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내사도 믿을 것 못 돼

그동안 제기되었던 의혹을 덮어주려는 의도도 있을 것 청와대가 재경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 관련 부처를 상대로 내사를 벌이고 있다. 정부의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 개정안’ 작성 경위에 대해 벌이고 있는 이번 청와대의 내사는 그동안 참여연대와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 등이 제기해 온 정부의 ‘삼성 봐주기’ 의혹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내사가 그동안 제기되어왔던 의혹을 덮어주려는 의도에서 계획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참여연대는 정부가 삼성그룹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금산법의 집행과 개정작업을 진행해왔다는 의혹을 일관되게 제기해왔고, 이러한 의혹에 대한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해명과 시정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과연 금산법 개정안은 ‘삼성 봐주기 법’인가? 그 의혹의 배경을 밝혀본다. 앞서 언급했듯 금산법이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안’이다. 즉 삼성으로 예를 들자면, 금융계열사인 삼성카드가 비금융계열사인 삼성전자 등의 주식을 가지는 경우, 결과적으로 한 그룹 총수에 의한 지배구조가 강고히 되는 것은 당연한 상황이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금융계열사가 주식을 소유하는 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금산법 중 24조로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단독으로 20% 이상, 또는 다른 계열사와 합쳐 5% 이상 소유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법안이 1997년 3월에 신설되었고, 이후 2000년 1월 21일 개정안을 만들었는데, 삼성의 위법행위는 지난 97년 3월의 법안을 따르면 하자가 없으나 2000년 1월 21일 법에 따르면 위법이 되는 것이다. 즉 삼성의 경우 98년 12월 31일 중앙일보 계열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10%를 획득하고, 이후 증자에 참여해 25.6%를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법률은 소급적용, 즉 과거의 행위를 개정된 법률안대로 처벌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이것은 헌법에 명시된 것이다. 일각에서 일고 있는 삼성 처벌 반대 논리는 말 그대로 삼성을 지금 처벌한다는 것은 ‘소급처벌’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논리인 것. 이와는 반대로 삼성을 처벌하자는 논리를 펴고 있는 측은 개정이전에 저지른 위법행위이지만 이후에도 삼성이 주식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급처벌이 가능한 ‘부진정 소급’의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최근 알려진 청와대의 내사 소식과 참여연대측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도 주목해 볼 만하다. ■ 법 위반이 아닌 것으로 돌리려면 법을 바꿔야 해 금산법은 원래 ‘금융기관의 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이었으나 1997년 3월 명칭이 변경되면서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특정 회사의 주식을 20% 이상 소유하거나 5% 이상 소유하면서 계열사들과 함께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참여연대는 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은 사전승인 없이 각각 삼성 에버랜드의 지분 25.6%와 삼성전자의 지분 8.55%를 갖고 있으므로 금산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삼성의 이런 법 위반을 '법 위반이 아닌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 의결한 금산법 개정안은 부칙 경과 규정을 둬서 초과 지분에 대한 강제 처분은 법 개정 이후에만 적용하고 이전에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만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이번 금산법 개정안이 삼성의 사활과 직결된 '삼성 봐주기' 조치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 삼성그룹에게는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 계열사간 순환출자구조가 바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으로 현재 지주회사격인 삼성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지분구조가 성립돼 있다. 이러한 순환구조에 균열이 생긴다면 이재용 상무는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받게 될 경영권 승계구도 역시 순조롭지 못 할 것이다. 금산법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에 대한 초과지분 2.23%를 매각해야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의 삼성전자에 대한 내부지분율은 16.05%에서 13.82%로 2.23%포인트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공정거래법상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규정도 삼성전자의 내부지분율을 떨어뜨리지만 그 하락폭은 0.27%포인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과 비교해 보면, 금산법 개정안이 삼성그룹에게 사활적 이해가 걸린 문제가 됨을 알 수 있다. ■ 금감위가 ‘슬그머니’ 끼워 넣은 부칙 개정안 한편 금산법 개정안 부칙 4조 2항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산법상의 별도 승인이나 절차없이 삼성생명은 1997년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인 8.55%까지 계속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7.23%이니 앞으로 약 1.3%는 더 보유하게 될 수 있으며, 2004년 말에 2만주와 2005년 1분기에 2만5000여주를 추가로 취득한 행위도 아무런 문제도 없는 일이 돼버린다. 부칙 4조 2항은 ‘1997년 3월 금산법 발효 당시 금산법 또는 설립 근거법에 의해 승인 없이 한도를 초과하여 보유한 것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주식소유 비율을 24조 1항에 의한 한도로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칙 조항은 지난해 11월 금산법 개정안 입법예고 안에는 없었던 것이다. 차관회의 심사과정에서 금감위가 이 부칙 개정안을 '슬그머니' 집어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중요한 규정을 입법예고도 하지 않고 끼워 넣은 금감위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것은 이번 청와대 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 대다수의 전문가들, “소급입법 아니다” 또 정부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0.6%에 대해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신설되는 매각 명령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소급입법이라는 이유로 불가하다고 한다. 대신 정부는 의결권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의 법률전문가들은 그것은 소급입법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학교 앞 500m 지점에서 담배자판기를 설치해 놓고 영업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정부가 법을 만들어 학교 앞 500m 범위 안에는 담배자판기의 설치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자판기를 철수하라고 한다고 하자. 