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한국시리즈 3차전, 잠실 야구장. 1, 2차전을 모두 내준 두산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산의 선발 박명환은 5회까지 무안타로 호투했다. 그런데 두산은 승기를 잡아채지 못하고 끌려만 갔다. 삼성이 2회 초 1점을 먼저 얻었고, 그 1점이 주는 부담감은 두산의 타자들을 서두르게 했다. 그러다가 삼성이 8회 5점을 보태 6대0으로 손쉽게 이겼다. 삼성이 2회 초 얻은 1점은 시리즈 전체의 분위기를 일방적으로 끌어가는 점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1점은 1사 이후 박진만이 볼넷을 얻었고, 후속 진갑용의 1루 땅볼 때 2루까지 갔다. 그 다음 김재걸이 볼넷을 골라 2사 1, 2루. 여기서 조동찬의 타석 때 볼카운트 투스라이크 원볼에서 2루 주자 박진만이 느닷없이 3루를 훔쳤다. 타자와의 승부에만 집중하는 박명환의 허를 찌르는 도루였던 것. 순식간에 2사 1, 3루가 만들어졌고 조동찬은 그 다음 직구를 파울볼로 만들었고, 박명환은 승부구를 변화구로 가져가다가 폭투를 뿌리게 된다. 3루 주자, 박진만 홈인. 안타없이 1점이 났다. 결승점의 핵심은 박진만의 도루였던 것이다. 그 도루가 없었더라면 삼성의 점수도 없었고, 두산이 리드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도루는 이처럼 경기 하나는 물론 시리즈 전체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이러한 도루가 줄어들고 있다. 자연, 경기의 틈새를 파고드는 그런 아기자기한 맛도 따라서 줄어들고 있는 것. 팀당 126경기를 치른 올 시즌 박용택(LG)은 43개로 도루 1위를 차지했다. 팀당 80경기를 치렀던 프로야구 원년 도루왕 김일권(당시 해태)의 도루 수는 53개다. 박용택보다 46경기나 적게 뛰고도 도루는 10개가 많았다. 올해와 같이 126경기를 치른 94년 이종범은 무려 84개의 도루로 1위에 올랐다. 박용택의 두 배에 가깝다. 무슨 의미인가. 도루에 대한 경기에서의 비중이 줄어들고, 그 의미가 축소되고, 타자들은 인조잔디 구장이 많은 현실에서 부상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한다는 의미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챔피언에 오른 월드시리즈. 시리즈의 승부를 가른 것은 2차전 9회 말에 터진 스콧 포세드닉의 끝내기 홈런이었다. 이 홈런으로 화이트삭스는 2연승,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연패로 명암이 갈렸다. 그때 포세드닉에게 홈런을 맞은 브래드 리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를 볼로 유인할 수 없었다. 말려들지 않으면 볼넷이 되고, 그가 출루하면 빠른 발로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그래서 볼카운트 0-2에서 정직한 직구를 던졌고, 그 공이 결국 홈런이 됐다고. 포세드닉은 시즌 내내 단 한 개의 홈런도 때리지 못했지만 59개의 도루로 이 부문 2위에 오른 쌕쌕이다. 그 무서운 발이 결국 홈런포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발은 이처럼 월드시리즈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무서운 무기다.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고 또 뛰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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