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FA컵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지난 26일 FA컵 32강전 4경기가 치러진 파주 NFC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대한민국 최고의 축구 클럽을 가린다는 FA컵의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오후 3시부터 진행된 수원 삼성과 수원시청의 경기장 주변에서는 시장 바닥을 연상시키는 정신 사나운 장면들을 경기 내내 목격할 수 있었다. 수원 삼성과 수원시청의 경기는 다른 3경기와 달리 유난히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올해 FA컵의 첫 번째 더비 매치이자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차범근 감독이 FA컵에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 수원시청이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지로 큰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경기장에는 차범근 감독과 수원의 스타 플레이어들 그리고 대이변의 가능성을 목격하기 위해 구단과 협회관계자, 축구인, 수원 서포터, 일반 팬 등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양팀 선수와 벤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시로 울리는 핸드폰 벨과 시끄러운 통화 소리. 벤치 뒤에서 양팀 감독에게 훈수라도 하듯이 경기에 대한 평을 늘어놓는 팬들의 큰 목소리는 승부차기까지 진행된 경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본부석 반대편의 수원 삼성의 서포터들은 거친 표현이 섞인 말로 수원시청 선수들과 심판에게 야유를 보냈다. 특히 사이드라인 바로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일부 서포터들은 수원시청 선수들을 위축시키는 행동들을 저지르기도 했다. 직접적인 충돌이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정규 경기장은 아니라고 하지만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는 바로 옆 관중석에서의 금연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매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중석 곳곳에서 피어난 담배 연기는 양팀 감독들이 착석 한 벤치는 물론 그라운드 안까지 스며들어 선수들의 집중력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차범근 감독의 바로 뒤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던 한 노년의 축구팬에게서는 FA컵의 초라한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상황들에 대해 제재하거나 막아서는 대회 관계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 제재가 없다보니 관중들 역시 그런 행동들에 더욱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선수와 감독들이 100퍼센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노릇. 물론 남은 FA컵 일정들은 모두 정식 경기장에서 치르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축구선진국에서는 하부리그 클럽은 물론 1부리그 클럽들조차 자국 리그 우승에 버금가는 권위와 명예를 의미하는 것이 FA컵 우승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대부분의 팀들이 “우승하면 좋고, 못해도 본전”이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게 현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클럽들의 자각은 차치하더라도 이번 경기에서 목격되었듯 FA컵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들의 행동도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른 것으로 보인다. 대한축구협회의 본분 역시 강하게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 축구클럽들이 FA컵의 권위를 진심으로 바라고 열과 성의를 다해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아울러 대한민국 축구팬들도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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