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통해 개선되는 아이들 보며 판사로서 자부심 느껴

“청소년 범죄 줄이기 위해서는 가정환경부터 고쳐줘야”
“법정서 아이들과 대화 나누다 보면 그들 심정 이해돼”
“소년 재판, 죄 따지기 앞서 아이들 인생 먼저 살펴야”

▲ 이현오 판사는 법정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 의정부지법

최근 ‘청주 묻지마 폭행 10대 구속’, ‘또래 여학생에 성매매 강요한 10대 입건’, ‘여자친구 나체 사진 유포 협박 10대 실형 선고’ 등 10대들의 범행이 날로 과감해지고 흉포화 되고 있다.

과거 청소년 범죄라면 단순히 ‘절도’가 떠올랐지만 요즘은 ‘살인, 강간, 방화’ 등 흉악 범죄가 넘쳐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최근 5년간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방화) 발생률은 2007년 2113명에서 2011년 3205명으로 증가하고 재범률이 2007년 29.1%에서 2011년 36.9%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최근 10대들의 범행은 작게는 단순 폭력에서부터 성 관련 범죄, 나아가서는 방화와 살인 등에 이르기까지 그 수법과 죄질이 성인을 훨씬 능가한다.

이와 같이 청소년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은 지금, 이들 청소년에 대해 가장 가까이에서 정확하게 바라보는 소년법정 판사를 만나보기로 했다. 법관들이 바라보는 10대 청소년들의 비행과 그 현실은 어떤지 궁금했다.

지난 9일, <시사포커스>는 최근 ‘소년 참여 법정’을 개정해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준 것으로 화제가 되었던 의정부지방법원 소년단독 이현오 판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판사라는 직무 때문에 엄격한 이미지가 연상됐지만, 이현오 판사는 대화하는 내내 법의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대화와 이해를 통해 청소년들을 바라봐 주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현오 소년부 판사와 일문일답 전문>

▲ 이현오 판사는 “넌 할 수 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기회가 방황하는 아이들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 시사신문

Q. 소년부 판사로 재직하신 기간은 얼마나 되셨나요?
A. 총 법조 경력은 만 8년째입니다. 현재 소년부 담당 판사가 된지는 1년째입니다.

Q. 소년부 판사로 재직하시며 수많은 소년범들을 만나셨을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A. 지난 해 여름, 중학교 3학년 남학생 7명 정도가 모텔에서 수차례에 걸쳐 또래 여학생을 강간한 사건입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보니 수법도 굉장히 잔인하고, 우발적이라고 하기에는 상습적으로 이루어졌던 부분이 있더군요. 어린 아이들이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Q. 그런 학생들을 보시면 어떤 감정이 떠오르시나요?
A. 가장 먼저 피해자가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록을 살펴보다 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관으로서 감정에 치우쳐서 재판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개인적 감정이나 기분을 갖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안타깝다거나 안됐다거나 하는 감정이 안 든다는 건 거짓말이겠죠.

Q. 최근 청소년 문제가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들의 범죄 행위가 점차 잔인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A. 잔인하다기 보다는 과감하고 지능적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일례로 ‘절도’ 사건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이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아이들이 집을 나가면 알던 친구들끼리 생활하는 등의 유형이 많았지만 요즘은 인터넷으로 상황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만나 ‘가출팸’을 구성합니다. 인터넷으로 만나다 보니 지역 범위는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고 그렇게 만난 아이들끼리 절도를 하게 되는 식입니다.

▲ 이현오 판사는 법정에서 뿐만이 아닌 보호청소년 캠프 등을 통해 더 가까이에서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 의정부지법

Q. 요즘 청소년 범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건은 어떤 종류인가요?
A.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 절도’가 가장 많습니다. 스마트폰은 현금화가 매우 쉽습니다. 찜질방 같은 곳에 쉽게 들어가서 절도를 하고 인터넷에서는 금방 거래가 되고 돈이 생기니까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Q. 최근 청소년 범죄가 부각이 되면서 청소년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판사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A. 양형이라는 문제는 사실 법관으로서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물론 정해진 기준에 따라 판단을 하지만 양형이라는 것은 사회의 문화, 여론의 결과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형이 정해지는 기준이 ‘그 사회에서는 그만큼의 양형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만큼 정해지는 것이니까요.

과거에는 ‘어리니까’ 라는 이유로 처벌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던 것이고 지금은 그와 반대되는 여론 입장이 있으니 이대로라면 점차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낮다, 높다를 판단하기 보다는 사회적 시선을 따라가는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에 동떨어져서 양형을 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선도해서 법원이 바꾸어 나가야 할 부분도 물론 있지만 양형 부분은 사회 문화나 여론이 이렇게 하는게 맞다고 하면 아무래도 따라가야 하는 점이 있거든요.

