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각종 여론조사서 1위 고수...실제 대선으로 이어질까?

2007년 치러질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를 ‘따 놓은 당상’ 정도로 보일만큼 고건 열풍이 거세다. 대선 예비후보 여론조사만 보면 고건 전 총리는 차기 대통령 자리를 맡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2004년 이후 10여 차례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는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고수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지난 8월 22일 한겨레의 여론 조사에서 30%, 같은 달 18일 동아일보 조사에서 35%의 지지를 얻은 바 있다. 당시 2위를 마크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지지율(16%, 15.1%)보다 2배가 넘는 높은 인기다. 또한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가 지난 8일 실시한 조사에서 고 전 총리는 민주당 간판으로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풍부한 경험과 경륜, 대통령 권한대행 때 보여준 리더십, 노 대통령과 차별되는 안정적 이미지 등이 고 전 총리 인기의 원동력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여론조사상의 인기가 실제 대선에서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이 되기 어려울 것” “여론조사는 여론조사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무엇이 그의 여론지지도를 꺼지기 쉬운 거품으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 ■ 고건, 대국민 호감도는 거품일뿐...리더십 부재의 반작용 사사건건 싸우기나 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고건 전 총리에게 애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부터 모든 여론 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가 급격하게 부각되고 있다. 물론 고건 전 총리는 퇴임 후 일체의 활동을 그만두고 조그만 사무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MBC가 코리아 리서치 센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표본오차 95%±3.1%) 결과 차기 주자군에 대한 호감도 면에서 26%의 지지를 얻어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22.9%)와 열린우리당의 선두주자격인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15.7%)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호남 출신인 고 전 총리는 특히 수도권과 호남, 30~40대에서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우리나라 유권자의 정치성향을 좌우하는 변수인 지역 및 세대와 무관하게 고루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앞서 지난 9월14일 한겨레21, 10월6일 경향신문, 11월16일 국민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호감도 1위에 오른 바 있다. 지난 5월 총리직에서 사퇴한 뒤 현실정치와 거리를 둬온 고 전 총리가 지지율 1위 행진을 거듭하자, 이에 반신반의해온 여야 정치권에선 그 원인을 분석하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고 전 총리의 인기가 여권의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데 대해 다소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결국 `거품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전북 전주가 지역구인 우리당 장영달(張永達) 의원은 "무작정 과거에 대한 동경과 안정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며 "우리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진전돼나가면 백지처럼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홍준표(洪準杓) 의원도 "현정권이 386정권이라고 하고 사회전체가 불안하니까 대통령 탄핵시 권한대행으로서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고 전 총리의 인기가 올라간 것"이라며 "그러나 자신은 물론 두 아들이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검증 대상에 오르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고 전 총리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여야 모두 `확실한 차기'가 없다는 점에서 `고건 카드'는 향후 각당의 당권경쟁은 물론 정계개편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여러 진단을 살펴볼 때 고건 전 총리의 부각 현상은 또 다른 '거품'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병역 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민감도로 볼 때 만일 고건 전 총리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면 반대자의 집요한 공격 앞에 몰락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여론 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를 지지하는 국민 중에 고건 전 총리와 두 아들이 병역 면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과정이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으면 고건 전 총리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게다가 고건 전 총리의 기질 상, 갈가리 찢겨진 현 상태를 독자적으로 풀고 나갈 능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대통령 탄핵 기간 중 '권한 대행'을 맡아 잘 마무리한 것은 국민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어서이지 고건 권한대행의 능력 자체가 투영되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건 카드가 강력한 노조와 시민단체의 파상적인 반발을 무릅쓰고, 개혁을 해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정치라는 것은 워낙 변화가 심한 것이기에, 또 다른 변수가 생겨 지금의 고건 열풍이 지속되고, 나아가 '고건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앞날을 예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휘발성 강한 논란거리, ‘난세(亂世) 때의 처신’ 2003년 2월 고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 때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난세 때의 처신’이 대선 때는 더욱 휘발성 강한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크다. 고 전 총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 3일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1980년 5·17 비상계엄확대 조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1주일간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 중대위기 때마나다 몸을 숨겼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 이에 고 전 총리는 박 대통령 서거 때에는 박근혜 씨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본관에 마련된 빈소에서 3일간 장례준비를 했다는 해명을 일관되게 하고 있고, 5.17 행적에 대해서는 “군정에 참여할 수 없어 운전기사를 통해 사표를 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의 “군정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해명은, 전두환 정권에서 그가 중용됐다는 점에서 다소 빛이 바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69세, 나이도 너무 많다 1938년생인 고 전 총리는 대선이 치러지는 2007년 만 69세가 된다. 이명박, 박근혜, 정동영, 이해찬, 김근태 등 대선 경쟁 상대로 꼽히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이다. 