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이 처음 선보였을 때를 기억하는지.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를 생각한다면 라면의 맛은 천편일률적인 맛이지만 2005년 현재 라면의 맛은 어진간한 요리에 못지 않을 정도가 되고 있다. 매울 ‘신(辛)라면’의 공세로 라면 시장을 평정한 농심의 상승세로 라면 시장은 농심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각 라면사들의 “우리가 더 맵다”라는 기치 아래 매운 맛을 앞다투어 선보였는데 눈물, 콧물 흘리면서 신라면을 즐겨먹던 농심의 팬들을 확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면 회사들은 신라면을 따라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신라면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공업용 쇠기름에 미끄러진 과거의 맹주 삼양을 비롯해 야쿠르트파·오뚜기파 등은 절치부심 연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고 이들은 마침내 ‘웰빙’이라는 컨셉트를 내세우면서 돌아왔는데, 과연 라면의 시장 판도는 다시 짜여질 수 있을까? ‘국민 식품’ 라면시장에 새로운 도전자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매운맛’ 승부로 농심 신라면의 아성을 흔드는 데 실패한 경쟁업체들이 새 바람을 타고 라면의 미개척지를 찾아나서고 있는 셈이다. 삼양식품은 최근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의미를 담은 1천원짜리 ‘장수면’을 내놓고, 고급 라면 시장 키우기에 나섰다. 또 풀무원도 튀기지 않은 생면에 화학조미료 를 넣지 않은 ‘생(生)가득 생라면’으로 1500원 최고급 라면 시장 개척의 깃발을 세우고 있다. 또 한국야쿠르트는 ‘매운맛’ 승부 대신 구수한 된장국물을 택해 ‘장(匠)라면’을 출시한 상태다. 현재 라면 시장은 연간 1조5천억원대로 가정에서 소비되는 비중은 1조원 규모다. 농심은 지난해 신라면 하나만으로 연간 308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전체 라면 시장의 20.5%를 차지한다. 또 7500억원대 규모로 전체 라면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600~700원대 중가 봉지라면 시장에선 41%의 비중을 갖는다. 1986년 10월 출시돼서 88년 공업용 쇠기름 파동으로 삼양라면을 선두에서 밀어낸 뒤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경쟁 업체들은 신라면의 입김이 센 600~700원대 중가 봉지면 시장 대신 ‘고급 라면’ 시장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또 ‘매운맛’ 대신 ‘구수한 맛’ 등 새로운 맛으로 2위 자리를 조심스레 넘보기도 한다. 한국야쿠르트의 김창호 과장은 “라면업계에서 어떻게든 신라면을 이겨보려고 무조건 ‘더 맵게, 더 화끈하게’가 화두인 적도 있었다”며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지만 단기간의 인기를 얻었을 뿐이라 ‘장라면’은 아예 맛의 방향을 바꿔 2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매운맛 경쟁에 뛰어들었던 라면들은 매운고추를 내세웠던 한국야쿠르트의 왕라면, 고춧가루를 별첨했던 삼양의 수타면, ‘화끈한 맛’을 부르짖었던 오뚜기 열라면, 아예 면을 붉게 만들었던 빙그레 빨개면 등이다. 그러나 이런 차별화 전략이 라면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라면은 아직까지 싸고 간편한 먹거리란 인식에, ‘매운맛’의 각인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현재 750원 이상의 고급 라면 시장은 900억원대로 전체 시장의 6%에 불과하다. 풀무원은 95년 일찌감치 고급 생라면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매출이 광고 비용에도 못미치는 실패를 맛보고 물러선 적도 있다. 풀무원 쪽은 “이젠 ‘웰빙’ 시장이 충분히 커졌고, 프리미엄급 라면 시장도 해마다 20% 안팎 성장하고 있다”며 “가족과 아이의 건강에 관심이 높은 30~40대 주부들을 겨냥해 2007년 300억, 2010년 1000억 매출을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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