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치유는 한 차원 비상의 필요조건

다사다난했던 계사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뱀이 도망갈 때 꼬리가 강하게 흔들리듯 묵은해도 최장기 철도파업이라는 몸살을 안은 채 세월의 뒤안길로 흘러가고 있다.

철도파업으로 인해 일파만파로 파생된 우리 사회의 반목, 모순, 갈등, 불통이 여실하게 수면 위로 오르는 양상이었다.

이른바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이 확산되면서 계층간, 진영간 논리가 대자보 형태를 띠고 첨예하게 대립되는 국면으로 연출됐다. 안부 인사를 묻는 지극히 일상적인 언사가 ‘너희들 때문에 안녕치 못하다’와 ‘우린 안녕한데 왜 괜스레 건드느냐’ 상극의 답변으로 상쟁의 불길이 치솟았다.

인간 사회에 갈등이 필요악인 것은 정치 사회학적으로 이미 검증된 명제다. 갈등과 대립은 정치 및 사회발전 다이내미즘(dynamism; 역동성)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문제는 모순과 부조화를 극복하고 정, 반, 합의 변증법적 논리대로 통합의 길을 가느냐, 아니면 분열의 나락으로 떨어지느냐의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이다.

참으로 다행히도 여, 야 정치권은 모처럼 신출귀몰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철도 파업의 형국을 쾌도난마의 합의 도출로 실마리를 풀어냈다.

철도 민영화를 온몸으로 막아선 철도노조와 민노총, 그리고 민영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입장을 편 정부가 송구영신의 의미 있는 시점에서 접점을 찾은 건 무척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양측 모두 일리 있는 명분이 있고, 버릴 수 없는 담론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평행선이 마냥 이어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소통하고, 합의하고, 함께 어깨동무하여 통합의 길로 가야하는 것이 명분위의 대명분이며, 숙명적 귀결이다.

왜냐하면 모든 명분위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당파나 조직은 어떤 경우 건 간에 장기 연명할 수 없다. 일시적인 득세는 가능할지 모르나 그건 착시에 불과할 뿐이다.

이번에 여야 정치권과 철도노조 등 범 노동권이 모처럼 손을 잡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 지혜로운 결단을 내렸다는 인상이다. 속셈이야 어쨌든 겉으로 보기엔 모두들 국민을 의식하고 호양의 미덕을 품어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이다.

기자는 인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한다. 출근할 때 인천 제물포역에서 보통 5분 정도 기다리면 전철이 온다. 그런데 파업 기간 중엔 그보다 몇 배 기다린 적도 있었다. 매서운 삭풍이 플랫폼을 후비고 지날 때 열 받는 건 나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내 옆엔 국민들이 혹한에 떨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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