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강 교수 파문’ 논란 확산

한 “천장관 사퇴해야” vs 여 “정당한 지휘권 행사” ‘6.25는 북한의 통일전쟁’ ‘맥아더 장군은 민족의 원수’ 등의 망언을 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의 사법처리와 관련, 천정배 법무장관의 불구속 지휘권 발동 파장이 확산되면서 정국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지휘권 수용 여부 및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 검찰 간부들의 지휘권 수용 건의와 일선 검찰의 강한 반발 사이에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장고에 돌입, 그의 최종 결정이 주목된다. 또한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둘러싼 사회각계의 찬반 논쟁이 뜨겁게 일고 있는데다 강 교수 파문이 국보법 개폐 및 최근 맥아더 동상 철거 논란과 맞물리면서 사회 전반의 첨예한 이념 논쟁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히 10.26 재선거를 열흘 남짓 남겨놓은 상황에서 강 교수 파문이 선거판도를 뒤흔들 새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의총을 열고 천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해임건의안 제출’ 검토로 압박하고 나섰고, 여당은 정당한 지휘권 행사라고 반박하면서 ‘연정론’ 이후 여야간 극한 대치전선이 또 다시 형성되고 있다. 여권내부에서도 천 장관 지휘권 발동의 적절성 및 강 교수 사법처리를 둘러싸고 찬반논란이 가열되면서 노선투쟁으로 번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어 여권 일각의 ‘여당 분할론’, ‘정치권 재편론’과 맞물려 주목된다.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총 후 브리핑을 통해 “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수호해야할 법무장관이 헌법질서의 근본과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린 행위”라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천 장관을 해임하고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은 의총에 앞서 박근혜 대표 주재로 최고위원ㆍ상임운영위 연석회의에서 천 장관 해임건의안을 제출키로 의견을 모았으며, 천 장관의 사퇴 또는 해임 여부를 지켜본 뒤 건의안 제출 여부를 추후 의총에서 최종 결정키로 했다. 반면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장관의 법적 권한에 대한 법리적 문제일 뿐, 결코 검찰의 독립성, 중립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며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서 이를 정쟁화 하거나, 법무장관과 검찰을 이간시키는 듯한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의 천 장관 해임요구에 대해 “법리적으로 따질 부분을 정치적으로 비화시키거나 하등 관련이 없는 검찰 독립, 중립성 문제까지 거론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며 “(강 교수의)구속, 불구속은 보는 사람의 시대적 인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소신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소신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원내대표도 “우리당 대부분의 의원들이 강 교수 발언에는 반대 입장이지만 그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관계기관에서 적절히 처리할 일”이라며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차단했다. 그러나 여당내 보수성향 의원모임인 ‘안개모’ 소속의 유재건 의원은 “강 교수는 집요하게 대학에서 말했고, 만경대 발언도 3년전인데 위험하지 않다고 하는데 대해 나는 반대한다”며 “분별력있게 당의 정체성과 대한민국 정통성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고,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의원은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천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칙과 법에 따른 결정”이라며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철저히 수사 하라는 뜻인 만큼 검찰의 반발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논평을 통해 “천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검찰의 독립성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정치적 외압을 가하는 시대착오적 조치”라고 말했고,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는 “천 장관의 행동은 검찰의 자율적 청구권과 법원의 판단까지도 대신하려는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구속사유가 아닌데도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검찰의 방침에 법무장관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한 것은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천 장관을 옹호했고, 전국교수노조는 “보수 언론이 (강 교수에 대해) ‘마녀사냥’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천 장관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지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검찰 ‘지휘권 발동’ 신중 분위기속 강경론 대두 이번 사건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강 교수에 대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불구속 수사지휘 수용 문제가 일선 검찰청에서 수렴될 검사들의 뜻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면서 긴장감이 높아가고 있다. 천 장관의 지휘권 수용 여부는 곧 김 총장의 거취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일선 검사들의 총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검찰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검찰청이 이날 이번 현안과 관련해 중간간부와 평검사 등 의견을 취합해 통보해달라는 긴급지시를 내려보내자 전국 일선청 검사들은 ‘검찰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이라도 하듯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삼오오 의견 교환을 하거나 부장ㆍ평검사별 회의 소집을 준비하는 등 내부 의견 결집에 나선 것이다. 대검에서는 이날 연구관들과 과장급 검사들이 각각 회의를 갖고 나름의 결론을 도출했으며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서울중앙지검은 일단 개별 검사들이 충분한 숙고를 했고, 평검사회의나 부장검사회의 등 적절한 방법을 통해 견해들을 모아 대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지검도 차장검사 주재로 부장ㆍ부부장검사 등이 회의를 진행했으며 부산지검은 일단 각 부별로 검사회의를 열어 부별 담당 차장을 통해 취합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의 지시 직후 일선 검사들의 의견을 모으는 작업에 들어간 광주지검 역시 전체 회의를 갖고 머리를 맞댔다. 