이것이 소급입법인가? 금산법에 대한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소급입법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소급입법이 아니라고 한다. 학교 앞 담배자판기 설치 금지법은 기존의 담배자판기 업자로부터 그가 이미 얻은 수익을 환수하거나 기존의 영업행위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학교 앞에서 담배자판기 영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산법도 마찬가지다. 만약 금산법을 개정해 과거에 이루어진 삼성생명이나 삼성카드의 계열서 지분 매입을 무효로 돌린다면 소급입법이겠지만, 그 지분의 보유를 앞으로도 계속 허용할 것인가는 소급입법의 문제가 아니다. 또 삼성생명이 2004년과 2005년에 삼성전자 주식 총 4만5천여 주를 추가로 취득했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금산법 위반행위다. ■ 정부는 자가당착, 삼성에게는 유리한 법 해석 정부는 금산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삼성에 유리한 법 해석을 하고 있다. 우선 정부는 삼성의 지배구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삼성생명에 대해서는 금산법을 아예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은 보험업법에 근거해 타회사 주식을 취득, 보유하고 있으므로 승인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금산법을 제정한 이유는 바로 이런 경우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부와 국회는 '5% 이상 소유' 등을 금하고 있는 금산법 24조의 입법취지에 대해 "현행 금융관계법은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연합해 타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경우 이에 대한 규제장치가 결여돼 있으므로 이를 제한함으로써 금융의 산업자본 지배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한다(1996.12.13. 국회 재경위 18차 전체회의 속기록)"고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삼성생명에 대해 '보험업법상 문제가 없으면 금산법으로 문제삼을 수 없다'고 하는 정부의 입장은 정부로서는 자가당착이고 삼성에게는 유리한 법 해석이라고 보여진다. ■ ‘개정됐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행위에 대해 정부는 금산법 24조 위반에 대한 벌칙규정 및 과태료 규정이 2000년 1월 21일 개정됐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3차례에 걸친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행위 중 마지막 3번째 위반행위는 현행 금산법으로도 처벌 대상이다. 3차례의 금산법 위반행위는 1998년 12월 31일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중앙일보 소유의 에버랜드 지분을 각각 10%, 7.05% 취득한 행위,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1999년 4월 17일 실권주 인수로 에버랜드 지분을 각각 14%, 11.6%로 변동시킨 행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4년 2월 삼성카드가 삼성캐피탈을 합병하면서 삼성캐피탈의 지분 11.6%를 인수하여 에버랜드 지분을 25.6%로 끌어올린 행위다. 이 가운데 2004년에 이루어진 3번째 위반행위는 금산법의 과태료 규정이 개정된 2000년 이후의 일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금산법 개정을 다시 추진해왔다. ■ 동부생명은 철퇴, 과연 ‘삼성공화국’ 정부는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0.6%에 대해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정부는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금융기관에 대한 벌칙규정은 2000년에 신설했지만 이에 대한 시정조치는 현재까지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에 대해서는 근거규정이 없기 때문에 매각명령을 내릴 수 없는 것일까? 금감위는 2003년 7월 금산법상 사전승인 절차 없이 아남반도체 지분을 모두 9.67% 취득한 동부화재(8.07%)와 동부생명(1.61%)에 대해 취득지분 매각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금산법이 아닌 동부화재의 설립 근거법인 보험업법 15조(금융감독위원회의 명령권)에 따라 매각명령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대단히 적극적이고 의욕적인 법집행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욕과 의지를 왜 삼성카드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가? 삼성카드의 설립 근거법인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을 적용하면 삼성카드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여전법 52조는 카드회사에 대해서도 금산법 24조가 적용된다고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전법 53조는 52조를 위반할 경우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삼성카드가 초과보유한 에버랜드 지분에 대해 금감위가 매각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여전법 52조 2항은 단순히 금산법과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형식적인 규정이므로 여전법의 실질적인 일부가 아니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을 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입장을 금산법 개정으로 덮어버리려는 것인가? 이처럼 금산법의 해석과 집행, 개정안 작성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흐트러뜨리는 해석이나 개정안은 피해왔다. 금산법은 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빼앗기 위한 법이 아니다. 이 법은 단지 재벌이 계열 금융기관을 통해 계열사를 유지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그룹은 금산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즉 총수 일가가 극소수의 지분만 갖고서도 계열 금융기관을 통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을 유지하려고 한다. 정부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정부가 지켜야 할 것은 누구에게나 법은 평등하게 적용된다는 법에 의한 지배의 원칙이다. 기업 총수 없이도 시장경제가 유지될 수 있지만 법치 없이는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이번 조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어서, 그 결과에 따라 현재 국회에 올라가 있는 금산법 개정안의 처리 방향에도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앞으로 정부의 재벌 정책이 강경 기조로 돌아설 수도 있어 주목된다. 한편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난 달 22일 “일부 여당 의원들과 시민단체가 정부의 금산법 개정안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삼성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실에서 지난 8월 중순부터 내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감위가 금산법 24조를 위반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를 봐준 게 아닌지에 대해서도 이번 내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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