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외면하거나 잊어버리면 반복된다”

견벽청야(堅壁淸野). 말썽의 소지가 있는 곳의 벽을 견고히 하기 위해 들을 초토화시킨다는 뜻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1년 2월 국군은 ‘견벽청야’라는 작전명을 걸고 거창군 신원면 일대 마을사람들 719명을 몰살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어린아이와 부녀자였다. 이유는 이들이 공비와 내통했다는 것. 이념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군은 ‘공비소탕’이란 명분하에 무고한 목숨들을 앗아갔다.
이 사건이 바로 ‘거창양민학살사건’이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은 참혹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진 않다. 국가는 외면했고 우리들은 무관심했던 사건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은 등 거창양민학살사건의 비극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 비극을 조명한 ‘청야’라는 영화가 나와 눈길을 끈다. 2009년 정들었던 충무로를 뒤로 하고 귀농한 김재수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를 “청산되지 못한 과거, 위로받지 못한 슬픔에 바친다”는 그를 23일 배급사인 마노엔터테인먼트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일본 놈 대창 위협에도 살았는데
인민군 장총 구타에도 살았는데
설마설마 국군이 죄없는 백성 죽이랴….
-영화 ‘청야’ 속 인터뷰

 

-거창양민학살사건은 많이 알려진 사건은 아니다. 김재수 감독은 어떤 계기로 이 사건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됐나.

‘거창양민학살사건(이하 거창사건)’은 내 나이 정도가 되면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에 안다. 하지만 국민적으로 풀어나가지는 못한 사건이었다. 마침 2009년 아내와 거창군 신원면으로 귀농을 했다. 경관이 마음에 들어 정착하기로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거창사건 현장이라는 건 몰랐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다 싶었다. 감명 깊게 읽었던 김원일 작가의 ‘겨울 골짜기’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현장을 구석구석 밟았다. 신원면에 있는 거창사건추모공원에 찾아갔고 유족회장 등을 만났다.

그런데 많은 거창사람들이 거창사건을 신원사건이라고 부르더라. 지역 학생들도 거창사건에 대해 잘 몰랐다. 같은 지역에서도 외면당하는 거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이들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탄압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었다. 불이익을 당하다보니 본인들과는 별개라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거창사건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는 거창사건 60주기였던 2011년 기획됐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거창군에서 1억2500만원을 지원해줬고 거창출신 기업인과 유족회 등에서도 후원해줬다. 배우들과 스텝들도 차비만 받고 참여해줬다.

-영화에서는 넘어진 비석이 몇 차례 클로즈업 된다. 비석은 왜 넘어진 채로 있는지, 또 비석을 클로즈업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거창사건은 1951년 일어난 사건이다. 거창사건 유족들은 약 10여년이 지난 1960년 4.19 혁명 때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합동묘를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그런데 1년도 안 돼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당시 군인들은 합동묘를 파헤쳤고, 비석은 적힌 글씨를 읽지 못하도록 깨부수고 땅에 파묻어버렸다. 비석은 땅속에 파묻은 걸 거창사건 유족들이 꺼내놓은 것이다. 이들이 비석을 넘어진 채로 놔둔 건 거창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다.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이뤄질 때까지 넘어진 채로 나두겠다는 의도다. 이 비석을 클로즈업한 것도 그간 정부에서 거창사건 피해자들을 내동댕이 쳐왔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인상적이다. 다소 짧게 들어간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얘기를 듣긴 했다. 영화에서 인터뷰가 차지하는 시간은 4분 정도다. 전체로 보면 길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열한 분에게 들었다. 이 가운데 가장 생각나는 건 “일본 놈 대창 위협에도 살았는데, 인민군 장총 구타에도 살았는데, 설마설마 국군이 죄없는 백성 죽이랴…”라는 내용의 글을 읽으셨던 분과의 인터뷰다. 또 손녀한테 앞부분에서 “오줌 안 마려?”라고 하셨던 분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전체맥락과 관계가 없어 뺐지만 계모와의 갈등, 연좌제로 인한 사회진출 제약 등 사연들도 많았다.

-신원초등학교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인상 깊었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건 뭔가.

사실 전체 이야기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이 장면을 넣은 건 60여년 전 죽은 어린이들과 오버랩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거창사건으로 죽은 14세 미만 어린이는 350여명이었다. 또 신원초등학교는 국군이 신원면 주민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모아놨던 곳이다. 그러고선 면장을 앞세워 군인, 공무원, 경찰 가족은 나오라고 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민들이 뛰어나오자 국군은 문을 닫아버리고 수십명을 학살했다. 그리고 신원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른 노래는 김민기가 부른 ‘금관의 예수’다. 이 노래는 영혼들을 달래달라는 의미로 선택했다. 가사를 보면 의미가 다가올 거다. 난 이 장면을 찍을 때 울었다. 60여년 전 국군의 총질로 죽은 아이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 또 한 달간 노래를 익힌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도 있었다.

사진제공 마노엔터테인먼트

-거창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에 관한 법률이 계류 중이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없나.

1996년 거창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에 관한 법(거창사건특별조치법)이 통과됐고 김대중 정부에서 추모공원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피해보상이 먼저 이뤄져야 명예회복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일례로 제주 4.3사건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은 피해보상이 먼저 이뤄졌다. 거창사건의 경우 한국전쟁 때 이와 비슷한 사건이 너무 많았다. 거창사건에 대한 보상을 하면 비슷한 사건들에 대한 보상도 해야 되니 정부에서는 예산을 이유로 보상부분을 강화한 개정안을 거부했었다. 근데 그건 핑계다. 거창사건은 이승만 정부에서도 정부의 잘못을 인정한 사안이다. 이것부터 해주고 다음은 또 그때 해주면 된다.

2012년에도 민주당 우윤근 의원이 ‘거창사건 관련자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지역에서 봤을 때 민주당하고 정서가 맞지 않는데도 우윤근 의원이 관심을 가져줘 고마웠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관심을 안 갖는 것 같았는데…. 근데 아직 진행된 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는 바람에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아무래도 아버지 때 일어난 사건과 자유스럽지는 못하지 않겠느냐. 때문에 아직까진 크게 국회 차원에서 보상에 대한 것이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영화가 잘 되서 반향이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감독으로서 관객에게 바라는 점은.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외면하지 않았다면 기억되어야 한다.’ 영화에서 자막으로 나온 말이다. 우리가 그동안 거창사건을 외면해왔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생각해보니 제주 4.3사건은 좌우대립,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화-반민주화간 대립이 있었다. 거창사건은 억울하고 비참하고 통탄할 일인데도 대립이 없다보니 각인이 안 돼왔던 것 같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이 사건을 모르고 또 알았다고 해도 왜 관심을 안 가졌을까, 영화 속에서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가미하는 등 쉽게 만들려고 했다. 역사라는 것은 외면하거나 잊어버리면 반복된다. 청야를 통해 이 같은 비참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IPTV로도 제공되고 있어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보다 넓어진 것 같다. 가족들이 이 영화를 같이 보면 좋겠다. 한국전쟁 당시 이야기니 아이들이 정확한 역사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논외이긴 하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서 관객 입장에서도 늘 아쉬웠다. 영화계나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정부와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이미 저예산 독립영화, 예술영화 활성화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돼있고 지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극장이 아니어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사실이고…. 그래도 보다 다양성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우리 근현대사를 보면 역사적 아이러니가 많다. 이에 대한 콘텐츠 개발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고, 또 영화제작 지원전담팀을 만들어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웃음) 결국은 돈 문제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