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식코>를 기억하는 국민들, ‘절대 저지’ 눈물로 호소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8년, 대통령 취임 100일도 지나지 않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거대한 민란에 직면했다. 그해 봄 미국을 방문했던 이 전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월령 제한 없는 수입을 약속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광우병’ 우려 등으로 민심이 흉흉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민적 우려에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했다. 성난 민심은 들불처럼 번졌고, 광장은 연일 촛불로 타올랐다. 그해 여름까지 이어진 촛불시위는 결국 이명박 정권을 두 손 들게 하고 말았다.

▲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되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좌초됐던 의료민영화가 다시 추진될 조짐을 보이면서 각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민영화가 결코 아니라며 해명하고 있지만, 국민적 반발 심리는 하늘을 찌를 듯한 상황이다. 사진 / 뉴시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민심이 폭발한 이유는 단순했다. ‘광우병’이라는 우려가 있는 상황인데, 정부가 국민의 건강주권을 포기했다는 분노 때문이었다. 정부는 오해가 있고 사실과 다르다며 연일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분노한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왜 처음부터 국민적 동의도 없이 대통령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국민에게 통보만 하느냐는 불만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투명하지 못한 국정운영 방식에 문제의식이 더해진 것이었다.

아울러, 이처럼 국민적 시선이 온통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집중돼 있던 시기 정부는 이면에서 각종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해 민심을 더욱 분노케 했다. 바로 지금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의료민영화, 철도민영화와 더불어 전기, 가스, 수도 등 국민 생활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었다.

당시 여론은 들끓었다. “서민이 가장 필요한 수도-전기-가스난방 등 민영화가 되면 정부의 공공요금 통제기능이 없어져 요금이 오를 것은 분명하다. 누구를 위한 민영화며, 누구를 위한 정부냐”는 성토가 빗발쳤다. 이 같은 국민적 저항에 불도저정권이라 불렸던 이명박 정권조차 민영화를 의지대로 강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박근혜 정권의 현재 모습이 이명박 정권의 모습과 꼭 닮아 있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년 내내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문제로 반정권 성향의 정치세력과 시민들에게 시달려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취임 초기부터 홍역을 치렀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2008년 광장에서는 ‘MB OUT’, ‘이명박 하야’ 등의 피켓과 구호들이 난무했고, 2013년 지금 광장에서도 ‘박근혜 OUT’, ‘박근혜 하야’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게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있는 사이, 각종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를 이면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 또한 꼭 닮아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도,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결코 민영화가 아니다’는 입장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국민 여론이나 관련 단체들은 정부의 해명을 결코 믿지 않고 있다.

정부 말처럼 지금 당장은 ‘민영화’가 아니라 할지라도 민영화를 위한 수순 단계로밖에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옹’한다는 비판이 불을 뿜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과 이 조차도 꼭 닮아 있는 모습이다.

◆약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
2008년 봄, 쇠고기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시기 미국發 한 편의 영화가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라는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미국 의료 제도의 모순을 정면으로 파헤쳤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노동자는 손가락 두 개가 잘렸다. 미국 병원에서는 중지 접합에 6만 달러, 약지 접합에 1만2000 달러를 받는다. 돈이 없는 그는 약지만 봉합하고 중지는 새 모이로 던져 버린다. 그가 의료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던 탓이다.

미국의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약 5,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에서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를 시행하지 않다 보니, 값비싼 민간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서민들은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돈 없고 아프면 죽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최근 방송된 SBS <특별기획> ‘최후의 권력’ 시리즈도 같은 의미에서 주목받고 있다. ‘금권천하’라는 제목의 방송에서는 미국의 의료시장에 대한 문제가 다뤄졌다. 방송에서는 디어몬트 조지라는 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디어몬트는 충치를 앓고 있었지만,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치주염을 방치한 디어몬트는 결국 바이러스가 뇌까지 침투해 숨지고 말았다.

세계 최대 부국이라는 미국이지만,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가 가진 사각지대를 국가가 어떻게 얼마만큼 보완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 셈이다. 지금 우리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 빈부의 차별 없이 누구나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의료보험민영화나 영리병원 등의 도입을 허용하는 의료민영화가 도입될 경우, 국민들은 각각의 삶의 수준에 따라 차별적 의료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 예상된다.

