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개정 놓고 엇갈리는 여야…재계는 반발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로 지난 6월 국회에서 진통 끝에 통과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법’(공정거래법)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공정거래법의 하위법령인 시행령 개정을 놓고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이 되는 총수일가의 직접보유 지분율을 30%(상장사 기준)로 마련했지만, 새누리당 일각과 재계에서는 규제범위가 너무 넓다며 하한선을 40~50%로 높여야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오랜 산통 끝에 나온 경제민주화 법안이 사실상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아 진통이 예상된다.

“공정위 규제대상 지분 30% 방침, 40~50%로”
이 경우 글로비스·에버랜드 등 규제대상서 제외
민주당 등은 ‘경제민주화 후퇴’라며 강력 반발

 

지난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과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정협의를 갖고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을 세부적으로 정하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의 핵심은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시행령 입법예고였다.

공정위 30% 여당 40% 재계 50%

공정위는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의 총수 일가 지분율 하한선을 상장 기업은 30%, 비상장 기업은 20%로 정한 시행령 개정안을 보고했다.

총수가 있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 43개 대기업 가운데 총수일가 지분율이 30% 이상(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사는 상장사 30개사, 비상장사 178개사 등 모두 208개 기업이다. 이는 43개 대기업 전체 계열사 1519개사(7월 기준)의 13.6% 수준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 일부는 이 같은 공정위의 방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기업 간의 정상적인 거래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며, 지분율 하한선을 높여 규제 대상을 좁히는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으로 김용태 의원은 “경제도 안 좋은데 (공정위의) 시행령은 과한 게 아니냐. 기업들이 일을 하는데 있어 불확실성을 높이는 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상장사의 경우 지분율 하한선을 30%에서 40%로 높이고, 비상장사도 20%에서 30%로 올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에서는 더 나아가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50%까지 높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를 판단하는 부당내부거래 기준에서도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대기업이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할 때 거래가격이 정상가격과의 ‘7%미만’ 차이가 나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부당지원행위의 판단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개정된 것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10%미만’으로 유지하자는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공정위의 방안에 대해 새누리당 일각에서 규제를 더 완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향후 어떤 식으로든 수정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좌)과 김기식 민주당 의원.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 김용태 의원은 "경제도 안 좋은데 (공정위의) 시행령은 과한 게 아니냐. 기업들이 일을 하는데 있어 불확실성을 높이는 건 곤란하다"고 밝혔고, 김기식 의원은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탄생한 이 법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을 무력화해 사실상 빈껍데기로 만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종이호랑이’법? 반발도 심해

하지만 이러한 새누리당 일각과 재계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재계가 요구하는 ‘50%’를 적용하면, 상장사는 단 5개이고 비상장회사를 합치더라도 129개로 전체의 8.4%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일감몰아주기의 대표기업격인 현대글로비스를 비롯해 삼성에버랜드, SKC&C, 동부 CNI등이 대거 규제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국내 주요 그룹들의 지배구조와 후계승계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하는 기업이다. 이는 재계의 강한 로비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실질적인 이유로 지목된다.

시행령은 국회에서 입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아야한다. 따라서 민주당이 강력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러한 여당 일각과 재계의 규제완화 움직임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시행령의 상위법령인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당시에도 여당의원들의 반발로 상당부분 후퇴한 마당에 운용의 묘를 살려야하는 시행령에서 더 후퇴하면 법안 취지가 지나치게 퇴색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공정위가 제시한 ‘30%’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더 이상 후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탄생한 이 법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법을 무력화해 사실상 빈껍데기로 만들려 하고 있다”며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에서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당선되자마 새누리당이 규제 범위와 수위가 대폭 축소돼 별반 실효성도 없는 입법을 추진했고, 그것도 모자라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재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재계는 규제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고, 일부 여당 의원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일감 몰아주기 규제 자체가 큰 의미가 없는 법안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고 우려했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