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에 뒷짐 독특한 통치스타일…거세지는 ‘책임회피’ 비판

출범 8개월을 향해가는 박근혜 정부. 이전 정부와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는 통치술이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사과 표명을 하긴 했지만, 기초연금 공약 불이행 및 축소 문제도 박 대통령은 스스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논란 등 최근 들어 터져 나오는 각종 이슈 가운데에서도 최종 책임자로서의 대통령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대통령은 중요 사안에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것이 결코 앞에 나서지 않는 박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조기 레임덕의 단초를 보여주는 난맥상인지 분석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주요 현안에 직접 나서지 않는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정치권 일각에서 은둔정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6일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대해 국민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여전히 채동욱 총장 사퇴 및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 등은 털어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8개월을 향해 간다. 그동안의 행적을 비추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보여주는 리더십에는 장단점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신중한 처신으로 안정감 심어줘’ 호평도

상당수 정계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술이 지닌 장점으로 “원칙과 신뢰라는 기본 바탕을 비교적 확고하게 풀어나가는 리더십”을 꼽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북원칙을 들 수 있다. “북한의 여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칙을 관철시켜 개성공단 정상화를 이끌었다”는 평이다. “북한을 사실상 백기를 들도록 만든 대한민국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처음”이라는 극찬도 있다.

정계에서는 “박 대통령은 외교에서 상당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 대통령은 미국·중국·베트남 등을 방문하며 비교적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트레이드마크 격인 ‘패션 외교’는 호불호의 논란은 있지만 다른 국가 지도자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장점이 더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전임 대통령들과는 차별되는 지점을 강조하면서 올 상반기 비교적 안정적인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신중하면서 이미지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면모는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이런 면모가 노년층은 물론 중장년층에게도 신뢰감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단점 또한 장점만큼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당수 정계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 통치술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으로 “첨예한 사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견해를 밝히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거리를 두는 모습”을 첫손으로 꼽는다. 그 결과 ‘불통’이라는 인상이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상황에서 다른 정부 각료가 대신 처리하는 모습이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다. 한 정치평론가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수산물 등 제품이 오염되지 않았을까 전 국민이 공포에 떨었는데, 오히려 정홍원 국무총리가 ‘괴담 유포자는 처벌하겠다’는 엉뚱한 대응만 내놓아 비난을 받았다”며 “사실 원전 오염으로 인한 먹거리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안심시켜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박근혜 대통령은 자칫 온 국민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사안에는 일단 직접 나서지 않은 ‘은둔술’에 익숙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직접 책임질 사안에 실무자 앞세워’

이와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은둔술 리더십’은 최근 기초연금 공약 이행 논란을 둘러싸고도 다시 한 번 불거졌다. 지난 9월 23일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느닷없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곧 발표할 예정인 기초연금 정부안에 대해 야당이 공약후퇴라고 반발하며 국회에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장관이자 정치인으로서 그 책임을 지고 가겠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진영 장관의 장관직 사퇴 의사는 현재는 유야무야 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같은 해프닝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상당수 정계 전문가는 “진영 장관의 발언이 타이밍 면에서 보면 생뚱맞은 데가 있다”고 지적한다. “통상적으로 정책을 둘러싼 과정 면에서 본다면, 대통령이나 장관이 먼저 특정 정책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다음 이에 대한 여론 반응에 따라 사과든 사퇴든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진영 장관의 사퇴 해프닝의 경우 기초연금 공약 축소를 제대로 발표하기도 전에 미리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이는 일의 선후 관계가 흐트러진 모양새”라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 대해 정계 일각에서는 “진영 장관이 기초연금 축소라는 중대한 위기 상황이 일어나기 전 미리 ‘총알받이’ 역할을 떠맡은 것 아니냐”는 견해가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한 정치평론가는 “기초연금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웠던 사항이다. 65세 이상 노년층에게 빠짐없이 월 2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은 ‘표심’으로 직결되기도 했다”며 “이토록 중요한 공약을 수정하거나 아예 폐기하는 것은 원칙과 신뢰를 간판 무기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에게 치명타로 작용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진영 장관이 일단 책임을 모두 지겠다는 태도로 돌출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정계에서는 “실무자인 장관 쪽에서 먼저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나오면 여파가 대통령 선까지 다다를 확률이 다소 적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실무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인상을 전파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즉 “대통령이 직접적인 책임은 일단 비켜나가겠다는 의중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그리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기초연금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직접 자신 있게 내세운 사안이라는 점을 국민 모두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묘수를 짜내도 박 대통령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게 사실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직접 부득이하게 공약 후퇴에 대해 사과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2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과 관련하여 "기초연금을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세계 경제 침체와 맞물려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세수부족이 크고 재정건전성도 고삐를 쥐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 상황에서 불가피하다”며 “그렇지만 이것이 결국 공약의 포기는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인 공약은 지켜야 한다는 저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실제로 재정을 수반하는 대부분 공약은 계획대로 내년 예산안에 담겨 있다”며 “비록 지금 어려운 재정여건 때문에 약속한 내용과 일정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들도 임기 내 반드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은둔에서 벗어나 현안에 직접 나서야’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거리를 두는 자세는 아권으로부터 ‘책임 회피’라는 비난을 받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국정원 개혁 이슈나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건 등 현재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은 멀찍이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옹호론도 있다. 일부에서는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굳이 국가수반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발언을 수시로 감행해 안팎으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며 “이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언행이 과묵해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이에 대해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도자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고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십상”이라는 비판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 주위에는 ‘불통’이라는 어두운 기운이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다”며 “향후 공약 이행과 관련된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자세를 보여야 그동안 장점으로 부각됐던 원칙과 신뢰라는 이미지를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다. 너무 ‘신비주의’를 고집하면 자칫 조기 레임덕이라는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특히 ‘조기 레임덕’ 문제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중대 변수다. 정계에서는 “지금까지는 대북관계나 야당을 상대하며 원칙을 중시하는 강공 드라이브로 일관된 바가 크다. 이는 안정을 원하는 국민에게 비교적 큰 호응을 얻은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런 강공 자세로 일관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융통성 측면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공약 이행 사안이나 경제 문제까지 겹치면 국민은 피로를 느끼게 되어있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레임덕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계 관계자 상당수는 “박근혜 정부가 향후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하려면 지금부터 온건한 자세를 적극 지향해 국민 및 야당과 활발하게 ‘소통’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은둔을 고집하며 총알받이를 내세우는 대신 국가수반이 직접 책임지고 결자해지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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