화된 양상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각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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