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사연도 다종다양

요즘 재계에는 경영권 분쟁으로 진통을 겪는 기업이 적지 않다. 특히 금호그룹·동원수산·광동제약·삼화페인트·한일시멘트 등 주로 탄탄한 곳으로 알려진 중견기업이 내분에 휘말려 있다. 이들 기업이 처한 내막을 알아본다.

‘상표권 소송’ 금호형제, 갈등 봉합은 언제?
동원수산, ‘부인vs아들’ 창업주 지분 향방은
금간 우정? 삼화페인트, BW 발행 무효소송

경영 측면에서 기업에게 닥치는 위기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무리한 확장이나 투자로 유동성 문제에 직면하는 경우다. 최근의 동양그룹·STX그룹·웅진그룹은 물론, 과거 대우그룹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기업 오너가족들 간 내분이 일어나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다. 예전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 대표적인 경우다. 최근에는 동아제약에서 강신호 회장의 아들들 간 심각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근 기업 내부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눈이 띠게 늘어났다. 재벌로 분류되는 기업은 물론 중견기업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빈발하여, 향후 우리나라 경제 건전성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이들은 현재 '금호'라는 상표권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금호’ 상표권 놓고 충돌하는 금호家

경영권 분쟁 및 내분으로 가장 눈에 띠는 기업으로는 금호그룹을 꼽을 수 있다. 금호그룹은 몇 년 전에도 오너가 사이의 심각한 내분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금호가 구성원들이 ‘금호’의 상표권을 놓고 치열한 법적 분쟁으로 돌입해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11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석유화학을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상표권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금호석유화학이 지난 5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상대로 어음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은 일종의 맞불 대응으로 해석되고 있어 향후 법적 공방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에 제기된 상표권 소송은 현재 공동상표권자로 등록되어 있는 금호석유화학의 상표권 지분을 실제 권리자인 금호산업으로 이전하라는 내용이 주된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석유화학 계열사인 금호개발상사·금호피앤비화학에 대해 총 260억 원 가량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금액은 지난 2009년 말부터 미납 중인 상표 사용료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이번에 청구 소송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상표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호석유화학 측과 협의를 꾀했지만, 원만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금호석유화학 측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상대로 어음금 청구 소송까지 제기한 상황이라, 이번 소송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2007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양대 지주회사 체제로 출범하면서 금호산업과 금호석화는 ‘금호’라는 상표권을 함께 등록했다. 그러나 상표 사용 계약을 통해 그룹 내에서 상표권에 대한 권리는 금호산업이 갖는 것으로 최종 정리했다.

그렇지만 지난 2009년 11월 금호그룹 형제들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부터 상표권료 지급을 아예 중단해버렸다. “금호산업과 공동으로 상표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 굳이 사용료를 지급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금호그룹 내부의 경영권 갈등은 어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금호산업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두고 금호석유화학 쪽에서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수 재계 전문가들은 “금호가의 형제들이 과연 갈등을 봉합하고 건전한 경영에 전념할 지 아직까지는 불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창업주 사망 후 지분 상속문제
경영권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창업주의 사망 이후 보유 지분의 상속 문제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기업도 있다. 이런 경우 창업주 가족들 사이의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바로 동원수산과 광동제약이 여기에 해당된다.

동원수산의 경우 창업주인 왕윤국 명예회장이 지난 9월 26일 노환으로 타계하면서 왕 명예회장이 보유하던 지분이 어떻게 처리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3월에 이어 다시 한 번 경영권 분쟁이 재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 안팎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창업주인 고 왕윤국 명예회장은 동원수산 지분 가운데 53만29주(17.30%)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 왕윤국 명예회장이 고인이 됨에 따라 보유 지분이 누구에게 상속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재 고 왕윤국 명예회장의 부인 박경임 씨와 딸 왕가미 식품사업부문 전략기획총괄 상무의 보유지분은 5.63%다. 이는 고 왕윤국 명예회장의 아들인 왕기철 대표의 보유비중(13.41%) 보다 훨씬 낮은 상황이다.

