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하루 앞두고 있던 지난 17일 민주당 대변인은 박 대통령에 대해 요구사항들을 제시하며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께서 시정연설에서 국민과 야당 요구를 외면하신다면 그 후 정국과 야당 대응은 ‘상상불가’, ‘예측불허’이다.”
예상을 크게 뛰어넘지 않고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민주당이 수용할 수 있을 만한 단 하나의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나흘이 지난 21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팀은 무려 121만 개에 달하는 트윗글을 추가로 발견했다며 공소장 변경 신청을 냈다. 정국은 발칵 뒤집혔고, 민주당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이 조차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정권에 대한 총공세를 펼치고 나섰다. 말 그대로 ‘상상불가’, ‘예측불허’의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권은 당혹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민주당은 공소장 변경 과정에서도 청와대와 법무부의 무마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상황인데, 정홍원 국무총리는 “공소장 변경이 이뤄진 건 수사가 철저히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식의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정부 국정원에서 일어났던 선거, 정치개입에 대해 비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전 정권으로 시선을 돌려 출구를 모색하려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민주당의 움직임이다. 윤석열 전 수사팀장이 배제되고 난 이후 민주당은 남은 수사팀 젊은 검사 7인에 대해 무한 신뢰와 기대를 거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30일 김한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들 7명 검사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거대 권력과 외롭게 맞서 싸우고 있는 검사들”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기도 했다. 민주당 입장에서 공정하고 정의롭게 수사를 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말처럼 ‘상상불가’ 정국이 도래하고 있는 점이나, ‘늦은 저녁인 8시 50분에 공소장 변경 신청이 접수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법무부의 공소장 변경 무마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점, ‘수사팀 검사들이 공소장 변경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원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는 점, ‘이진한 2차장과 수사팀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밝힌 점 등 수사팀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정보력이 너무나 탁월했다. 8시 50분에 공소장 변경이 신청된 것을 즉각 알고 당일 밤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개최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당 일각에서는 검찰 특별수사팀 팀원들과 민주당이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홍지만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에 대해 “수사팀과 민주당 간의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검찰 수사팀이 트위터 121만 건 확인을 발표하자마자 곧바로 민주당이 확인도 없이 이를 장외집회의 이유로 활용하는 것은 수사팀과 민주당 간의 뭔가가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고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의혹을 제기했다.

만일, 새누리당이 이 같은 의혹의 꼬투리를 잡고 문제의 본질을 흩트리고 나선다면 민주당은 또 다시 꼬인 정국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금 수사팀의 반란과도 같은 행보에 적잖이 당황하며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분히 무엇이라도 잡아내려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민주당은 더욱 꼼꼼하고 철두철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괜한 빌미를 제공해 수사팀의 공정한 수사결과와 무관하게 정국이 또 다시 꼬여버린다면, 그 피해는 민주당에게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그토록 칭송한 7인의 검사들은 물론이고, 권은희-채동욱-윤석열까지 모두에게 민주당과의 커넥션이라는 의혹과 불명예를 덧씌우게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이 가장 피곤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유능한 포식자는 먹잇감이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숨소리를 죽인다. 포위망을 좁히며 모든 사냥 준비를 마친 포식자는 가장 중요한 단 한 순간을 기다렸다가 공격을 개시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냥의 기초적인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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