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라는 말이 있다. 하늘과 맞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파멸을 부른다는 의미로 독일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가 만든 개념이다.

앤드루 로런스가 100년간의 사례를 분석해 내놓은 이 가설은 초고층 빌딩이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신호탄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한다. 마천루의 저주는 경제가 활황일 때 초고층 건물을 짓게 되지만 완공 시점에서는 경기 과열로 거품이 꺼지면서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실제 1931년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102층·381m)가 완공되면서 대공황이 깊어졌으며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88층·452m)가 완공되면서 아시아가 외환위기로 휘청거렸다. 사막위의 왕국을 건설하던 두바이는 부르즈칼리파가 완공된 2010년에 두바이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하늘과 맞닿으려는 꿈을 가진 이가 있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한국에 세계적인 랜드마크 타워를 건설하는 게 남은 인생의 꿈”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재 롯데그룹은 123층, 555미터짜리 제2롯데월드 건물을 2016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중에 있다.

제2롯데월드 사업은 롯데그룹이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밀어부치기 시작했지만 국민적 반발과 군의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직후 국방장관에게 제2롯데월드 건설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제2롯데월드 건물은 성남 서울공항이 근처에 있어서 항공기 충돌 가능성이 있다며 안정성 논란이 이어졌다. 공항의 동편 활주로의 직선 항로가 이 건물과 1.1km 거리였던 것이다. 실제 199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보잉 747기가 아파트에 부딪혀 탑승자 전원과 주민 39명이 숨지는 사건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진영조차도 MB정권에 대해 “안보까지 팔아먹냐”며 비난했지만 MB정권은 제2롯데월드 사업 인·허가를 허락했다. 조종사의 75%, 군 관제사의 85%가 충돌위험이 있다고 진술했지만 묵살하고 강행됐다.

지난 16일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와 민간헬기 충돌 사건이 벌어지면서 제2롯데월드 건물의 안정성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안전성을 위해 사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100층 이상의 건물을 짓고 있는 곳은 롯데그룹이 건립 중인 123층 규모의 롯데 슈퍼타워와 부산 롯데타운(107층)이다. 하지만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은 건축비가 많이 들고 임차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큰 이익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초고층 빌딩이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신호 역할을 해왔다는 마천루의 저주가 이번에는 인명피해를 예고하고 있다. 123층 짜리 초고층 건물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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