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이나 공작정치는 엄히 다스려야 할 불법행위다”

국회 5층 법제사법위 회의장엔 대형 서예작품이 눈길을 잡는다. 다산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서문이다. 이 작품은 10년 전인 2003년 9월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기춘 위원장(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서문에는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쥐고서 삼가고 두려워 할 줄 몰라, 털끝만 한 일도 세밀히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히 하고 흐릇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흠흠신서>에서 다산 정약용은 일찍이 수사와 재판의 목적은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법사위 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걸었다는 <흠흠신서>의 서문은 2013년 대한민국 풍경 속에 여전히 유의미하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10월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과 관련, 청와대 개입설을 전면 부인했다. 또한 청와대는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채동욱 개인정보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일 검찰은 채 전 총장 사태와 관련, 청와대 개입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채 전 총장 관련 혼외자 개인정보가 무단 조회·유출되는 과정에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조모 행정관이 연루됐으며 정보 유출 시기는 지난 6월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던 때라고 확인했다.

청와대 조 행정관은 청와대 시설 관리 등의 업무를 맡고 있어,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군의 개인정보를 파악할 개인적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 조 행정관 역시 누군가의 지시나 부탁을 받고, 서초구청 조이제 행정국장에게 채군의 개인정보 조회를 부탁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청와대 행정관이 누구의 지시와 압력에 의해 채 전 총장 관련, 개인정보를 수집했는 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을 명확하게 수사해야 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있다. 청와대 또한 그 책임이 있다. 청와대는 조 행정관을 두둔해서는 안된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산의 <흠흠신서>를 국회법사위장에 걸었던 의도대로 법과 수사와 재판이 정의롭게 구현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고위공직자에게 혼외아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희석될 수 없다. 국가기관이 불법사찰이나 공작이 있었다면, 이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만큼이나 엄중하게 다스려야 할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흠흠신서>는 여전히 국회에 걸려있다. 다산은 조선의 법 집행이 관용만을 앞세우거나 사건 조사를 정확하게 하지 않는 바람에 응당 벌을 받아야 할 자를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정의구현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다산의 가르침이 구현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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