이처럼 대검과 전국 검찰청이 의견수렴 절차에 들어가면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 표출되고 있는 기류는 신중한 분위기 속에 일부에서는 강경론이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 소장 검사들을 중심으로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검찰의 수사권 독립을 흔드는 중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총장은 거부해야 한다는 부류의 강경한 의견이 적지 않게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검의 한 연구관은 “천 장관의 지휘가 적법하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시키는 부당한 행위라는 것이 대검 연구관 회의의 결론이었다”고 말했고 대검의 과장급 간부도 “대검의 과장회의에서 김 총장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창원지검의 한 검사는 “검찰청법에 법무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총장이 수사지휘를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수사지휘권 거부론을 펴기도 했다. 과거에 공안부에 근무했던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는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정치권 등에서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국보법이 현존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법을 다루는 검사로서는 현존하는 법과 판례에 따라 사건의 처리방향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며 수사지휘권 발동을 수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청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인 만큼 수사지휘를 받는 검찰총장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은 주로 지방에 근무하는 검사들 사이에 두드러졌다. 대구지검의 한 간부급 검사는 “이번 사안이 장관과 총장이 대립할 만한 중대한 사안으로 보지는 않는다.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하려는 뜻은 없다고 보고 서둘러 이번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울산지검의 한 검사도 “검사들 사이에 강경한 입장이나 동요하는 분위기는 없다”며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도 “지휘권 발동은 법에 보장돼 있는 것인데, 검사들이 장관의 수사지휘를 거부하고 강 교수를 구속하라고 규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사지휘 수용쪽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다. 이처럼 천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대해서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지만 검찰총장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총장이 직을 걸 정도의 사안이 아니다”는 시각이 다소 우위를 보이고 있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특히 수사지휘권을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하는 검사들은 대부분 이번 사안으로 총장이 물러나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누가 봐도 검찰 수사권 독립에 중대한 침해라고 규정될 수 있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에는 검찰조직을 병풍처럼 막아줘야하는 총장으로서는 미련없이 직을 걸어야 하겠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그럴 가치가 적다는 게 총장직 유지쪽을 지지하는 검사들의 생각이다. 수사권 수용불가론쪽에 서있는 검사들 중 상당수는 “거취 문제는 총장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면서 우회적으로 총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법무장관-검찰총장 ‘기싸움’ 양상 한편 김종빈 검찰총장이 입장 표명을 유보하면서 지휘권 발동 논란이 두 사람 사이의 ‘기싸움’ 양상으로 비쳐지고 있다.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법무장관의 공식 수사 지휘이기는 하지만 검찰청법에 규정된 권한을 행사한 이상 김 총장으로서는 수용과 거부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날 공세적인 자세를 취한 쪽은 천 장관이었다. 그는 잇따라 라디오 방송에 출연, 수사 지휘권 발동과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설명한 뒤 ‘검찰총장이 항명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제 뜻을 잘 이해할 것이다”며 우회적으로 김 총장에게 수용을 촉구했다. 김 총장의 ‘항명’은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천 장관은 또 ‘검찰총장은 법적으로 지휘를 무조건 수용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법에 (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도록 돼 있으니까 그걸 따라야겠지요”라며 원칙을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정치인 장관’이 검찰 독립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고, 야당은 해임 건의안 제출까지 불사하고 있지만 천 장관은 지휘권 행사 의지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천 장관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김 총장은 지휘권 발동 소식이 전해진 12일 밤 외부와 접촉을 끊고 취재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는 등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수세적 위치에 놓인 김 총장과 대검 간부들이 회의를 시작한 뒤 검찰 주변에서는 강 교수 불구속 지휘가 총장이 사퇴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 등에서 ‘지휘 수용’ 쪽으로 이날 중 결론이 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유력했다. 전날 이미 김 총장이 불편한 의중을 간접적으로 전달했고 장관의 정당한 법적 권한 행사에 항명한다면 검사동일체 원칙이 강조되는 검찰 조직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총장은 장고 끝에 일선 의견을 수렴해 며칠 뒤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카드를 꺼냈다. 지휘를 받는 처지이지만 총장 개인의 입장이 아닌 검찰 조직의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천 장관이 원칙을 내세웠다면 김 총장은 강 교수 구속 여론과 검찰이라는 조직의 ‘힘’을 등에 업고 지휘 수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총장 혼자일 때는 장관의 지휘를 받아야 되는 입장이지만 검찰 조직의 의견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총장으로서도 지휘 수용이든 사퇴든 운신의 폭을 조금 넓힐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장은 3월30일 국회 법사위의 검찰총장후보 인사청문회에서 “정치권으로부터 부당한 압력이 있을 경우 총장직을 지킬 것이냐, 총장직을 떠나 항의할 것이냐”라는 최연희 법사위원장의 질의에 대해 “사퇴하기보다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퇴하는 것보다 (검찰총장으로 남아) 끝까지 책임지는게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은 이 시점에서 한번 곱씹어 볼만하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정치권으로 전선이 확대되면서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원칙을 강조한 천 장관과 ‘카드’ 선택을 앞두고 있는 김 총장의 기싸움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