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민심’... 여당 '혼쭐'

"문전처리가 미숙한 한국축구를 보는 것 같다.""도대체 정체성이 뭐냐?." "중산층은 서민 되고 서민은 빈민 됐다" 열린우리당이 싸늘한‘민심’의 목소리를 들었다. 9일 서울 영등포동 당사에서 열린‘국민과의 대화’에 나온 학계와 언론계, 시민단체 등에서 초대된 7명의 패널들은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고언을 달게 듣겠다던 지도부를 당혹케 했다 ◆"도대체 정체성이 뭐냐?" 열린우리당이 보수 정당과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이 가장 먼저 제기됐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도대체 정체성이 뭔지 불명확하다"며 "중도개혁 정당이라고 하는데, 국민 시선에서 보면 미래 지향적이지도 않고 개혁 열망에 대한 응답도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한나라당은 청계천이라는 상품이 있고, 박정희식 경제개발이라는 역사적 자산도 있다"며 "이에 반해 국민들에게 우리당의 정책상품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동반성장과 양극화 해소이고 이는 혁신과 통합의 문제"라며 "시장의 원리가 가진 효율성을 승인하되 여기에 공정성을 더하고, 사회적 양극화와 관련해 IMF 이후 몰락한 중산층을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지 대책을 내놓고, 과거사 극복을 미래로 맞추라는 것이 지지자들이 바라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우리당은 40년대 중후반과 50년대 초반 출생이 리더그룹, 50년대 중후반 출생이 중간간부 그룹, 386이 신진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며 "그런데 긴급조치 세대, 유신 세대로 불리우는 70년대 중후반 학번 그룹과 80년대 초반 학번으로 구성된 중간그룹의 역할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산층은 서민 되고 서민은 빈민 됐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프레시안 박태견 논설주간은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접근"이라며 "참여정부 출범 3년만에 '중산층은 서민이 되고 서민은 빈민이 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중산층과 서민이 양극화로 인해 붕괴되는 국면을 맞았고, 이는 우리당 지지율의 급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주간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던 의미는 경제적 측면에선 아파트 투기 등 불로소득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참여정부 초기에는 실제로 신도시와 강남의 땅값이 내렸다"며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더불어 경제팀의 면면을 보고, 그 뒤 나온 일련의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보면서 아파트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박 주간은 "참여정부가 초기에 쏟아낸 부동산 정책은 '건설경기마저 죽이면 마이너스 성장이 나온다'고 하는 식의 숫자에 의존한 국민 기만책이었다"며 "이는 우리당의 지지기반 붕괴와 이탈로 나타났고, 그 정책이 무려 3년간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주간은 "그 결과 시가로 아파트 값은 1000조, 땅값은 5000조가 넘는 상태가 됐고, 젊은 세대와 중산층은 도저히 집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됐다"고 덧붙였다. 박 주간은 "국민의 90%가 찬성하는 분양원가 공개를 놓고 우리당 일부가 계급장 떼고 토론해보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안됐다"며 "우리당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는데 포인트를 놓쳤다"고 말했다. 박 주간은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부동산 정책은 한나라당과 별 차이가 없다고 했는데 이는 '경제 정체성'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전처리 미숙한 한국축구 보는 것 같아" 전국목회자 정의평화 실천협의회 총무를 지냈던 정진우 목사는"정치의 집은 국민인데, 국민을 믿고 국민 속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려움 극복은 난망하다"고 지적했다. 정 목사는 "지난해 개혁입법 과정에서 보여준 우리당의 태도는 우리당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줬다"며 "17대 국회를 구성해 준 국민들의 뜻은 정치권만의 상생이 아니라 민족과 온 국민과 상생하라는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정 목사는 "17대 국회에서 우리당이 보여준 모습에는 개혁의 열매가 없어 문전처리에 미숙한 한국축구를 보는 것 같다"며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한 골이라도 넣어 달라는 것인데 대연정 같은 안 되는 얘기를 자꾸 던졌다"고 비판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 대표는 "우리당의 일관성있는 정책 결여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으며 중심을 잡지 못하다보니까 결정된 것을 실행하지도 못한다"고 쓴소리를 이어갔다. 하 대표는 특히 "우리당의 정책 의제가 구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동북아균형자론이나 검찰 제자리 찾기 등등이 무슨 정책이냐"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아직도 盧 '묘수풀이' 기대하나" 김종구 한겨레 논설위원은 "우리당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할 용기는 없고 욕심만 많다"며 "목표설정은 높게 해놓고 현실적인 힘은 달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총선 승리는 우리당에게는 독약이었다"며 "총선에서 어렵게 시작했다고 가정하면 이런 지경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은 또 "내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 당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것으로 안다"며 "창당 초기 백년 정당을 만들겠다는 의기와 패기는 어디로 갔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는 있느냐"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상황이 어려우니까 막말도 튀어나오는데 이것은 국민과 유권자들이 볼 때에는 '뺄셈 정치'에 강한 정당이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며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어떤 때는 지당하다며 따라갔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비판한 결과가 청와대와 당의 동반추락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지금도 당 일부에는 이 난국을 헤치고 내년 봄에 대통령이 풀어놓을 묘수풀이를 기대하는 분이 없지 않은 것 같다"며 "정치에서 묘수풀이, 묘책은 쉽게 나오기 어렵다. 앞으로 실패를 몇 차례 되풀이 할 수 있다는 각오로 가야 탈출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고 있는 서울대 박효종 교수는 보수의 관점에서 우리당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박효종 교수는 "정부 여당의 국정의제가 옳은 말이지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며 개혁과제가 제대로 안되는 이유도 기득권 반발 때문이 아니고 복잡 다단하고 역사성 있기 때문"이라며 점진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이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으로 참여정부의 이른바 코드인사를 비판하고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 인재를 고루 기용할 것을 촉구했다. 박 교수는 또 "참여정부가 일부에서 지적하는 건달정부는 분명 아니지만 일하는 법을 모르는 정부 아니냐"고 비판한 뒤 "열매를 보고 나무를 평가하는 것이지 나무의 꼿꼿함이나 푸른 잎을 보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뼈있는 충고를 했다 ◆"독백하는 정부, 고집 센 정부" 한편 기업 측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참석한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정-청간에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정책이 발표되니까 다음날 다른 얘기가 나온다"며 "그러면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불안감 때문에 잘 안된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은 "당과 정부는 의욕을 내세워 혁신형 중소기업 3만 개 건설 등을 말하는데 우리 시스템의 여건을 봐서 추진해야지 지나친 목표치 달성하려는 로드맵 설정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위원은 이어 "당과 정부는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거나, 5% 성장률 목표를 포기하겠다거나 하는 식의 말은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며 "그런 말이 나오면 중소기업은 당장 자금압박을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홍 위원은 "기업은 부의 원천이며 기업이 있어야 성장도 하고 분배도 한다"며 "정부보다 당이 나서 반기업 정서를 해결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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