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밀어주기, 야당은 흠집내기 일관

5년 전 국회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의 능력과 도덕성을 평가해보고자 인사청문회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그 시행의도는 나라의 살림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능력을 검증하고 이렇게 검증된 인물이 그런 자리를 맡아 임무를 수행한다면 더욱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이렇듯 제법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도되었었던 인사청문회였지만 아직 제도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완벽히 정착되지 않아서 많은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비판이 많이 되고 있는 부분은 인사청문회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당간의 싸움이다. 대통령이 추천한 후보에 관해 여당은 주로 밀어주기, 야당은 흠집내기로 일관하고 있는 것. 여당과 야당을 떠나 그 인물에 대한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함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여당은 보통 일상적인 질문들을 통해(예를 들어 초등학교는 어디 나오셨나요? 등...) 그 후보에 대해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고, 반면 야당은 정말 흠집을 잡기위한 치졸한 질문들(이것도 예를 들자면, 며느리 고등학교 성적이 나쁜데 이유는 무엇입니까?)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는 부분들 중 하나이다. 이는 곧 공정하고 능력있는 인물들을 선별해 뽑겠다는 인사청문회가 정치적인 당파싸움에 말리고 있는 꼴이다. 또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해 보겠다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 여당과 야당이 편을 갈라 싸운다면 권력 견제라는 당초의 의미도 퇴색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 대법관 및 헌재 재판관들, 정치적 견해 공개적으로 언명하는 것 부적절해 사실 지난 5년동안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직무와 관련된 능력이나 자질에 관한 직접적인 질문 비율은 8.6%에 그쳤다. 그 내용 또한 피상적이었다. 국무총리 후보자의 경우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설명해 보라”,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겠는가”,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얘기 좀 해 보라”라는 식이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재 재판관에 대해서도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실천하겠느냐”는 막연한 질문과 원론적인 답변이 오가는 수준이었다. 또한 직무 능력에 대한 정확한 검증 대신 정치현안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정치인 출신인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후보자 청문회(2000년), 이해찬(李海瓚) 총리후보자 청문회(2004년) 때 정치 현안 질문이 집중되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열린 이한동 후보자의 청문회에서는 대북정책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김종필(金鍾泌) 전 총리 간 DJP 공조 문제에 관한 질문이 31개(19%)나 나왔다. 이해찬 후보자에게는 이라크 파병과 한미 관계, 수도이전 문제 등에 관한 질문이 34개(34.3%)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언명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들에게도 청문회 실시 당시의 정치적 현안에 대한 견해를 묻는 비중이 높았다. 대법관들에 대한 622개의 질문 중 165개(26.5%)와 헌재 재판관들에 대한 315개의 질문 중 108개(34.3%)가 각각 정치현안에 관한 것이었다. ◈ “총리로 인준된다면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청문회가 부동산 투기 의혹이나 사생활 문제 등 도덕성 검증 위주로 흐르는 경향도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 역시 뚜렷한 위법 판정의 기준이 없어 청문회가 당시 여론이 ‘부적격 판정’의 자료가 되기도 하고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2002년 7월 인준 투표에서 낙마한 장상(張裳) 국무총리 후보자에게는 총질문 170개 중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에 68개(40%)가 집중되었다. 같은 해 8월 인준 투표에서 부결되었던 장대환(張大煥) 총리 후보자 역시 청문회의 전체 질문 111개 가운데 부동산 투기 및 소득세 탈루 의혹 등에 51개(45.9%)가 쏟아졌다. 이들 외에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지적된 후보자가 꽤 있었지만 질문이 그다지 집요하지 않았고, 표결에서도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2002년 모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는 자택의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에 차고가 등재돼 있는냐 같은 사소한 문제로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청문특위 위원장을 지낸 한 의원은 “부동산 투기 문제는 솔직히 그게 적법인지 불법인지, 또는 그게 공직 수행에 부적격 용인이 되는지 판단한 기준이 전혀 없어 표결 때 의원들 각자가 여론이나 감정에 따라 찬반투표를 하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이밖에도 인사청문회가 신변잡기식의 질문, 정치적 입장에 따른 아부성 질문 등으로 희화화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2003년 2월 고건(高建)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민주당 A 의원은 “서울시장 재임 중에 경기도 안양에 사시는 아버님을 찾을 때 집 앞에서 바로 가시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를 내려 걸어 올라가셔서 주변 사람들이 굉장히 효자라는 얘기를 하더라”고 감쌌다. 변호사 출신인 열린우리당 B 의원은 올해 9월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 후보에게 “후보자의 부친과 숙부가 일제 때 순사의 부당함을 보고 비분강개해 칼을 빼앗아 부러뜨렸다고 하는데...”라고 이 후보자를 치켜세웠다. 2002년 9월 열린 김석수(金碩洙)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C 의원은 “총리로 인준된다면 전국노래자랑에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고, 열린우리당 D 의원은 양승태(梁承泰) 대법관 후보자에게 “후배 여성인 김영란(金英蘭) 대법관이 추천했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 사표 내고 싶지 않았느냐”라고 물었다. 2003년 자민련 E 의원은 모 후보자에게 “왜 이혼을 했느냐,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하는 사람이 공직을 맡는 것은 상당히 버거운 일이다”라고 사생활을 건드렸다. 청문회 도중에 “지금 질문해 봐야 어차피 TV 생중계도 안 되는데 그만 하고 나중에 다시 시작하자”, “왜 생중계 시간이 3시간 밖에 안 되느냐”고 위원장에게 따지는 일도 있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제도상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는 미국의 인사청문회를 따라했다고 봐도 별 대과가 없다. 미국에서 수십 년간 정착되어온 제도를 하루아침에 따라하려다 보니 제대로 정착이 되기가 힘든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미국 같은 경우 후보자가 생기면 시간을 두고 미국의 행정부, 국세청, FBI 등에서 그 인물에 대해 조사를 하고 그 조사결과를 토대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행정부 따로, 국세청 따로여서 제대로 손발도 못 맞추고 있는 실정이며 조사기간도 너무 짧다. 그렇기 때문에 후보에 대한 다면평가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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