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72년 사상 초유의 피감기관으로 지목돼

설립된지 72년만에 대한축구협회가 피감기관으로 지목되어 국정감사를 받았다. 지난 27일 서울올림픽미술관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선 주중연 부회장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여야 의원들에게 따끔한 질타를 받았는데 조 부회장에게만큼은 여야가 한마음(?)이었다는 후일담. 문광위 의원들의 목소리는 유난히 컸다. 그동안 여권으로부터 밉보여온 대한축구협회가 호되게 당한 셈. 안민석·이광철 등 열린우리당 출신 문광위 의원들은 협회 관련 의혹들을 들춰내며 협회 운영 및 회계의 투명성을 강하게 요구했다. 먼저 질의에 나선 안민석 의원은 협회 스폰서십 대행사인 FC네트워크와의 비리, 영국 에이전트사 캄(KAM)과의 유착관계, 역분식회계를 통한 탈루 및 비자금 조성, 축구의 정치도구화 등 협회 4대 의혹과 회계부정 의혹은 하청업체에 대한 세금계산서 미발급, 나이키와의 협찬계약 등 회계부정 8대 의혹으로 지적했다. 이계진 의원은 조 부회장에게 “회계에 자신이 있다면 의혹 해소를 위해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하라”고 말했고, 정청래 의원은 “전임 축구대표팀 감독 본 프레레와 대질 심문에 응하겠는냐”라는 질문도 던졌다. 의원들은 불투명한 회계는 물론 협회 조직체계와 엠블렘 소유권 문제 등 다양한 의혹을 제기하며 협회를 전방위로 압박했고, 증인으로 나선 조 부회장은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으며 추가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전술로 의원들의 질의에 맞섰다. ■ 협회 저격수, 안민석 의원과 이광철 의원 "결산보고서에 공식후원사인 나이키가 제공한 현금과 물품은 도대체 왜 나와있지 않나? …협회 대부분의 스폰서를 독점하는 FC네트워크의 법원등기이사로 협회 고위인사가 등재돼 있었다." (안민석 열린우리당 의원) "국고나 기금을 불법으로 허위서명한 내용을 확인했다. …지방 월드컵구장 사용계약은 노예협약에 준하는 '불공정협약'이다. 특히 조례까지 어기게 만들면서 지역주민의 혈세를 쥐어짜 협회의 배를 불렸다."(이광철 열린우리당 의원) 사상 처음으로 피감기관이 되어 국정감사 도마 위에 오른 대한축구협회는 그야말로 '의혹 덩어리'였다. 27일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안민석·이광철 열린우리당 의원은 협회의 저격수를 자처하고 맹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이들은 120쪽에 달하는 '축구협회 선진화를 위한 정책자료집'을 내 협회에 대한 문제점과 의혹들을 지적했다. ■ 각종 후원 내용은 온 데 간 데 없어 우선 안 의원은 ▲스폰서십 대행사인 FC네트워크와의 검은 커넥션 의혹 ▲회계부정을 통한 탈루 및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우선 FC네트워크와 관련, 안 의원은 거의 대부분의 스폰서를 대행하는 FC네트워크의 등기이사에 협회의 고위 관계자가 등재돼 있던 것을 지적하며 "직권남용 및 업무상배임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찰에 고발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지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이 회사 주식 1천주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 의원은 함께 "FC네트워크의 설립배경이나 이 회사를 스폰서대행사로 선정한 절차와 근거는 (어떤 자료에도) 나와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이와 함께 축구협회가 ▲휘장사업자인 <빅터 코리아>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고 ▲공식후원사가 제공한 현금·물품도 예결산보고서에 넣지 않았고 ▲2004년 결산서에 수입항목을 신설하면서 이전 내역을 기재하지 않았으며, ▲국제대회 파견비가 2001년 7억원 대에서 2004년 37억원대로 5배 증가하는 등 회계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안 의원은 특히 "축구협회는 연간 최소 수십억원에 이르는 현물 후원금 등을 예결산에 전혀 포함시키지 않아 탈세 또는 비자금 조성 의혹을 스스로 부추기고 있다"며 "특히 나이키는 5년간 330억의 현물을 후원했음에도 예결산보고서 어디에도 내용을 찾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축구협회는 예산을 축소 보고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국정감사 자료에서 지난 몇 년간의 후원금액을 밝혔는데, 이 액수가 대의원총회 결산보고서에서 밝힌 것보다 많게는 연 34억까지 차이가 난 것. 지난해만 해도 국정감사 자료에서는 71억원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대의원총회 결산서는 이보다 20억이 많은 91억 6900만원으로 후원금액이 나와있다. 안 의원은 "협회는 '영업 비밀'이라는 명목으로 국회의 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상위 단체인 대한체육회는 후원업체와 후원액을 투명하게 공개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안 의원은 "수입항목 중 지난해 7개 항목이 신설돼 총 수입금액이 44억 2600만원에 달했다"며 "그러나 이 항목에 나온 사업들이 실제로 지난해 새로 만들어진 것인지 이전결산서에 누락된 것인지 투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안민석 "'영업비밀'이라며 자료공개 거부... 상위 단체도 공개하는데" 이 의원의 '저격'도 안 의원에 뒤지지 않았다. 