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 "열심히 했으나 구조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다"

2005년 11월 23일 쌀협상 비준안이 국회 통과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쌀 관세화 유예를 2014년까지 10년간 추가로 보장받는 대신 의무수입물량(MMA)이 해마다 일정량씩 늘어나고, 수입쌀의 소비자용 시판이 허용된다. 관세라는 명목상의 보호장벽은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쌀 시장 개방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에따라 농민들은 “이번 비준안이 350만 농업인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다”며 한국농업인연합회(이하 한농연)을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도 비준안 통과 시점에서 농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이 몸싸움을 불사하며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쌀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농업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농업 시장 개방화의 현 주소와 미래 전망을 살펴보고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 농촌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쌀시장이 개방되기 까지 지난 11월 23일 우리나라 국회는 침통한 표정으로 쌀 협상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전국의 농민들은 “350만 농업인 전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용철(43)·홍덕표(68)씨가 시위 진압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사망하는 등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시위에 참가한 농민들의 주장은 정부가 기간산업인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업 등 2차, 3차 산업을 키우려 한다는 것과 외국의 곡물 메이저들이 무차별 저가공세로 우리나라 메이저 시장을 잠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쌀 시장과 관련 10년간 특별대우를 받아온 우리로서는 더 이상 쌀 시장개방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지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에 참여한 우리나라 협상단은 당시 ‘예외 없는 관세화’ 협상 원칙에서 쌀을 예외로 다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고 우리 협상단이 벌인 눈부신 활약의 결과 농업협정 부속서 5가 만들어졌다. 이 부속서에 따라 우리나라는 WTO가 발효된 1995년부터 10년간 소량의 쌀을 아주 낮은 관세아래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대신 쌀을 관세화하지 않고 수입을 제한할 수 있었다. 그러나 WTO가 시작된지 10년 후인 2005년, 우리나라는 약속대로 쌀 시장을 개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10년전 이미 전 세계로부터 쌀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얻어낸 바 있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쌀 수입을 거부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1995년 이후 쌀 국제경쟁력 노력 전무 그러나 농민들은 10년전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과격시위를 되풀이 하고 있다. 농업의 위기, 쌀 산업의 붕괴 등을 우려하는 이들의 주장도 10년전과 같다. 그렇다면 농업분야에서 10년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결론은 전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쌀을 포함한 어떤 농산물도 더 이상 국가적 보호를 받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10년전 우루과이라운드 시절 확정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10년 후 전 세계의 쌀들에 대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그러나 농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관련 10년간 일어난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팀의 개가가 물거품이 된 순간이다. 이와관련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농업은 수박을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등 계절에 대한 제약이 사라졌고 농사의 기계화가 보편화되는 등 10년전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다”면서도 “그러나 국제경쟁력에 대해서는 추곡수매제도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관계 및 규모면에서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 쌀 협상팀이 우리나라 쌀 시장 개방을 50년 유예 받더라도 50년 후에 오늘과 같은 논란이 똑같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 농업 발전에 관심 없어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이 규모와 체계 면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추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농민단체는 동의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공통적으로 그동안 농업정책을 선거와 관련 선심성 정책 차원에서 다룬 정치권의 문제를 주장하고 있다. 우선 한농연은 “그동안 농림부 등 정부당국에 추곡수매제도 대신 직접지불제동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했으나 2001년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농림부의 한 관계자도 “한농연의 입장에 공감하며 이를 추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추곡수매제도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막힐 수 밖에 없었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또 정치권 관계자도 “농업은 일단 우리나라 산업의 중요성에서 멀찍이 밀려났다. 다만 선거관련 표밭관리 차원에서 다뤄질 뿐”이라고 귀띔했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민간의 시도들 정치권의 인식과는 달리 민간차원에서는 농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미 여러 방안들이 시도되고 있다. 전라북도 김제의 참샘영농조합은 천적농법을 개발, 1995년 이후 유리온실에서 재배한 파프리카의 90%를 수출하고 10%도 국내 유명 백화점을 대상으로 출하하면서 고급화 브랜드로의 이미지를 굳혔다. 천적농법은 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잡아먹는 곤충이나 곰팡이를 길러 적당량을 논밭에 풀어놓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참샘영농조합은 파프리카에 농약 자체를 치지 않음으로서 일본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참샘 파프리카의 명성은 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30일 미국 동식물검역소는 한국산 파프리카의 수입을 허용하기 위한 규정(안)을 지난달 29일자로 미국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했다. 이에 따라 내달 27일까지 최종 여론수렴기간을 거쳐 3월 초부터 수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작년 11월 27일 한국벤처농업대학은 국제경쟁시대 신농업인 육성처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은 농사로 부자가 된 스타농업인 1천명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설립됐다. 농업인 스스로가 변화하여 농업을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생활협동조합은 각 지역조합 차원에서 해태제과 등 특정회사의 해당지역 공장과 제휴 필요 농산물을 계약 재배하는 시도를 한 바 있다. 현재는 규모의 한계로 인해 유명무실화 됐으나 의미 있는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한농연 소속 한 조합원의 경우 당료치료에 효과가 탁월한 쌀 개발에 성공하고 대량생산 방안을 연구중에 있다고 밝혔다. ▲우수한 하드웨어에 걸맞는 효과적 시스템 갖춰야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 인프라가 아주 열악하지는 않다. 우리나라 농업지원 인프라의 경우 시설이 낙후된 점을 제외하면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는 미국 등 선진국에 못지않다는 평가다. 다만 시설이 낙후되 일부 교체해야 하는 점과 하드웨어를 효과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전문인력 및 합리적 법체계, 운영시스템 등 소프트웨어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농업 최강국인 미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 기계 등을 갖추고도 완전미 비율이 미국 90%, 일본 84%보다 뒤진 83%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타 산업과의 접목 통한 블루오션 창출 그리고 농업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즉 타 산업과의 전략적 융화를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업도 봄에 씨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가을에 풍년이루는 식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마케팅과 비즈니스 마인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농산물 측면에서 식품, 제약, 유통 등 산업과 접목하고 농사지와 관련하여 관광, 레저 등과 결합하며 마케팅 차원에서 예술, 문화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지원 인프라 확충 이와 함께 국가적 지원도 빠지면 안된다. 물론 WTO 협상에 따라 보호장벽을 통한 지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스템 마련에 적극 나설 필요는 있다. 이와 관련 한농연 관계자는 “우선 쌀개방 등과 같은 어려움이 있을 경우 실질적인 민간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농협 등 농민 자치기구들의 전면적인 개혁이 절실하며 그 다음으로는 농업관련 학문, 연구소, 벤처기업 육성 등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 타 산업과의 전략적 왕래를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일부에서는 군량미 수급과 민통서 지역 농지 등과 관련 국방부와의 협력, 기업농 육성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