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금산법 등 잇따른 악재에 한숨만--

올 국회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는 단연 삼성이었다. 국회 재경위와 정무위, 법사위 등에서는 삼성문제가 다뤄졌다. 이건희 회장이 사상 처음으로 증인으로 채택됐고, 삼성 지배구조 문제부터 분식회계 의혹에 이르기까지 초일류기업 삼성의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연일 드러나고 있다. 밖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안으로는 삼성의 경영 관행에 대한 비난 공세가 전에 없이 강화되고 있다. 삼성그룹에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오너 일가에 저가 배정하는 과정의 불법성과 도청파문과 불법 정치자금 제공으로 드러난 정경유착, 그리고 순환출자로 만들어진 기업지배구조의 문제. 이 가운데 에버랜드 전환사채 주주배당이 이재용 상무 등 오너 가족에게 헐값에 집중된 부분은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안기부 불법도청 파문도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그리고 이학수 부회장 등 핵심인사들이 연루돼 처벌될 가능성이 큰 문제다. 국회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증인 출석요구에, 재벌의 금융계열사는 다른 계열사 지분을 5%이상 갖지 못하도록 하는 금산법 개정안이 상정돼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삼성으로서는 이 모든 공세와 압박이 경제활동에 전념하는 기업에 너무 가혹한 잣대를 대며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닌가 불만스러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이 처한 지금의 위기는 그동안 정경유착은 물론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며 기업을 운영한 비용을 치르는 것으로 봐야한다. 삼성이 대외적으로 거둔 성과는 눈부시지만 그 이면에는 민간권력으로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 탈법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동원된 것이다. 그동안 삼성을 압박해왔던 현안은 크게 △금산법 개정 △삼성차 손실보전 문제 △삼성에버랜드의 CB 저가발행 △X파일 논란 등으로 요약된다. 이 가운데 금산법 개정 문제는 청와대가 지난 4일 “금산법 제24조를 신설한 지난 97년 3월을 기준으로 그 이전에 주식을 취득한 삼성생명과 이후에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에 대해 나눠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교통정리’가 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앞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지분을 각각 분리해 법 조항을 정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삼성에버랜드의 CB 저가발행 의혹. 현재 이 사안에 대해서는 법원이 1심 판결을 통해 유죄(배임)를 선고함에 따라 일단 검찰의 추가 수사 등 대략적인 방향이 잡혔다. 다만 앞으로 후속 재판과정에서 재차 치열한 법리공방과 함께 판결내용이 달라질지 여부가 주목된다. 이밖에 삼성차 손실보전 문제는 채권단이 소송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고 X파일 논란은 현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점에서 현재로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 ◆에버랜드, 금산법 등 잇따른 악재에 한숨만-- 삼성그룹이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사법부 등 사방에서 옥죄는‘삼성 문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삼성은 법원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 지 하루가 지난 5일에도“뾰족한 대책이 있겠느냐”며 켜켜이 쌓여 가는 고민을 드러냈다. 막연한 국민정서와 달리 법원은 4일 CB 발행에 대해“경영권 대물림을 위한 변칙 증여”라며 유죄 판결을 내려 치명타를 안겨 주었다. 이에 따라 이건희 회장의 검찰 소환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대한 상속?증여세 부과설 등이 떠도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지만, 삼성은 ‘어설픈 대응’은 오히려 ‘족쇄’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말을 아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일을 싸잡아 삼성 때리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면 억울하다”는 푸념도 들리지만, “소나기가 과연 언제 그칠까”에 대한 우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삼성은 지배구조 등과 관련,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 등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화답해야 할 의무감에 짓눌려 있다. 그러나 개개 사안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을 피하는 대신 ‘삼성공화국’ 논란을 무마할 수있을 정도의 큰 틀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사법부와 행정부의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대응하면 야합설 등 또 다른 논란의 불씨만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또 삼성이 공화국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공정거래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철회하는 등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일부 수용할 것으로 점치고 있지만 삼성은 이 역시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지 등 기업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삼성은 하나를 양보하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카드를 뽑아 들기 위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 지배구조 바꾸려는 게 아니지만… 현재 여권 내부에서는 삼성 지배구조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은 지배구조방식인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겠다고 했고, 김현미 의원은 “에버랜드 CB 편법 증여가 유죄판결이 난 만큼 이재용 상무로부터 시작되는 삼성지배구조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신기남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 진보 연대는 이건희 회장 가족의 불법취득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과격한 주장은 아직 여권내 에서 소수다. 박영선 의원은“지배구조까지 바꾸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산법 개정안이 통과돼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주식을 팔더라도, 이 상무 등의 에버랜드 지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 상무 지분을 포함한 우호지분이 70% 이상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우리는 삼성 지배구조를 바꾸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런데 왜 끊임없이 삼성 지배구조 변화론이 나오는 것일까. 핵심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다. 금산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우리나라 법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단순하게 표현하면 삼성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결합된 구조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즉 앞으로도 두 자본의 분리문제가 나올 때마다 삼성이 등장할 수밖에 없으니, 삼성 자체적으로 뭔가 해결책을 모색해보라는 것이 여권의 주문인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에 경계를 둬야 한다는 규제가 사회적 공론일 경우에는 규범을 수용하고 경영과 지배구조를 최대한 맞춰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여권도 해법 마련이 쉽지 않음은 인정하고 있다. ◆금산법 논의는 어떻게 되고 있나 금산법 개정안과 관련, 국감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지만 접점은 찾지 못했다. 4일 청와대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분리대응안을 내놓았다.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초과지분은 인정하되 삼성카드 소유 삼성에버랜드 지분 중 5% 초과분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두고 처분하도록 하자는 게 청와대가 정치권에 제시한 안이다. 국감장 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 중 상당수가 유예기간을 두고 분리대응하는 안에 대해 찬성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여당 의원 일부와 한나라당 의원은 처분명령보다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정부안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 김양수 의원은 “현행 법률이 보유 자체를 금지하지 않고 있고 초과지분을 처분하게 하는 근거가 없는데도 새로운 입법으로 처분토록 하는 것은 기존 권리를 부정하는 전형적인 소급입법”이라며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되는 위헌”이란 발언으로 정부안을 편들었다.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도 “의결권 제한만으로도 입법 목적을 달성할수 있는데 처분명령이라는 새로운 법을 도입하는 것은 신뢰보호의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서 소급입법 논란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산법 이슈를 주도적으로 끌고 가고 있는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삼성카드가 2004년 7월 금융감독원에 보낸 공문을 보면 의결권 포기 방식으로 금산법 위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며 “한도 초과 지분 문제에 관련되는 이해당사자 간 회의에는 다른 회사는 빠지고 삼성만이 참여했다”고 밝히는 등 개정안에서 삼성 입장이 반영됐다는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민주노동당은 열린 우리당이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5년 유예기간 뒤 처분보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처분해야 한다는 독자발의(심상정 의원)안을 내놓았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정부가 이미 제출한 법안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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