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신건‘구속’... DJ측 `강력 반발'...후폭풍 거셀듯

靑 `영장청구 지나쳐'...한나라 "노 대통령 사과해야"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마이웨이’를 가는 것일까." 대연정 제안 불발 이후 정기국회 민생·경제 현안 올인, 10.26 재·보선 참패에 따른 여권 갈등, 통합론 등을 보면서 말을 아껴온 노 대통령의 행보가 최근 중대한 갈림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DJ정부시절 국정원장을 지낸 임동원, 신건씨에 대해 검찰이 불법도청 지시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노 대통령의 본심과는 무관하게 DJ 정부와의 결별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DJ측은 검찰의 영장 청구에 대해 "무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현 정부에 대해 전면전 불사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영장청구 직후 침묵을 지키던 청와대는 "영장청구가 지나쳤다"는 내부견해를 밝혔고, 열린우리당도 "구속수사는 부당하다"고 DJ측의 입장을 적극 두둔하고 나선 가운데 한나라당은 "DJ 정부에서 조직적 도청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적극적인 공세에 들어갔다. 청와대가 김대중(DJ)정부 시절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사전구속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공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검찰과 법원에 대한 청와대의 압력, 또는 간섭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에 대해 간섭할 수 없지만, 결과적인 조치를 보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김만수 대변인이 15일 비공식적인 일일상황점검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김 대변인은“영장청구가 꼭 필요했었는지에 대해 이견들이 제시됐다”며 구체적인 발언까지 소개했다. ◆靑 "영장청구 지나쳐" 청와대가 이날 검찰에 대해“엄정수사는 필요하지만 불구속수사 원칙에 비춰 영장 청구는 지나쳤고 형평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은 무엇보다 DJ측의 격한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만수 대변인은 청와대 공식입장이 아니고 이병완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일일상황점검회의에서 두 전직 국정원장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일부 참석자들의 의견들이라고 ‘전제’를 달면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한 참석자는 “엄정한 수사는 필요하다 해도 이전 정부에서 두 전직 원장의 국가에 대한 기여도, 업적 등과 불구속수사 원칙을 고려할 때 구속영장 청구는 지나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진짜 불법 도청의 원조들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이유로 대로를 활보하고 있는데,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까지 청구된 것은 형평의 문제를 생각케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출입기자들과의 산행에서 “도청이고 뭐고 시효 지난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피력,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음을 드러냈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수백억원을 횡령한 사람들(두산그룹 박용성 총수 일가)은 불구속하고, 불법도청 본류인 YS시절 ‘미림팀’은 시효 때문에 수사도 못하면서 이들 두 사람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청와대 내부 기류는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반응은 정치적인 액션으로 보이는 측면이 많다. 천정배 법무장관이 이미 지난 11일 청와대로 노 대통령을 찾아와 구속불가피 입장을 보고했고, 검찰이 영장을 청구한 이후 뒤늦게 문제제기를 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천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보고한 만큼 이미 사전조율이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조율 여부에 대해 “노 대통령이 천 장관의 보고를 받고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면서 “사전조율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는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번 도청사건에 대한 시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정치권에 전달함으로써 동교동의 격앙된 감정을 달래겠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전날 DJ측에서 영장청구에 강력히 반발하고,열린우리당도 공개적으로 검찰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한 만큼 청와대가 뒷짐지고 관망만 하기에는 부담이 컸다는 시각이다. 아울러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민심을 고려한 측면도 적지않아 보인다. ◆지역주의 회귀는 절대불가 노대통령은 지난 14일 열린우리당 임시지도부와의 만찬 간담회에서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는게 가장 중요하다. 그게 시대정신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당 창당 당시 내걸었던 지역주의를 극복한 전국정당화를 다시한번 지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당측 인사들은 만찬이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등과의 통합논의를 설명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 대통령은 한발 앞서 쐐기를 박았다. 결국 자신의 정치철학 근간인 지역주의 청산작업에 동참하지 않으면 같이 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정가 화두로 만들었던 ‘연정론’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방안이었고 양극화 해소와 사회적 격차 해소를 위해 남은 임기를 쏟아붓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왔음을 감안하면 이같은 의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나 친노 직계라는 염동연 의원이 10·26 재선거 직후 “민주당과의 통합 밖에는 길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촉발된 통합논의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DJ가 지난 8일 자신을 찾은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일행에게 “전통적 지지세력에서 위기해결의 답을 찾아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통합을 권고한 만큼 노 대통령의 ‘초심론’이 어떻게 수용될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극복론’으로 여당내 논란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분당까지 감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와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훨씬 앞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과 경제적 양극화 해소라는 양대 목표를 국정 하반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면서 “과거로의 회귀 움직임을 극복하려는 구상을 내년초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DJ측 구속에 `강력 반발'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경환 비서관은 이날 밤늦게 두 전직 원장의 구속수감 소식에 알려지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불편한 동교동의 기류를 전했다. 