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방송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비평>을 말하다

<미디어 비평>은 MBC 봄 개편 신설 프로그램이다. <시사 포커스>에 한 달에 한번 신문비평이 있긴 했지만 단독 프로그램으로는 최초다. <미디어 비평>은 <100분 토론>의 최용익 부장 등 16명으로 팀이 꾸려졌다. 이 팀은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내용을 조언하는 평가위원 7명을 위촉했다. 언론사 간 중재 및 소송 사태가 빈번한지라 평가위원에는 변호사도 2명 포함돼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실시되고, 언론고시가 부활하고, <한겨레>에‘언론개혁 시리즈’가 연재되고 언론사의 자사 중심주의 사설과 서로간의 비방이 해방이래 최고의 수치로 치닫고 있던 즈음에 <미디어 비평>의 신설이 결정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무엇보다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김현주 차장의 말대로 제작팀은 “언론도 소비자가 감시하면 더 나은 품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미디어환경에 대한 소비자주권을 주장하는,”다시 말하면“선수들만 보지 않는”프로그램을 만들겠지만,‘언론’의 주목을 끈 건 무엇보다‘언론’이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무서운 것은 <한겨레>가 아니라 방송이다”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이 말을 통해 메이저 언론이 <미디어 비평>에 가진 감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지난 4월 28일 첫 방송은‘신문고시’,‘상호매체비평의 현주소’등으로 짜여졌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서‘규제위원회 신문고시 반려’라고 보도한 것은‘자신들의 논조에 맞도록’ 발췌함으로써 이루어진 기사임을 규제위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방송 뒤 나온 미디어의 비평은 <미디어 비평>이 ‘어떻게 자신을 대접했나’에 따른다. ‘미디어 비평 첫 전파, 신문고시 한쪽 주장에 치우친 감’,‘균형감각 애쓴 신문 다시 보기’,‘미디어 비평 아쉬움 속 긍정적 출발’. 이 기사의 제목은 순서대로 <동아일보> <한겨레> <문화일보>의 것이다. <동아일보>는 ‘언론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첫 회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단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라는 말로 첫 문단을 마감한 반면, <한겨레>의 기사는‘신문들의 보도 태도를 정리하는 수준으로 꾸미는 등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고 두 번째 단락을 시작한다. 두 글은 거의 같은 시청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인용에 대한 비중은 그야말로 갖가지, 그리하여 결론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간다. <중앙일보>는 ‘말 말 말’에서“MBC가 언론의 심판자가 된 양 진실과 거짓을 저울질하고 있다”(MBC 인터넷 홈페이지 네티즌,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내용을 비판하며)라고 실었다. 장광근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 장전형 민주당 부대변인의‘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이 말은 이 꼭지의 제일 앞을 차지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현직기자와 학계에서는‘미흡했다’는 의견이 많은 편이었다. 매체간 상호비평을 통한 언론개혁이 절실함을 역으로 보여준다”고 언론개혁의 기치를 더 높여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미디어 비평>은 3회에 MBC뉴스를 ‘비판’대상자로 등재했으며, 4회에는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전두환 장군과 당시 MBC 사장 이진희씨와의 녹화전 상황을 담은 방송테이프를 방송했다. 6회는 MBC가 전야제를 벌이고, 중계방송한 ‘미스코리아대회’를 뉴스초점의 대상으로 삼았다. MBC가‘심판자’로서가 아니라‘감시자’로서 스스로 매를 든 마음을 감지하게 한다. <한겨레>는 “방송보도행태도 도마 위”라는 제목으로“갈수록 흥미 위주로 접근하는 방송의 행태를 적나라한 화면들을 보여가며 꼬집었다”라고 말했다. 4회 방송 뒤 <동아일보>에는 “나는 80년 당시 MBC의 보도 행태에 돌팔매를 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국민 모두가 기본권을 유보당한 계엄령하의 시민이었고, 언론이나 시청자나 모두가 다 같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오늘, 비평하는 주체로 자리바꿈을 해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을 점잖게 유리시키려는 시도는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는 박성희 교수의 TV읽기 칼럼이 실렸다. 1987년 6월이 되살아왔다. 지난 6월 말 나란히 첫 전파를 탄 한국방송의 <인물 현대사>와 <미디어 포커스>는 87년 6월에 바치는 일종의 헌사이고, 반성문이다. 제1텔레비전의 <인물 현대사>가 민주화운동 열사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으로, 제2텔레비전의 <미디어 포커스>는 독재권력에 부역했던 방송사의 고해성사로 첫 포문을 열었다. 지난 대선을 통해 주류 권력을 장악한 386세대 혹은 민주화운동 세력이 마침내 방송까지 접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혔다. <인물 현대사>의 첫 방송 다음날 전파를 탄 <미디어 포커스>의 첫 번째 편 ‘KBS, KBS를 말한다’는 권력에 부역해온 스스로에 대한 자아비판이었고, 전향문서였다. 한국방송의 반성문은 화끈했다. 스스로 낯 뜨거운 땡전뉴스의 기억을 되살렸고, 빨갱이 사냥의 죄과도 들추었다. 독재권력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부르고도 민주화 이후에도 승승장구한 “KBS인들”의 얼굴까지 까발렸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서 자유로운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으나 국민의 정부에서조차 환골탈태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했다. <미디어 포커스>는 본격적인 방송비평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진행된 두 번째 방송에서도 신문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방송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강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방송의 반성문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판단유보다. 또한 방송사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미디어간의 상호견제와 비판’을 내세우면서도 사실상 조중동 ‘때리기’에 집중하는 것도 또 다른 권력 쌓기가 아닌지 미심쩍다. 이제 방송은 조중동보다 더 큰 권력이다. 더구나 방송은 간단한 반성문으로 과거에 대한 면제부까지 손에 쥐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스스로 움켜쥔 권력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반성없는 권력은 권력에 대한 허무주의만 유포할 뿐이다. 글/ 남정민 기자 njm8309@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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