Q. 청소년 시기에 우발적인 범행이 낙인이 되어 성인이 된 후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러한 ‘낙인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에 대한 판사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A. 법적으로는 재판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불합리한 처분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낙인론은 ‘법’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사회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생들이 했던 우발적인 사건에 대해 차별을 받는다거나 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법에 그렇게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집행하는 법관의 입장에서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 스스로가 낙인을 찍는 것 같아요. 사실 본인이 개선을 하지 못하고 그 틀 안에 갇혀 산다는건 본인의 책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재판을 하다 보면 한 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재차 마주하게 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저 아이들이 교정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그 아이들에게 기회를 다시 한 번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아이가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지 않도록 법정에서 이를 일깨워 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아무래도 소년부 법정이니까 일반 법정과 달리 많은 대화가 오고갈 수 있으니까요.

Q. 아무래도 재판을 하다 보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청소년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A. 작년 10월경 만난 아이입니다.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때였는데 보호관찰소를 통해 한 청소년의 아버님께서 “아들을 소년원에 보내달라”며 다시 재판 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넌 어제 뭐했니?”라라는 제 첫 질문에 “오늘 소년원 간다고 해서 송별회 했습니다” 라고 답하더군요. 황당했지만 “너의 잘못을 알고 있느냐”는 제 물음에 그 아이는 ‘알고있다’며 ‘오늘 바로 소년원에 갈 각오로 이 법정에 왔다’ 라더군요. 아이가 고3이다 보니까 수능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수능시험을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니 “소년원에 가면 못 보게 되지만 보고는 싶다”라고 답하더군요.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요청에 따라 당연히 아이를 소년원에 보낼 생각으로 법정에 들어갔지만, 그 학생을 만나고 아버님을 설득했습니다. 적어도 수능이라도 볼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수능 끝나고 난 후 다시 재판장에서 보자는 약속과 함께 다음 재판까지 술, 담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일기를 매일 쓸 것을 과제로 시켰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재판에 들어오는 학생의 모습에서 저는 “이 학생이 변했구나”라는 것을 대번에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눈빛부터가 다르더군요. 그 아이는 소년원에 갈 것을 각오하고 재판장에 왔다가 도리어 기회를 얻고 나니까 이 기회가 정말 마지막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더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해서 수능도 생각보다 잘 치렀다고 하더군요. 함께 오신 아버님 역시 아들을 바라보시는 표정이 확연히 달라지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소년부 판사로서 누군가를 개선시켰다는 점에서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기억에 남습니다.

▲ 아이들에게 ‘가정환경’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강조하는 이현오 판사는 그 가족들과도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며 가족들 역시 아이들에게 훈계보다는 애정과 관심을 쏟을 것을 직접 당부한다. ⓒ 의정부지법

Q.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가 청소년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요즘은 초등학생이 음식점에서 사탕 한 알 훔치는 것으로도 절도죄로 신고를 합니다. 물론 저는 법관이지만, 사실 큰 절도가 아닌 이상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을 적당한 선에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굳이 어린 아이들을 법정에 세우지 않는 어른들의 방침이라든가요.

또 저는 대부분 청소년들의 범죄 발생 이유는 가정환경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년부 재판은 단순히 그 아이가 저지른 사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태어나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 성격, 주변 사람들 같은 부분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합니다.

열명 중 아홉명 이상은 편부모 가정이라거나 가정의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저는 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닌 가정이나 외부적 환경의 개선이라고 봅니다. 아이가 어떤 처분을 받았던 간에 이후에 또 다시 같은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교정이 될 수 있을까요?

Q. 그렇다면 판사님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역할을 해 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A. 소년부 재판은 아이들의 죄가 아닌 그 인생을 봅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처분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법정에서 죄보다도 그 인생에 관한 대화가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대화를 해 보면 아이들이 왜 그랬는지에 대해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다 보면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뭔지, 마음 속 깊은 상처까지도 알아가게 됩니다.

즉,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기회를 줘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필요한거죠. 무조건적으로 잘못했다, 넌 한번 이랬으니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라며 혼내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넌 할 수 있다”, “넌 변할 것이다”라는 따뜻한 말과 기회가 그 아이들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혹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린다면요?
A. 물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은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청소년들은 어리기 때문에 학교 입시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꿈을 위해서 본인의 노력을 충분히 발휘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생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해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 청소년이 몇이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는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나 그런 것들, 내 스스로 열심히 열정을 바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혹시 그 일이 실패하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어떤 일에 최선을 다 했다는 경험이나 기억만으로도 본인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노력을 해본 사람과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명백히 차이가 있습니다.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자신감이라는게 생기게 됩니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은 아직 젊은 친구들이니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꼭 한번쯤은 원하는 일, 그 일에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할 수 있는 경험을 한 번씩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단기간이 아니라 몇 년 씩이라도. 혹시 그 일이 실패할지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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