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국정원의 불법감청 부서 및 보고라인, 대상, 장비까지 밝혀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의 구속영장을 통해 그동안 막연한 개념수준에만 머물러 있던 국정원의 도, 감청의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이미 국정원은 1996년에 최첨단 도, 감청 장비 개발 계획도 수립하고 착실(?)하게 이행했다고 한다. 이번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도, 감청 부서와 수법, 보고라인, 그리고 그 대상 등을 낱낱이 들여다보았다. 국정원의 불법도청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이번에 청구한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 담당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 8월 국정원이 밝혔던 불법감청 실태의 전체적인 틀에 뼈와 살을 붙여 구체화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그동안 국정원의 전현직 직원들의 진술을 통해 전반적인 개념은 규명되었지만, 불법감청 부서와 보고라인, 그리고 감청 대상 등이 특정되어 규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구속영장 내용과 국정원 조직에 대한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우선 국정원의 전신 국가안전기획부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96년부터 디지털 휴대폰이 상용화됨에 따라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 및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비' 개발계획을 수립해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주체는 내부에서는 '8국'으로 통하는 과학보안국. 통신첩보를 수집하는 부서였다. 8국은 크게 통신첩보를 수집·분석하는 '운영단'과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연구단'으로 구성되었다. ■ ‘작업과제’를 만들어 주는 운용과(課)에서부터 종합처리과(종합분석과)까지 운영단의 감청 시스템은 통상 감청대상 전화번호로 감청을 하라고 '작업과제'를 만들어주는 운용과(課), 이른바 '귀때기'라고 해서 24시간 귀에 레시버를 꽂고 통신정보를 수집하는 수집과, 수집에서 작성해 보내온 통신첩보를 분석해 배포하는 종합처리과(종합분석과) 등으로 편제되었다. 종합분석과에서는 대공수사 목적으로 감청을 의뢰한 작업결과는 안보수사국으로 보내고, 외사방첩국에 필요한 것이면 방첩국으로 통신첩보 자료를 보내준다. 그런데 감청과정에서 수집된 '일반정보'는 따로 취합해 대공정책실(현 정보판단실)로 보냈다. 예를 들어 국정원이 범죄수사 목적으로 A씨를 감청하고 안보수사 목적으로 B씨를 감청한다고 하면, A와 B씨와 통화하는 모든 사람(N씨)은 범죄혐의가 없어도 감청이 된다. 그런데 그 N씨들이 평범한 일반국민이라면 통신첩보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지만 정치인 등 여론 주도층일 경우에는 이들의 대화를 감청한 통신첩보가 '일반정보'로 활용된다. 과학보안국만 통신첩보를 수집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쓰리세븐'(777)이라고 부르는 대북 감청부대를 운용해 국경을 넘나드는 전파를 낚아채는 '과학정보국'(현재의 3국)에서도 무작위로 통신첩보를 수집한다. 물론 북한 및 주변국을 대상으로 '특수첩보'를 수집하고 영상감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주업무이지만, 더러는 '일반첩보'도 수집되어 정보판단국 등 국내파트로 이첩된다. ■ 이동식 장비 ‘R2’, 고정식 장비 ‘카스’ 그동안 김은성 전 차장을 비롯한 전직 간부들은 무작위로 수집된 통신첩보가 '일반정보'로 활용되는 것일 뿐,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불법감청을 한 적은 없다고 주장해왔으나 검찰의 영장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선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 R2는 98년 5월 8국 운영단 개발팀에서 먼저 개발했다. 운영단 개발팀은 당시 통신회사의 유선중계구간 회선에 장비를 연결하여 해당 유선중계구간 회선을 통과하는 모든 통화내용을 감청할 수 있는 장비 1세트를 자체 제작한 후 시험사용하면서 성능을 보완해 그해 9월경 5세트를 추가 제작했다. 국정원은 이 장비를 운영단 산하 국내수집과 R2수집팀에 설치한 다음, 이동통신사의 상호접속교환기와 KT의 관문교환기가 연결되어 있는 광화문 등 6개 전화국의 각 유선중계통신망을 이용해 내국인의 유선전화와 그 유선전화에 연결된 휴대폰 통화내용을 감청했다. 한편 8국 산하 기술연구단은 99년 12월 별도로 이동식 휴대폰 감청장비 '카스'를 개발했다. 국정원은 차량에 탑재해 감청대상자의 휴대폰 고유번호, 주파수 등을 해독한 후 감청대상자로부터 약 200m 이내에 근접해 무선구간에서의 휴대폰 통화를 감청할 수 있는 카스장비 20세트를 제작해 성능시험을 거쳐 국내담당 차장 및 8국장 등의 결재를 거쳐 대출하여 휴대폰을 감청하도록 했다. 