국가 지도자의 나이가 어려지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로 볼 때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연륜에서 나오는 안정감은 노 대통령과 대비되는 고 전 총리의 장점이긴 하지만 치열한 홍보전이 벌어질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첩첩산중, 병역문제 고 전 총리가 넘어야 할 큰 산들 중 하나는 바로 병역문제이다. 군면제 처분을 받은 고 전 총리 바신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의 병역 문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고 전 총리는 1958년 서울대 재학 중 갑종(현재 1급) 판결을 받았다가 62년 병역법 개정으로 제 1보충역으로 자동 편입된 뒤 71년 고령(32세)으로 면제 처분을 받았다. 병적기록에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미하령(未下令)’으로 적혀 있다. 이에 고 전 총리는 “4·19와 5·16 군사정변으로 이어진 특수 상황이어서 많은 병역기피자들이 한꺼번에 입대하는 바람에 입영 대기 중이던 내겐 영장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62년 이후 10년간 영장이 나오지 않은 경위에 대해서 지금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또 고 전 총리의 차남은 현역 입영 판정을 받았다가 3년 후 신경성 질환으로 면제 판정을 받아 역시 논란이 되었다. 장남은 석사 장교로 6개월간의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전역했고, 3남은 단기사병으로 18개월간 복무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병역 문제에 유독 민감하다는 것은 이회창 전 하나라당 총재가 출마한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고건 전 총리에게 있어서 병역문제는 대통령 출마에 앞서 반드시 한 번쯤 짚어 볼 대목임은 분명하다. ■ ‘행정의 달인’, ‘처세의 달인’, ‘무사안일의 표본’ 고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7명의 대통령 밑에서 고위 관직에 오른 진기록의 소유자다. 총리와 서울시장을 각각 두 차례 지냈고, 최연소 도지사, 교통·농수산·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행정의 달인’이다. 관료로서 화려한 고 전 총리의 이력을 두고 일부에서는 ‘처세의 달인’ ‘무사안일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내리기도 한다. 소신파, 직언파였다면 과연 살아남았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지적이다. 본격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되면 이 대목도 적잖은 공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6.10 민주화운동 강경진압 그는 1987년 ‘6.10 민주화운동’ 당시 내무부장관이었다. 일부에서는 고 전 총리가 6·10 운동을 “야당, 일부 종교인, 좌경불순세력이 결합한 집회”로 규정, 강경 진압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명동성당 시위 등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주장했고 내 생각이 결국 6·29선언의 토대가 됐다”고 반박했다. ■ 한보그룹 수서택지 특혜분양, 고건 전 총리 개입 의혹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0년 한보그룹에 수서택지를 특혜 분양하는 과정에 당시 서울시장인 고 전 총리가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당시 고 시장이 청와대 눈치만 살피다가 당정회의, 건설부 질의, 국회 청원 등으로 시간을 끌면서 한보 로비의 불길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고 전 총리는 “특혜 요구를 거부하다가 외압에 의해 오히려 시장직에서 경질됐다”고 주장한다. ■ IMF총리, 꼬리표 고 전 총리가 97년 IMF 환란 당시 국무총리로 재직한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일부에서는 고 전 총리가 외환위기에 대해 사전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국무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주요 경제정책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왔다는 관행을 들어 사전 예방에 나서지 못한 이유를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실무적인 책임 소재의 논란과 별도로, 국가적 외환 위기 때 국무총리 자리를 제대로 수행했나에 대해선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 민주적이냐, 책임회피냐?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책결정을 본인 스스로 하지 않고, 위원회나 일회성 심사단을 구성해 결정하는 고 전 총리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비판도 있다. ‘민주적’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결단력 부족’ ‘자기 관리를 위한 책임 회피’라는 지적도 있다. 또 고 전 총리가 고위직을 두루 거쳤지만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거나 소신 있게 업무를 추진하는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뚜렷한 세력기반도 없어 고 전 총리의 또 다른 약점 중 하나는 바로 이렇다 할 세력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현직을 떠나 있는데다 알려진 대로 정당이나 조직 기반이 전혀 없다는 것은 당의 지원과 세력을 거느린 다른 예비주자들에 비해 불리한 여건이다. ‘고건 중심 정계개편론’을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신중식 의원도 고 전 총리의 조직력이 취약하다는 것에 “외견상 맞는 지적”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신 의원은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민선 서울시장 선거를 치렀고, 돈으로 움직이는 조직은 없지만 균형감각과 추진력을 갖춘 전문가와 관료그룹,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흐름이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어느 정파에도 쏠리지 않는 고 전 총리의 처신은 관료로서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지만 ‘대권’은 다르다. ‘무색 무취’하다는 고 전 총리의 이미지는 정치인으로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정치지도자로서 ‘카리스마가 없다’는 지적과도 통한다. ■ “밥상 차려주면 받아먹을 수 있는 자리 아니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1월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고 전 총리가) 다음 대선에서 후보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아무리 뛰어난 고 전 총리라 해도 경선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고 전 총리가 ‘개싸움’ 같은 현실 정치 속에 뛰어들어 ‘대선 도전권’을 따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에 높은 지지율이 더해져 외부 여건은 갖춰졌지만, 막상 고 전 총리 본인이 대권을 향한 ‘가시밭길’을 걸을 각오가 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대권은 고 전 총리가 과거 ‘추대’된 국무총리나 서울시장과는 분명 다르다는 얘기다. 피 터지게 싸워 상대를 쓰러뜨려야 올라설 수 있는 ‘쟁취하는’ 자리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비유처럼 ‘밥상 차려주면 받아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력 대선주자’로서 고 전 총리의 싸움은 기존의 정치세력 안으로 들어가는 일부터 시작될 것 같다. 고 전 총리가 현재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같은 기존 정치세력을 등에 업지 않는 한 여론조사의 지지율은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과연 ‘거품 인기’일까? ‘차기 대통령감 1위 고건’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비상한 관심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화려한 이력, 그로 인해 늘 달고 다니는 비판, ‘양지만을 쫓는 처세의 달인’, 정권의 도덕성을 불문하고 자신을 불러주는 곳을 마다하지 않았던 고건 전 총리. 2007년 대선을 치를 때면 69세가 되는 그는 일생을 전문행정가로서 살아왔고 이제 대통령으로 향한 마지막 꿈을 꾸고 있다. 국민의 부름에 앞서 국민의 심판도 앞서 받아야할 터. 그 여정이 무척이나 험난하고 멀어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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