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느냐 먹히느냐…총성없는 전쟁

산업 전반에 걸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문을 닫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꽤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진 업체로 평가받아왔던 기업들마저 유동성 고비를 넘지 못하고 워크아웃 되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런 가운데 기회를 포착한 기업도 있다. M&A(기업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온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기존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통해 제2의 도약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주요기업들과 이를 인수하려는 기업 간의 움직임을 쫓아봤다.

경기침체 속 부도기업 속출, M&A 시장은 ‘호황기’
막강한 자금력 MBK, M&A 시장 新강자로 떠올라
노웨이트, 동양건설산업 잔금 조달계획 의문 증폭
흥행여부 부정적 시각…“일단 먹고 보자는 안 돼”

최근 M&A 시장의 다크호스로 등장한 기업은 한국 최대 사모펀드업체인 MBK파트너스(이하 MBK)다. MBK는 웅진코웨이 인수에 이어 최근에는 ING생명까지 인수 목전에 와있다. 막강한 자금력 덕에 M&A 시장에서 MBK는 ‘옥션 딜(Auction Deal)의 제왕’으로 불린다.

MBK, M&A 시장의 다크호스

지난해 MBK는 웅진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자 웅진의 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집어삼켰다. 코웨이는 연매출 1조5000억원대로 웅진의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했던 알짜 회사였다.

당초 웅진은 KTB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경영권 및 매각금액 등 세부조건 등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막판에 결렬했다. 이 틈을 타 MBK가 물밑 딜을 추진, 웅진홀딩스가 보유한 코웨이 지분 30%를 1조1958억원(경영권 포함)에 인수했다.

MBK의 식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 들어서는 웅진식품, ING생명 등까지 노리고 있다. 웅진홀딩스는 삼성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지난 7월 예비 입찰한 결과 6개 인수대상자 숏 리스트를 선정했다. 인수후보자로 선정된 기업으로는 빙그레, 신세계푸드, 아워홈, SPC, 푸드엠파이어, 한앤컴퍼니 등 6곳이다.

하지만 현재 매각가가 1000억원대로 평가되는 웅진식품을 업계 불황 속에서 선뜻 인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큰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가운데 MBK가 웅진식품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또 MBK는 최근 ING생명 인수에 배타적 협상권을 획득해 인수 직전에 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ING그룹은 동양생명·보고펀드 컨소시엄에 부여했던 우선협상권을 박탈하고 MBK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는 동시에 배타적 협상권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MBK의 ING생명 인수에는 금융계에 퍼져있는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ING생명 노동조합의 반대가 적잖은 난관이 될 전망이다.

매물 많지만 성공여부 ‘미지수’

근래 M&A 시장의 매물을 보면 건설, 가전, 식음료, 해운(조선) 관련 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하반기 내 구조조정 대상 기업군에서 건설업체가 20여 곳이 선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시장에 매물로 나온 건설사의 M&A 행보도 관심을 모은다.

올 상반기내 매각이 완료됐거나 하반기 추진 중인 건설사로는 동양건설산업, 벽산건설, 쌍용건설, 범양건영, STX건설, 남광토건, LIG건설, 신성건설 등이 있다. 이중 시공능력순위 40위(지난해 기준)인 동양건설산업은 지난달 노웨이트 컨소시엄과 M&A 본 계약을 체결했다.

▲ 동양건설산업이 지난달 9일 노웨이트 컨소시엄과 인수합병(M&A) 본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은 M&A 체결 후 악수를 나누고 있는 이주원 동양건설산업 대표(왼쪽)와 이건호 노웨이트 회장의 모습이다. ⓒ동양건설산업

노웨이트 컨소시엄은 도시철도 전문 엔지니어링업체인 노웨이트와 승지건설이 각각 70%, 30% 지분으로 참여했다. 동양건설산업의 295억2900만원 규모 신주와 196억8600만원의 회사채 조달 등으로 총 인수자금은 492억15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컨소시엄은 지난달 말 200억원의 중도금을 내고 이달 안으로 잔금 243억원을 납입, 인수를 완료할 예정이다.

하지만 노웨이트가 밝힌 자금조달 계획에 의문스러운 점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건호 노웨이트 회장은 더커자산운용으로부터 200억원에 대한 출자 확약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일부 언론에서 더커자산운용이 노웨이트에 ‘투자확약서(LOC)’를 보낸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보도하면서 향후 M&A 일정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 것이다.

시공능력순위 20위(지난해 기준)인 벽산건설도 M&A 추진이 그리 순탄치 않다. 지난 2일 벽산건설은 인수합병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예정된 날(12일)보다 한 달하고 보름 뒤인 9월 말로 연기한다고 공시했다.

벽산건설은 지난해 11월 회생계획 인가결정을 받아 법원허가에 따라 경영정상화를 위한 M&A를 추진하고 있다. 벽산건설의 회생담보권은 924억원 규모로 자산매각과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창출로 담보권 변제계획을 짰다.

지난 6월 워크아웃에 돌입한 시공능력순위 13위(지난해 기준)의 쌍용건설도 이달부터 M&A를 재추진한다. 매각 주관사인 우리투자증권-삼정KPMG는 이달 초 잠재적 인수 후보들에게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에게는 한 달 가량 검토할 시간이 주어지며 이달 말 인수의향서(LOI)를 접수받을 예정이다. 이후 9월 초부터 한 달 가량 예비실사를 진행, 본 입찰은 9월 말 계획돼있다. 10월 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MOU를 체결하는 것이 쌍용건설의 목표다.

한 M&A 전문가는 “국내 건설경기 악화가 수년 째 지속되고 있어 적극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 후보가 적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쌍용건설, 벽산건설 등 인수매력이 높은 기업이지만 건설경기 침체로 M&A 거래가 흥행할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웅진그룹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웅진코웨이에 이어 추가로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 매각을 추진 중에 있으며, 동양그룹 역시 동양매직 매각을 추진 중이다. 눈 여겨 볼 점은 웅진코웨이 인수전에서 막판 고배를 마신 토종 사모펀드운용사 KTB프라이빗에쿼티가 웅진식품을 비롯해 동양매직 등 인수전에 뛰어들며 MBK파트너스와 경쟁구도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M&A 전문가도 이와 관련, “건설뿐만 아니라 산업전반에 걸쳐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기업들이 앞으로도 줄을 이을 것”이라며 “하지만 현대건설 인수전처럼 불투명한 인수자금을 통해 무조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보자는 식으로는 피인수기업을 두 번 죽이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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