전날 “사전 영장을 즉각 취소하라”는 반응을 보였던 DJ측은 이날도 현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DJ측 최 비서관은 “두분 원장에게 어떻게 이런 무도한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위기가 좋지 않고 더 이상 기다릴 게 없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현 정부에 대한 ‘최후의 통첩’을 보낸 것으로 관측된다. DJ측은 이번 일로 현 정부와의 갈등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불과 7일 전 DJ가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등 지도부에게 '전통적 지지층을 회복하라'며 애정을 표시한 데 비하면 180도 달라진 분위기다. DJ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정치권 인사는 "동교동은 당분간 현재와 같은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두 전 원장이 DJ의 수차례 지시를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도청했다는 검찰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전·현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DJ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우리당 의원은 "김영삼 정부때 미림팀이나 재벌수사 등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DJ측은 왜 '살아있는 권력'과 각을 세우는 걸까. 동교동 사람들은 현 정권에 의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악한 뒷거래로 이뤄졌다고 규정된 상황에서 ,도청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도청 가해자로 바뀔 경우 'DJ 정부=인권'이라는 또 하나의 도덕성이 무너진다고 보고 있다.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민심을 잡아야 하는 여권과 대립할 경우 크게 손해볼 것 없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DJ측의 핵심 관계자는 "천정배 법무장관이 강정구 교수에 대해선 불구속 수사 지휘권을 발동하면서 나라를 위해 애쓴 두 사람을 왜 잡아넣으려고 하는가"라며 "미림팀 사건은 문서와 테이프 등 증거가 명백한 일인데 국민의 정부 도청사건은 아랫사람(김은성 전 차장)의 진술만 있을 뿐인데도 영장을 청구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참여정부에 기대할 것은 없다"고 현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러나 한 여권 관계자는 "알았든, 몰랐든 도청이 사실로 드러난 만큼 DJ는 어른답게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태를 수습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한나라 "노 대통령 사과해야" 노무현 대통령에 사과를 요구하며 공세의 초점을 맞췄다. 당 일각에선 특검제 도입 주장도 흘러나왔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는 "조직적인 기관 차원의 도청이 있었는데, 그런 것은 없을 것이라고 노 대통령이 사전에 얘기했고, 우리당은 계속 수사를 방해하는 듯한 논평을 냈다"면서 "이 때쯤 되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 원내대표는 이어 "심지어 영장이 청구됐는데도 구속해서는 안된다고 검찰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데, 자제를 하고 정신차려야 한다"고 여당측의 불구속 주장을 비난했다.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현 정권 하에서는 DJ정권 때와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조사해봐야 한다"면서 "특별검사를 통해 자체 조사를 하자는 주장이 여권내부에서) 스스로 나와야 한다"고 압박했다. ◆한화갑 "김대중 죽이기가 본격 시작됐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임동원, 신건 두 국정원장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김대중 죽이기가 본격 시작됐다"며, "이번 일은 청와대가 공무원인 검찰과의 조율을 통해 벌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화갑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 김대중 죽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강하게 성토하며, "나도 여당에 있었던 사람으로, 공무원이라는 검찰의 신분상 이런 판단은 청와대와의 조율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한 대표는 "지금 사람들은 대북송금특검에 이은 제2의 특검이 시작됐다고들 이야기한다"면서, "지금 정권이 지지율이 하락하자 국면 전환을 위해 DJ를 공격하고 나선 것"이라고 주장한 뒤, "이런 계속되는 탄압으로 지금 동교동은 종자도 안 남았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그는 이어 "문제가 있으면 법 적용을 받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YS 미림팀은 그냥 두면서 왜 국민의 정부 도청만 가지고 이렇게 물고 늘어지느냐"며 "게다가 국보법 위반자는 불구속이고 정작 국정원장은 구속이라니 이게 무슨 일관성이 있는가"라고 강하게 문제제기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이 5.16 이래 도청 안 한 정권이 어디 있느냐"며 "지금 정권도 도청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강정구는 불구속하면서.... 원장들은 왜 구속하냐"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임동원·신건 전 원장이 검찰의 도청사건 수사로 구속되자 크게 충격받은 모습이었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며 말을 아끼기도 하지만 다수 직원들은 검찰이 전직 국가 최고정보기관장들을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불만’을 나타냈다. 국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한 중간 간부는 이날“우리는 두 분 모두 구속될 것으로까지 보지 않았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관행적으로 이뤄진 일(도청)을 문제삼아 정보기관 수장을 지낸 인사를 구속 수사하는 나라는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 국정원 본부 분위기도 그 어느때 보다 무거워 보인다. 한 직원은 “날도 추운데, 우리들 마음은 아예 얼어붙는 것 같다는 직원들이 많았다”며 “지난 8월 검찰의 (국정원) 압수수색에 이어 이런 일까지 생기니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강정구 교수는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다며 불구속 수사를 하면서, 전직 국정원장까지 지낸 고령의 두 사람을 굳이 구속시킨 이유를 모르겠다’‘사법적 잣대로만 정보기관 업무를 재단한다면, 앞으로 누가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겠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다른 직원은“많은 동료들은 여전히 검찰 주장과 달리 두 원장이 조직적으로 도청을 지시하고, 보고받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임·신 전 원장에 대해서는 그동안 내부 평가가 괜찮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임 전 원장은‘햇볕정책의 전도사’로서, 재임중 국내정보 수집보다는 남북관계에 전념해 국정원이 남북관계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 전 원장은 직원들의 사기 및 복지에 남다른 신경을 쓰면서 역대 정보기관장 인기투표를 할 경우 가장 득표력이 좋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날 국정원에서는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일반 직원들은 탄식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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