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별일 다 있어... 흑백이 가려질 것"

"민주당 정신적으로 성원"... "당당하게 정치를 해나가라" 한화갑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16일 오후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형식적으로는 폐렴 증세로 잇따라 입원했다 퇴원한 김 전 대통령의 안부를 묻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 초점은 국민의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문제에 모아졌다. 김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신건씨가 불법도청에 연루된 혐의로 전날 밤 구속된 데 대해 한 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은 작심한 듯 현정권을 비판하는 격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한 대표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한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게 "저희가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번 사건 처리를 보면 불공평하고 사리에도 어긋났다고 생각한다"며 "자기들이 궁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정치적 활용을 했다는 의심까지 든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정보기관을 이렇게 취급하는 나라는 없다"고 지적하고 "이 정권의 국가 경영 미숙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낙연 원내대표도 "강정구 교수 건이나 두산그룹 건을 불구속 진행한 것과 형평성을 깨면서까지 구속한 것은 사리에 안 맞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효석 정책위의장은 "국민의 정부가 국정원 개혁을 위해 노력한 큰 틀에서 봐야지, 앞은 놔두고 뒤만 문제삼는 것은 형평성에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 전대통령은 굳은 표정 속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있고 별일 다 있다"며 "그런 세상 살아왔고..."라고 착잡한 심경을 표출했다. 하지만 김 전대통령은 결연한 의지가 담긴 듯한 표정으로 "나는 두 전직 국정원장을 완전히 믿는다"고 강조하며 "지금 (검찰이) 무리한 일이고 반드시 이번 일에 흑백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번 도청 파문으로 '국민의 정부'가 입은 타격을 의식한 듯 "내가 대통령을 그만 두고 청와대에서 나올 때에는 이제 편하게 살고 마음고생을 안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뜻대로 안 되고 지금도 힘들게 사는 것을 보니 내 인생이 그런 것 같다"며 청와대를 향한 유감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민주당 지도부에게 "내가 여러분들을 정신적으로 성원은 한다"며 "하지만 일일이 당에 가서 결재하고 공천을 지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그러면서 "여러분이 당당하게 정치를 해나가라"라며 "민주당은 50년 동안 일관되게, 한번도 바꾸지 않고 길을 걸어왔던 만큼 여러분의 갈길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비서출신인 한 대표에 대해서는 "비서출신도 다 열심히 해서 커나가는 것"이라며 "자꾸 후계자들은 커나가는 것"이라고 힘을 실어준 뒤 "앞으로 한 대표 책임 하에 잘 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에서 김 전대통령은 한때 생사의 위기까지 치달았던 지난 정치과정을 되새기며 현 상황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도를 가는 것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정도로 가야 한다"며 "정치 시장에서 물러나는 그날까지 몇 십 년이고 정도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다행히 지금은 살아 있지만 내가 죽었더라도 역사가 나를 평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에 내가 있고 나는 소신을 목숨과 바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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