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전원 사퇴”... 대권주자 조기복귀 부르나?

2국회의원 4명을 뽑는 10·26 재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한석도 건지지 못하고 완패한 것은 성난 민심의 반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과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 혼란 등에 대한 엄중한 심판인 것이다. 여당은 지난 4·30 재선거 때 23 대 0으로 완패했음에도 ‘잘못된 여론’에 졌다는 자의적인 분석을 내놓으며 패배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았다. 민심을 받들어 민생을 돌보라는 거센 주문도 그래서 외면한 게 아니던가. 그동안 국민의 눈에 여권이 한 일이라고는 소모적인 ‘대연정’ 논쟁과 정체성 혼란을 일으킨 것밖에 없는 것으로 비쳐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현 문희상 의장 체제로 지방선거를 치르기는 무리라는 격론 끝에 지도부의 즉각 사퇴로 결론이 났다. 지난 4·2 전대에서 의장에 선출된 문 의장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선거패배의 후폭풍에 휘말려 7개월만에 낙마한 것이다 특히‘정기국회까지는 지도부 유임’이라는 노 대통령의 가이드라인까지 외면한 극단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의 친소관계, 당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 등이 충돌할 경우 심각한 혼란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상임중앙위원단이 지난 28일 10.26 재보선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전원 사퇴했다. 지도부 일괄 사퇴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우리당은 향후 임시 전당대회까지 정세균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키로 했다. 문 의장과 장영달, 유시민, 한명숙 상임중앙위원 등 우리당 지도부는 이날 낮 긴급 상임중앙위 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하고, 국회에서 열린 당중앙위원회, 의원총회 연석회의에 보고했다. 이로써 지난 4월 2일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문 의장 지도부 체제는 출범 7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우리당은 정세균 대표를 인선위원장으로 하고, 16개 시·도당 위원장들이 인선위원이 되는 비대위를 조속히 출범시키고, 전당대회 시기 문제 등을 논의키로 했다. 문 의장은 "우리당 지도부는 10.26 재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질책을 받들어 모두 사퇴키로 결정했다"며 "나름대로 개혁을 추진하고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고자 노력했으나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당은 그러나 지도부 결단에 대한 동참 차원에서 논의됐던 중앙위원의 동반사퇴는 격론 끝에 일단 비대위에 전권을 위임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전병헌 대변인은 "최고 결정기구인 중앙위원회가 없어지는 것은 비상관리 및 비상대책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장시간 토론 끝에 비대위 활동의 효율성과 위기관리 능력을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비대위에 전권을 위임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신이냐. 따라만하게” 지금까지는 여당에서 대통령을 문제삼더라도 대부분 개인적이고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었으나 국회의원 재선거 참패를 계기로 그간 누적된 불만이 조직적이고 노골적으로 표면화됐다. 개혁, 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의원들은 이번 재선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민심 이반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가 공동 책임을 느끼고 인적쇄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평소 당정 분리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당이 주도해야 할 각종 정치적 사안에 대해 노 대통령이 개입하는 이중성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문학진 의원은 "대통령은 무 오류의 사람이냐. 대통령이 신이냐"면서 "왜 우리당이 자기 색깔을 내지 못하고 청와대만 따라 가느냐"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정장선 의원은 “개헌과 선거구제, 정당간 연합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당이 결정할 문제다. 대통령은 더 이상 정치문제에 관여하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호웅 의원은 “정치권력 문화와 유산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공천권만 갖지 않는다고 당정분리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구체적으로 노 대통령이 제안했던 대연정론과 전날 “당은 동요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달라”고 한 발언이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우원식 의원은 “4·30 재보선 이후 당에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고 6∼8월 내내 민생활동에 들어갔는데, 그때 대통령은 대연정을 발표했다”며 “당이 힘을 받지 못한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를 냈다. 그는 “청와대 내의 국민 목소리를 가로막는 사람을 쇄신해야 한다”면서 “당이 중산층과 서민 대책을 내놓는데 다른 소리하는 사람부터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 의원은 “우리가 지역주의 정당으로 가장 비판하던 한나라당에 청와대가 연정을 제안했다”고 지적했다. 임종인 의원은 “대연정론 1차 책임은 청와대에 있고, 2차 책임은 이를 말리지 못한 우리당에 있다”면서“대통령에게 지당하다고만 말한 사람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희 의원은 “당은 동요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느냐. 당을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정당으로 만들고 있다”고 분개했다. 강창일 의원도 “대통령이 동요하지 말란다고 동요 안하느냐”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청와대, "어려운 상황‥시간 필요" 청와대는 28일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을 포함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단의 일괄사퇴 사태에 대해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며 확대 해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전날 10.26 재보선 참패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결과를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며 '대통령 책임론'까지 언급하며 여당의 동요를 막았으나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이병완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국정상황실장 등이 모여 정무관련 간담회를 갖고 "어려운 상황인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는 입장을 모았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또 "이번 정기국회에 산적한 정치현안들은 차질 없이 처리돼야 한다"며 국정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지도부 총사퇴 사태에 대해 보고를 받았으나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고 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또 29일 저녁에 있을 예정인 '12인 회의'에 대해 "현재 특별한 변동은 없다"며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12인 회의 참석자는 당에서는 문희상 의장, 정세균 원내대표, 원혜영 정책위의장, 정부에서 이해찬 국무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 천정배 법무부 장관, 정동채 문광부 장관, 청와대에서 이병완 비서실장, 김병준 정책실장, 조기숙 홍보수석, 문재인 민정수석으로 예상된다. ◆노대통령 재선 참패 책임인정…그 속내는? 노무현 대통령이 10·26 재선거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재선거 다음날인 27일 노 대통령은 이번 재선거 결과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라고 밝혔다. 이는 재선거 결과의 귀책사유가 국정운영의 최종 책임자인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4·30 재·보선에서도 여당이 전패했지만 그때는 이번처럼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무엇보다 재선거 참패에 따른 여당내 갈등 조짐을 조기 수습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여권내에서 우리당 문희상 의장 등 지도부 인책론이 제기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자 노 대통령은 재선거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며 문 의장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 지도부 교체 카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그동안 당·청 분리를 강조한 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우리당 의원들에게 재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정기국회에 전념해 달라며 사실상 ‘자제령’을 내린 것은 향후 정국운영을 구상 중이니 조용히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이 구상중인 정국운영 카드는 ▲개각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과 소연정 또는 거국내각 구성 ▲남북정상회담으로 압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내년 5월 지방선거를 고려하면 연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 이뤄질 전망이다.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 김근태 복지부장관의 당 복귀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부인사 가운데 자천타천으로 내년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출마 예상자로 거론되는 김진표 교육부총리(경기도지사), 오거돈 해양수산(부산시장), 이재용 환경(대구시장), 추병직 건교(경북도지사), 송철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울산시장) 등의 거취도 주목된다. 개각이 여당의 조기 전당대회로 이어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고, 소연정, 거국내각 구성과 맞물릴 경우 정치권의 일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에서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진전이 없을 경우 개헌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거론되나, “대통령이 개헌 문제를 직접 꺼내긴 어렵다”는게 여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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