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천기술 아닌 황우석팀의 기술수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재검증해온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10일 46쪽 분량의 최종보고서를 통해 황 교수팀의 조작 실태와 실제 기술 수준에 관련된 새로운 사실들을 공개했다. 보고서는 논문 작성과 조작을 실제로 주도한 인물이 연구책임자인 황 교수가 아니라 실험과 데이터 정리를 책임진 강성근 수의대 교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정황을 공개했다. 또한 2004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던 체세포 핵치환 인간배아줄기세포 논문이 원래 사이언스의 경쟁지 네이처지에 투고됐으나 게재 거부를 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제럴드 섀튼 미 피츠버그대 교수가 도움을 준 사실도 새로 밝혀졌다. 우연히 일어난 처녀(단성)생식의 산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1번 줄기세포가 원래는 실험에 부적합한 미성숙 난자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연습을 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났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논문 누가 거짓으로 게재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논문 데이터 정리와 조작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인물이 연구 책임자인 황 교수가 아니라 강성근 교수였음을 시사하는 정황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조사위는 강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작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했으며 권대기 배아줄기세포연구팀장, 김선종 연구원(줄기세포를 배양담당) 등에게 여러 차례 데이터 조작과 관련된 일을 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섀튼 교수는 강 교수로부터 데이터를 전달받아 실제 집필과 심사평에 대한 응답을 맡았으며 논문 공저자로 올라가는 것은 사양했으나 사이언스 편집진 인터뷰를 주선하는 등 2004년 논문 게재 과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줬다. 황우석, 강성근, 섀튼 교수를 제외한 22명의 공저자들은 작성 내용, 제출, 심사, 출판 등 경위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번 세포는 우연히 만들어 진 것 조사위 검증 결과 ‘처녀생식’의 산물로 추정된 ‘정체불명’의 1번 줄기세포는 연습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본 실험에 쓰기 어려운 미성숙 난자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미숙련 연구원이 핵치환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1번 줄기세포라는 것. 조사위는 미숙련 연구원이 핵이식을 시도하다 핵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았고 1차 극체(난자 형성 과정에서 생겨나 방출됐다가 소멸되는 조그만 세포)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우연히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퇴짜 맞은 논문 조사위는 2004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이 원래 네이처지에 제출됐다가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던 사실도 공개했다. 이 논문의 초고는 2003년 5월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인 류영준 연구원(제2저자)이 작성했고 이후 강성근 교수가 이를 완성해 네이처에 제출했으나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저널에 실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후 ‘세계적 거물’로 성장한 황 교수에 대해 네이처가 이후 황 교수팀의 연구윤리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것은 최초 제출 시도 당시의 이러한 정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뉘먹기식 공저자 명단 작성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저자 25명 중 박예수 한양대 교수, 오선경ㆍ김희선 서울대 연구원, 박종혁 피츠버그대 연구원, 문신용 서울대 교수 등 최소한 5명은 아무런 기여 없이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황 교수팀이 실제 기여도와 무관하게 ‘나눠먹기’식으로 공저자 명단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 장성식 하나병원 원장, 구정진 하나병원 의사 등은 난자 제공에 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름을 올렸다. 황정혜ㆍ황윤영 한양대 교수는 심지어 “한양대 기관윤리위원회(IRB)의 승인을 얻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이유로 공저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이 중 황정혜 교수는 난자 채취에도 기여한 것으로 조사위는 판단했다. 2004년 논문 공저자 15명 중 하나인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 역시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황우석 교수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이름을 넣어 준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천문학전 난자 수 결과는 제로 황 교수팀이 제공받은 난자의 수가 2002년 11월 말부터 2005년 11월초까지 2천61개에 이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 중 2004,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연구를 위해 쓰인 난자 수가 몇 개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결국은 동일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조사위의 판단이다. 이는 황 교수팀이 연구 과정에서 ‘천문학적’으로 많은 난자를 사용하고도 핵치환 배아줄기세포는 단 1개도 확립하지 못했음을 뜻해 ‘원천기술 보유’ 주장의 설득력을 현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 조사위는 ‘원천기술’이라는 용어 대신 ‘황 교수팀의 기술 수준’으로 표기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끝까지 믿어준 국민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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