그런데 재계 일각에서는 “고 왕윤국 명예회장의 지분이 박경임 씨와 왕가미 상무 쪽으로 더 많이 상속될 경우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며 “이렇게 될 경우 왕기철 대표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상당히 많다”고 전망한다.

현재 왕기철 대표와 박경임 씨·왕가미 상무 사이는 그리 화목한 편은 아니라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왕기철 대표는 고 왕윤국 명예회장 전처의 아들이며 왕가미 상무는 재혼한 부인인 박경임 씨가 낳은 딸이다. 또한 이들은 2011년에 경영권 분쟁으로 한바탕 휘말린 적이 있다.

재계에서는 “현재 고 왕윤국 명예회장이 보유 지분 상속과 관련해 어떤 내용으로 유언을 해놓았는지 알려진 바가 없어 향후 경영권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지는 미지수”라며 “다만 고 왕윤국 명예회장이 특별한 상속 내용을 남겨두지 않아 법으로 정해진 비율로 상속할 경우 박경임 씨·왕가미 상무 모녀의 지분이 왕기철 대표를 앞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 광동제약 창업주인 故 최수부 회장이 지난 7월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아직 지분상속이 이뤄지지 않아 광동제약의 경영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시스

광동제약 또한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고 최수부 회장이 타계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 최수부 회장의 지분이 제대로 상속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광동제약도 향후 경영권 문제에서 커다란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고 최수부 회장이 보유했던 광동제약의 지분 가치는 종가 기준 266억 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수부 회장 오너일가가 보유한 주식자산 685억 원 중 무려 38.9%에 달하는 액수다.
고 최수부 회장의 장남이자 외아들인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이 보유한 주식자산이 198억 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고 최수부 회장 명의 지분이 어떤 이에게 가느냐에 따라서 경영권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고 최수부 회장의 주식은 현재 최성원 사장에게 상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현재 광동제약 오너 일가 지분율이 낮은 편이라 경영권이 확고하지 않다”며 “이 때문에 상속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는 녹록치 않아 보인다”고 전망한다.

‘동업경영’으로 내분생긴 사례는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견기업 삼화페인트 또한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이는 삼화페인트가 동업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삼화페인트는 우리나라에서 동업회사의 원조로 꼽힌다. 고 김복규 회장과 고 윤희중 회장은 탄탄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이 같은 동업경영은 2세인 김장연 사장과 고 윤석영 사장으로 이어지면서도 성공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윤석영 사장이 2008년 별세하며 단단한 듯했던 동업체제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윤석영 사장의 사망 이후 회사는 김장연 사장 단독으로 이끌게 됐다. 그런데 고 윤석영 사장의 부인 박순옥 씨는 지난 6월 김장연 사장과 삼화페인트를 상대로 200억 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박순옥 씨가 소송을 제기한 배경을 놓고 재계에서는 “향후 윤 씨 집안이 삼화페인트 경영 일선에 복귀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일시멘트그룹의 경우는 지난 2012년 지주회사 격인 한일시멘트가 오너가 가족 구성원들이 지분 매입을 통한 경영권 확보 경쟁을 펼친 바 있어 재계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한일시멘트그룹은 창업주 고 허채경 회장 타계 이후 2세들이 경영권을 서로 나눠 가져 일단 교통정리가 잘 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최근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장남 허기호 한일시멘트 대표와 숙부 허동섭 한일건설 회장 및 그 일가, 허남섭 한덕개발 회장(한일시멘트 대표 겸직) 등이 한일시멘트 지분을 크게 늘리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한일시멘트그룹 내부에서 지배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만만치 않게 제기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일시멘트그룹 일가가 경영하고 있는 녹십자도 예전에 경영권으로 인해 분쟁이 터진 바 있다”며 “한일시멘트는 지분이 쪼개져 있는 상황이라 대주주 간 경영권 싸움이 일어난다면 과연 누가 총수에 오를지 확답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특정 오너 일가가 잇따라 지분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그 배경과 향후 추이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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