재정적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형 민간보험사나 의료 서비스 수준이 높은 기업형 병원들로 몰릴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거나 서비스 수준이 다소 낮은 병원들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그렇듯, 우수한 의료진들과 의료장비들이 영리병원 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본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의료계가 그렇게 자본에 잠식당하게 되면, 공공성은 사라지게 되고 더 이상 국가가 국민 건강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의료시설을 갖춘 병원에 입원조차 하기 힘들고, 천정부지로 높아진 약값에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병을 더 키우는 상황까지도 예상된다. 미국의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의료민영화나 의료보험 민영화 등이 도입되면 우리도 결코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뢰 잃은 정부의 공허한 해명
지난 13일 정부는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의료법인의 자법인과 법인약국 설립을 허용하고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된 내용 중에는 ‘의료기관이 외부자본을 조달해 의료 연관 기업과의 합작투자 방식으로 부대사업 목적의 자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의사협회 등은 이를 사실상 민영화의 수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자법인’ 설립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긴 했지만, 결국은 민영화 수순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의사협회의 주장이다. 특히, 이 같은 ‘자회사’ 설립은 철도노조가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이유와도 일치한다. 민영화 단계로 가기 위한 꼼수일 뿐이라는 것이 철도노조와 의료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물론, 이에 대해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라는 단호한 입장이다. 이와 관련,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차 투자활성화 대책 브리핑을 통해 “자법인으로부터 수익은 의료법인의 수익기반을 확충해 의료법인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자법인은 부대사업 수행을 위한 사업체로, 의료업은 의료법인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의료민영화나 영리병원과 전혀 무관하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하지만, 보건-의료계는 정부의 이 같은 해명을 한 글자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궐기대회’에서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원격의료와 영리법인 도입을 위한 의료법 및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개-제정 작업을 중단하라”며 “정부가 외부자본의 병원 자법인 투자를 허용하고 영리사업 범위를 확대한 것은 의료민영화의 시작”이라고 맹성토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도 이 자리에서 “정부가 말로는 원격의료 도입과 투자 활성화 대책 등을 통해 의료를 살려주겠다면서 실제로는 의료계의 숨통을 더 조이고 있다”며 반정부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노 회장은 연설 도중 준비해온 흉기로 자신의 목에 상처를 입히는 자해소동까지 벌이며 강력한 반대 투쟁 의지를 드러냈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계속 확산되자, 청와대까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16일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원격의료는 도서벽지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등 의료취약 지역 및 계층에 대해 의료의 접근성을 높여 국민 누구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한 것”이라며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해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는 정책이지 민영화와는 관계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이 생겨서 동네 의원들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염려한다”며 “우선 원격의료는 만성질환자나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동네의원 중심으로 시행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지난 15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온 의료민영화 반대 청원이 올라왔다. 이틀 만에 무려 7만여 명이 서명에 동참해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사진 / 아고라 캡처 화면

◆온라인 서명, 반대 동참 폭발적
한편, 이처럼 정부의 거듭된 해명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거듭해서 국민을 상대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분노만 더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반발은 더욱 확산돼 국민 여론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15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 방에는 ‘의료민영화반대’ 청원글이 올라왔고, 17일 오후 현재 서명목표 1만 명을 훌쩍 넘어 72000명이 서명했다. 최초 청원자는 올린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민영화는 할 게 못된다고 하셨는데 이러시면 안 된다”며 “이번 의료민영화는 정말 우리 삶이 걸린 문제다. 서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에, 한 누리꾼은 “난치성 만성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아들, 이제 3살밖에 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 대학병원에서 목숨을 건졌을 때, 우리나라 아직은 살만하구나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렸다”며 “이 아이는 이제 죽을 때까지 평생 병원을 다녀야하는데, 부족한 부모를 만난 것에 모자라 의료민영화라니, 안 된다. 우리 아이를 살려달라. 제 인생을 걸고 선택한 내 아이가 제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의료민영화 반대를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의료민영화 정부의 눈가리고 아옹인 것인지, 솥 뚜껑보고 놀랐던 국민들의 기우일 뿐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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