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시리즈는 ‘삼성’의 아낌없는 투자와 ‘선동열’이라는 감독의 시리즈였다.
아낌없는 구단의 투자와 부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은 찬사의 대상이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투자가 선수들 경기력 향상과 동기유발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나머지 구단과의 경기적 내용면에서 너무 실력차이가 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모든 스타를 모아놓고 나머지 약팀과 경기를 한다면 뻔한 경기 결과라는 것이다. 삼성과 선동열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2005년 프로야구를 되돌아 보았다.
2005년 한국시리즈는 ‘선동열 시리즈’였다. 일본에서 돌아와 부임 첫 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그가 선보인 지도력은 선배 감독들의 그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었다. 사실, 가장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삼성이기에 우승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그가 삼성의 팀 컬러를 뜯어고치기 위해 들인 공은 절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선 감독은 패배주의에 젖은 삼성선수단에 끊임없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과거 큰 것에 한 방에 의존하던 삼성에서 박빙의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내는 끈적끈적한 팀으로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부쳤다.
이를 위해 그는 ‘멀티포지션’의 개념을 도입해, 야수 한 명이 2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이는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줬듯 탄탄한 수비력으로 승화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동안 마음 편한 순간이 없었지만 삼성은 고비마다 깔끔한 수비로 위기를 넘기는 데 한 몫했다. 아울러 ‘국보급 투수’ 출신인 자신의 강점인 투수 조련에서도 선 감독은 빛났다.
권오준과 오승환이라는 철벽 불펜진을 완성, 경기 초반이 아닌 후반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는 팀으로 삼성을 변화시켰다. 기실, 권오준과 오승환은 삼성의 가장 큰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즈 내내 이들은 리드만 잡으면 경기를 철통같이 틀어막아 삼성이 4경기만에 두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수훈을 세웠다. 선동렬 감독의 야구는 아직도 완성을 향해 치닫고 있다.
2005 한국시리즈에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선동열표 야구’는 계속 진화될 것으로 보인다.
■ 투자할 수 있는 힘
이번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 비결은 뭐니뭐니 해도 아낌없는 투자를 최우선 순위로 꼽을 수 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그렇지 않아도 탄탄했던 전력에 지난 겨울 심정수와 박진만이라는 최대어를 싹쓸이한 삼성의 우승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으로 우승을 살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삼성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낌없는 투자로 이미 시즌 초부터 최강의 멤버를 꾸린 삼성의 힘은 결국 투자의 힘,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투자할 수 있는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야구단을 애물단지 정도로 여기는 몇 몇 그룹에 비해 삼성은 최고위층으로부터 그룹 임직원까지 야구단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꾸준히 가져왔고, 오랫동안 야구계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뒷받침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파워히터 심정수를 최대 60억원에 영입한 데 이어 최고 유격수 박진만과 최대 39억원, 팀내 간판타자 중 한 명인 김한수와 28억원에 재계약하는 등 거물급 선수 3명에게만 100억원이 넘는 돈을 썼다.
심정수와 박진만에 대한 보상금까지 합하면 삼성이 이들에게 쏟아부은 돈은 최대 166억6천만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 프로 스포츠사에 유례가 없는 투자금액으로 당분간 삼성의 '큰손'을 따라잡을 구단은 나오기 힘들 것이란 게 중론이다.
삼성만큼 스포츠에 투자하는 그룹이 없을 뿐더러 그만큼 스포츠에 애정을 보이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 한국판 양키스, 삼성
그간 한국 프로스포츠계에는 '적게 써서 이기는 게 최선이다'는 고정관념이 지배했다. 스포츠단을 그룹의 홍보물 정도로 인식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지만 일각에선 아예 '골칫덩이' 정도로 치부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적은 투자로 최고의 성적을 내자'는 이른바 '머니볼'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규모가 작은 구단, 원천적으로 큰 투자를 기대하기 힘든 구단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봐야 한다.
이를 위해 오클랜드 같은 구단은 선수발굴과 평가기법에 혁명적인 방식을 도입, 빅리그 29개 구단의 모범이 됐다. 한국에선 성적이 나지 않고, 프랜차이즈 규모에 상관 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성적만을 주문하며 선수단만 닥달해온 경우가 적지 않다.
최소한의 투자도 아까워하면서 생색만 내려는 행태가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그런 점에서 삼성은 국내프로스포츠계에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선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삼성의 이 같은 투자를 '그룹의 세과시'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행보를 보인 삼성의 시도는 한국스포츠사에 결코 작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올 한 해 삼성은 그야말로 '한국판 양키스'의 진면목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