이 의원은 이날 대한축구협회가 대한체육회에 보낸 공문서 '제3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정산서'와 '제3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정산서' 등을 공개했는데, 이 서류의 일부 서명이 허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의원은 "두 문서에서 유○○·서○○(국제심판)· 이○○·한○○(이하 축구협회 직원) 등 4명의 서명은 글씨의 크기, 위치, 누름쇠, 글씨가 차지하는 면적, 글자 굵기 등을 볼 때, 누가 보아도 한 눈에 한 사람이 서명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허위서명을 기재했다는 것. 이와 관련, 이 의원은 "서명을 해야하는 자료도 이런데 외부에 정산보고를 별도로 하지 않는 기업 후원금이나 티켓수익금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불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협회가 지방자치단체와 맺은 '월드컵구장 사용계약서'의 문제점을 들고 나왔다. 그는 이 계약을 "노예협약에 준하는 '불공정협약'"이라고 비판하며 "이로 인해 9개 월드컵 경기장은 모두 적자이며, 이를 메우기 위해 지역주민의 혈세가 매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씩 투입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가 공개한 '경기장소 협약서' 9조에서는 협회가 지자체에게 유료 입장권 판매액의 5%를 준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자체는 입장권 판매액의 20%를 지자체가, 80%를 구장 사용단체가 갖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 조례에 따르면 구장을 사용하는 모든 단체가 사용료를 내게 되어있지만 축구협회는 구장은 무료로 사용한다. 이 의원은 이어 "경기 뒤 리셉션의 경우, 지자체가 그 비용을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자체 명의로 초대할 수 있는 인원은 극히 제한됐다"며 "이러한 것은 모두 협회가 계약에서 우월한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집중 공방, 하지만 성과는 없어 의원들은 이같은 의혹들에 대해 "축구협회의 비밀행정 및 독단적 운영에서 파생된 문제"라며 "즉각적인 법인화와 공적 관리체제 구축 및 재정회계의 투명성을 확보치 못한다면 축구협회는 검찰조사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향후 축구협회가 민주적 운영과 투명한 회계를 바탕으로 한국 축구의 새로운 백년대계를 세우고 한국 축구의 중장기 발전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가령 의원들이 축구협회의 2004년도 결산보고서에서 국제대회 파견비로 약 37억원이 지출된 사항에 대해 누가 어떻게 지출했는지 좀 더 상세한 자료를 요청하자 조 부회장은 나중에 추가로 상세한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식이었다. 이러한 지루한 공방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축구협회 국정감사에서 의혹으로 거론된 것 가운데 명확히 그 의혹이 해소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 감사에 나선 국회의원들은 축구협회가 자료 요청에 소극적으로 응해 국회를 모독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조 부회장은 처음으로 받는 국정감사라 직원들의 준비가 부족했다고 답했다. 결국 푸른 그라운드에만 익숙해져 있던 20여명의 축구기자들에게 색다른(?) 국감장의 경험을 안겨줬던 사상 초유의 축구협회 국정감사는 의원들이 조 부회장에게 추가 자료를 요청하고, 조 부회장이 이를 수락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 축구협회의 자정노력은 축구협회의 법인화라는 결론 나와 그동안의 국정 감사를 돌이켜본다면 바쁘신(?) 국회의원들이 축구협회의 의혹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는 상관없다. 축구협회에 대한 의혹은 본래 축구협회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축구계 안팎에서 축구협회의 자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 목소리를 종합해보면 결국 축구협회의 법인화라는 결론이 나온다. 조 부회장은 국감장에서 오는 11월까지 축구협회의 법인화 절차를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법인화를 통해 그동안의 모든 의혹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말이다. 법인화가 된다면 축구협회는 문화관광부의 산하 단체가 돼 그동안 독자적으로 실행해 온 예산 집행의 자율성을 잃게 된다. 축구협회의 예산과 결산은 문광부에 승인을 받아야 하고, 매년 문광부의 정기 감사도 받게 된다. 회계의 투명성이 제고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국감에 임하며 축구협회가 의원들에게 제출한 자료를 살펴보면 협회의 회계 부분에 의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연간 평균 4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소비하는 축구협회가 A4 1장의 결산 보고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회의원들과 축구협회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축구인들,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축구팬들은 축구협회의 자정노력의 결과물인 협회 법인화에 대해 아낌없는 격려와 찬사를 보낼 것이라는 것. 한국 축구의 깨끗한 앞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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