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의 실루엣과 내가 닮았다는 말 들었을 때 가장 기뻤어요”

LG아트센터에 있는 그의 대기실에 들어가는 입구에는 ‘실수는 자랑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모든 공연장에 감도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간헐적으로 들리는 노래소리 한 가운데 대기실에 까만 수트를 입은 183cm의 가느다란 실루엣, 박건형이 앉아있었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는 한음 한음 익숙한 솜씨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중 한 곡을 쳤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건네자마자 그는 대뜸 “저희 뮤지컬 보셨어요?”하고 물어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건형, 그는 토요일 밤의 열기 속의 ‘토니’로 자신을 읽어주길 바랬고 기자는 단순히‘스타덤’으로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계속 자신의 몸과 가장 닮은 언어로 이야기하고 행동했다. 거침없고 군더더기 없는. 박건형은 고민 많을 수밖에 없는 청춘 ‘토니’의 특수성을 ‘20살이기에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보편성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복잡하고 지루한 질문에 빠르고 경쾌하게 대답하는 그는 여유롭고 매순간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모든 아름다운 것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역시 마찬가지. 3차에 걸친 치열한 오디션, 6개월이 넘는 연습시간, 2주간의 국내 최초 프리뷰 공연, 15일간의 국내 첫 트라이아웃(시연회)시도와 매력적인 주인공 설정, 비지스의 히트넘버, 화려한 무대와 의상, 치밀하고 역동적인 무대구성과 70년대 디스코넘버들의 흥겨움, 토니역을 맡은 박건형과 여주인공 스테파니 역을 맡은 최정원의 환상적인 듀엣댄스, 조연진의 드라마틱한 군무와 윤석화의 연출까지.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는 처음부터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시작했다. 5월까지 리틀엔젤스예술회관 공연을 마치고 6월 14일부터 8월 23일까지 LG아트센터까지 2개월 간의 장기연장공연을 갖는다. 바로 이 공연 화제의 한 가운데 박건형이 있다. 솔직한, 두려움 없는, 매력적인 토니 현재 <토요일밤의 열기> 홈페이지와 박건형의 개인 홈페이지에는 토니 박건형을 칭찬하는 게시물로 들썩인다. 2시간 40여분의 공연시간 내내 관객을 눈을 붙잡아야 하는 부담감과 동시에 이제 주목받는 스타라는 자부심은 그에게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토요일밤의 열기로 스타가 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지라는 질문에 박건형은 되려 ‘스타’라는 단어에 ?마크를 붙인다. 스타라니...그런 단어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 그는 지금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당황하지도 들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이 공연을 위해 쏟은 노력을 알기에 찬사 역시 정당한 보수처럼 어느 정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밉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제 박건형을 아는 이들에게는 지루한 에피소드일지는 몰라도 박건형의 성실성과 근성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때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몸치. 세 편의 뮤지컬(더 플레이. 더 리허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적지 않은 비중으로 무대를 누벼왔던 그였지만 항상 ‘춤’만은 콤플렉스였다. 그러다 <토요일밤의 열기>오디션 포스터를 봤고, 무작정 오디션에 임했다. 춤사위를 정확하게 보여주기 위해 타이즈를 입고 오디션에 임한 다른 이들에 비해 그는 헐렁한 운동복을 입고 막춤을 췄다. 어차피 그 사람들에 비해 춤을 못 출 바에는, 어떤 옷을 입던 겉모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고. 내가 지금은 이렇더라도 정말 하고싶어하는 열정과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에 큰 베팅을 걸었다. 좋게 말하면 패기였지만 어쩌면 부딪히고 보자는 무대포 정신이었다. 제작진은 그의 가능성과 태도에 확신을 가졌다. 그 후 3차에 걸친 오디션 과정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같이 전개되었고 그는 오디션 막판까지 주인공으로 뽑힌다는 어떤 확신이나 힌트도 가지지 못했다. 그는 6개월 동안 하루 12시간씩 춤 연습에 매달렸다. ‘좋은 기회’에 대한 욕심이기도 했고 콤플렉스 극복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목소리에 충실했다. 자타공인 인간통나무는 점점 부룩클린의 춤 잘 추고 연애하고 싶은 남자‘토니 마네로’로 변해갔다. 힘겨운 연습과정에서 어떤 고민이나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명쾌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인공이 되지 않더라도 목표한 것을 위해 열중하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열정적인 순간을 즐겼다. ‘토니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토니’와 <토요일밤의 열기>는 어떤 의미일까. “토니는 딱 20살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인물이예요. 지금 20살을 돌이켜보면 왜 그런 고민들을 했을까 싶잖아요. 관객들이 그런 것들을 보셨으면 해요. 또 이번 공연을 통해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감을 얻었다는 거죠. 스스로 점점 다듬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춤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요(웃음). 디스코가 물론 춤의 한 분야이긴 하지만. 뭔가에 부딪혀 본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이번 공연은 하나의 과정이예요” 그는 <토요일밤의 열기>의 매력을 사랑·배신·방황 이렇게 세 단어로 정리했다. 화려하게 빛나는 춤 속에 자신에게 주어진 가난과 불평등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고 ‘제발 나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춤추는 젊음. 무대에서 불행한 청춘을 표현하는 자신의 춤과 연기에 관객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때 희열을 느낀다는 그는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박·건·형 아직 공연이 끝나면 쓸쓸함보다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며 기운을 낸다는 그는 무대에서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른 배우들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그 누구도 아닌 박건형으로 남길 바라고 있다. 포스터의 디스코를 추는 실루엣과 닮았다는 말이 가장 기분 좋았다는 박건형. 큰 무대에 대한 부담도 없고, 누구의 배역도 탐난 적 없고, 누구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도 없으며 누구와 비교되는 부담감도 없는 배우. 그는 많은 것을 비우면서 많은 것을 채워나갔다. 자세가 된 배우. 주변에서 그를 평가하는 말이다. 2년 전 군대를 제대한 후 잠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 세팅맨으로 활동하면서 눈에 띄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런 경험들은 무대의 주인공인 지금도 유효하다. 배려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운 것. 아직도 무대에 서지 못하고 스태프로만 활동한다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나는 배우고, 언젠가 무대에 설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더라도 무대를 떠날 생각은 없어요” 그는 지금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는 것. 다른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처럼 ‘당연히 되게 한다’는 생각으로 부딪히면서 배워나가고 싶어한다. 처음 고등학교 아카펠라 공연무대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꿈을 위해 달려온 박건형은 지금 자신의 커리어의 시작선에 와 있다. 그는 지금 토니와 함께 디스코 스텝을 밟으며 경쾌하게 브룩클린 다리를 건너고 있는 중이다. 사진/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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