국정원은 국정원 내부 감청시설에서 감청하는 '고정식' 장비인 R2감청은 8국에서 전담하고, 국정원 밖으로 '출장'을 나가 사용하는 '이동식' 장비 카스감청은 대테러보안국과 방첩국 등에서 사용토록 하되 엄격히 관리했다고 한다. 김은성씨는 카스가 개발되던 시기에 국내정보 수집·분석을 총괄하는 대공정책실장(99. 6~00. 4)과 통신감청 업무를 담당한 과학보안국(8국)을 휘하에 둔 국내담당 차장(00. 4~01. 11)을 지냈다. ■ 카스보다 R2가 더 광범위해 김 전 차장은 "이동식 장비인 카스의 경우 밖에서 사용하다가 만에 하나 분실하거나 상대방에게 들키면 큰 일이 나기 때문에 특수장비 운영관리규정을 두고 대장을 만들어 대출을 엄격히 관리했다"고 밝혔다. 김 전 차장은 이어 "운영관리규정과 대출대장을 보면 카스 장비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미림팀 사건이 터져 당시 8국장에게 물어보니 '카스 장비는 주로 대테러보안·방첩국에서 사용했다'고 말하더라"고 덧붙였다. 카스가 개발되어 현장에 투입된 2000년 4월에는 총선이 있었던 해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정치인을 대상으로 카스를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김 전 차장의 해명이다. 영장에 따르더라도 카스를 사용한 불법감청은 2001년 3월부터 4월까지 대공용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던 김00씨의 휴대폰 통화내용에 대한 4~5회 감청을 포함해 2000년 10월부터 2001년 4월까지 다수의 핸드폰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돼있다. 즉, 김은성 전 차장은 김00 등 성명불상의 카스 사용 직원들, 박00 마약과장·남00 산업보안과장, 박00 단장, 최진 6국장, 김병두 8국장 등과 공모해 같은 기간에 고양시 덕양구청 주차장에서 대공용의자 김00씨 휴대폰을 감청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영장이 청구되었다. 김 전 차장에 대한 또다른 범죄혐의인 R2감청의 경우 영장에는 2002년 말 민주당 소장파의 '권노갑 최고위원 퇴진'과 관련한 통화내용 감청과 진승현씨의 불법대출 관련 통화내용 감청 등이 기재돼 있으나, 국정원 내부 감청시설에서 이뤄지는 업무의 속성상 카스감청보다는 더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영장에 따르면, 김은성 전 차장은 감청 업무를 담당하는 8국장을 통하여 국내수집과장 등에게 고급 첩보 수집을 독려하면서 성명 불상의 R2 수집팀원들, R2 수집팀장 김00·도00, 국내수집과장 박00·임00, 종합처리과장 전00, 운영단장 김00, 8국장 김병두 등과 공모해 2000년 12월경 국정원 8국내 R2 수집팀 사무실에서 R2를 이용하여 민주당 소장파 정치인들간의 '권노갑 최고위원 퇴진' 관련 통화 내용을 감청하고 이를 수집팀장 김00, 수집과장 박00, 종합처리과장 전00, 8국장 김병두 등을 거쳐 '통신첩보'라는 명칭의 보고서를 전달받아 내용을 지득해 통비법을 위반한 혐의이다. ■ 김은성, 그는 국정원의 희생양인가 김은성 씨에 대한 검찰의 영장 기재사항을 보면 성급한 '부실수사' 흔적도 엿보인다. 이를테면 영장에는 "▲감청 업무를 담당하는 8국장을 통하여 국내수집과장 등에게 고급 첩보 수집을 독려하면서 성명 불상의 R2 수집팀원들, R2 수집팀장 김00·도00, 국내수집과장 박00·임00, 종합처리과장 전00, 운영단장 김00, 8국장 김병두 등과 공모해 ▲성명불상의 카스 사용 직원들, 박00 마약과장·남00 산업보안과장, 박00 단장, 최진 6국장, 김병두 8국장 등과 공모해" 등으로 R2감청은 물론 카스감청과 관련해서도 김병두 8국장과 공모해 범행을 저지른 것처럼 적시했다. 그러나 김병두 전 국장은 그 기간에 7국장(방첩국장)을 지냈지 감청업무를 담당하는 8국장을 지낸 적이 없다. 김씨는 또 2000년 11~12월경 같은 곳에서 같은 방법으로 성명 불상의 내국인들간에 이뤄진 '진승현의 회사 인수 및 불법 대출' 관련 통화 내용을 감청하고, 이를 같은 경로를 거쳐 '통신첩보'라는 명칭의 보고서를 전달받아 통비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국내정치에 관여하여서는 아니됨에도 불구하고 불법감청 장비를 이용해 정치인, 언론인 등 국내 주요인사의 휴대폰을 불법감청해 통신첩보를 수집토록 적극 지시하였고, 특히 국내 주요현안에 대한 통신첩보를 받은 후 첩보에 등장하는 특정인물을 집중적으로 감청하라고 지시하는 등 피의자가 2차장으로 근무하는 기간 동안 불법감청 정도가 가장 심각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관행’ 차원에서 김 씨와 비슷한 불법행위에 가담한 김 전 차장의 전·후임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1년 ‘진승현 게이트’ 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는 김 전 차장만을 찍어 낸 것일 수 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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