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조사로 드러난 공기업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지난달부터 예비조사에 들어간 결과 공기업의 ‘방만경영’과 ‘제식구 감싸기’ 행태가 만연해 있음이 확연이 드러난 것. 예비조사를 통해 분식회계·편법출자·변칙투자 등 공기업의 비정상적 경영상태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나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토지공사가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다. 설립 본연의 임무인 공공 서비스는 외면하고 수익에만 치중한 결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만들어 내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감사원의 시각이다. 토지공사는 수도권 공공택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조성 원가를 실제보다 높게 산정,최근 3년간 5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또 4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회사인 5개 기업 에 변칙 투자,수천억원대의 이익을 챙겼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10일부터 주요 국가 및 지방 공기업, 중부산하기관 등 총226개 공공기관에 대해 단계별 기획감사를 벌인다고 밝혔다. 이처럼 감사원이 대대적인 공기업 감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공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관리·감독 기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도적적 해이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따른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 공기업 부실·방만경영 실태 감사원이 최근 벌인 금융·건설공기업 예비조사결과 공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국토지공사는 수도권 등지에 공공택지를 조성하면서 조성원가를 부풀려 막대한 이익이 생기자 분식회계를 통해 2000억원 정도의 수익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4조원에 달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회사인 5개 기업 에 변칙 투자,수천억원대의 이익을 챙겼다. 공공과 민간 부문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프로젝트 회사를 통해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이 과정에서 토지공사는 건설교통부 장관의 승인 요건을 피하 기 위해 출자 지분을 20% 미만으로 유지하는 편법도 동원했다. 이로 인한 토지가격 상승은 건설 원가에 그대로 반영돼 아파트 가격 급등을 초 래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게 감사원의 해석이다. 토지공사는 특히 법인세 부담과 땅 장사를 통해 배를 불렸다는 비난 여론을 피 하기 위해 분식회계로 이익 규모를 2000억원이나 축소 신고했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는 장기간 미개발 상태인 토지에 대해 재고자산평가 충당금 을 설정했을 뿐 분식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국주택공사는 자회사와 수의계약을 통해 100억원대 이상을 부당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은 사기꾼의 농간에 속아 151억원을 투자했다가 73억원의 손해를 입었으며, 한국철도공사는 200억원을 출자해 11개 자회사를 신설했으나 부실경영으로 59억원의 적자를 냈다. 뿐만 아니라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회사 사장의 연봉은 12억원, 산업은행 총재 연봉은 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모 공기업의 말단 직원조차 중앙부처 1급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등 임금체계도 비정상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이 편법적이고 방만한 공기업의 경영실태는 감사원이 지난 9월 실시한 예비조사에서 드러난 것으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또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증권사 등 민간금융기관의 기본 업무인 대기업 회사채 발행에 지나치게 많이 투자하며 막대한 이득을 거두고 있어 시정이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난 97년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산업은행에 회사채 인수업무를 승인한 것은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면서 "소방수 역할이 끝났으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업은행이 유리한 인수조건을 제시해 회사채 인수 시장의 25%를 독식하다 보니 민간 증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국책은행이 해야할 일이 뭔지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고 덧붙였다. 공기업들의 과도한 임금지급 문제도 도마위에 올라 있다.특히 한 공기업 하위직의 경우 중앙부처 1급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등 13개 공기업이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지침보다 임금을 많이 올린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하고 있다. ◆ 감사의 핵심축, '비리척결' 감사원은 우선 1단계로 연말까지 금융·건설 공기업 47개 기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2단계로 82개 정부산하기관을,3단계로는 97개 지방공기업에 대해 감사를 내년 하반기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감사원은 이를 위해 박종구 제1사무차장을 단장으로 한 200명 규모의 ‘공공기관혁신 기획감사단’을 별도로 구성했다. 이번 기획감사단에는 감사관뿐만 아니라 금감원 등의 외부인력까지 투입됐다. 감사원이 대대적인 공기업 감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지배구조 구축 및 운영 ▲주기능·주업무 수행 ▲자회사 설립 및 관리 ▲예산·조직·인력운용 등 크게 4개 부분으로 나눠 집중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직무감찰도 강화키로 했다. 박 1사무차장은 “이번 감사의 핵심 축의 하나가 비리척결에 있다.”면서 “직무감찰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암행감찰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감사원은 공공기관장에 대한 감사와 경영혁신역량 평가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박 차장은 “감사와 평가결과를 임용권자에게 인사참고자료로 제공하고, 감사원법에 따라 공공기관장의 교체권고권도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감사원은 주요 공공기관에 대해 ‘상시 기관모니터링 시스템’을 작동한다는 방침이다. 감사원의 이번 공기업의 강도 높은 감사로 공기업 개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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