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를 아시나요?

▲ 서편제가 촬영됐던 초가집
 
저 멀리 언덕에서 황톳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세 사람. 등짐을 멘 아버지를 가운데 두고 흰 저고리 검은 치마에 가방을 멘 딸과 북을 든 아들, 세 사람의 느릿한 걸음은 아버지가 선창하는 ‘진도아리랑’에 화답하는 딸의 노랫가락이 흥을 더하며 이내 활기를 띈다.

시무룩하던 아들도 언덕을 내려오면서 어느덧 힘 있게 북채를 잡는다. 언덕아래 다다라선 화면 안에 콩알만 하던 세 사람의 어깨춤이 화면 가득 덩실거린다.

93년 개봉 후 한국영화 최초로 관객동원 1백만 명을 훌쩍 넘겨버린 영화 ‘서편제’의 최고 명장면을 탄생시킨 그 곳, ‘청산도’. 하늘과 바다, 산 모두가 푸르다 해서 이름 붙여진 ‘청산도로 여행을 떠나보자.

전남 완도에서 남쪽으로 19.2km 떨어진 다도해 최남단 해역의 ‘청산도’는 5개의 유인도와 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지역으로 청산도 본도를 비롯해 여서도, 대모도, 소모도, 장도로 이루어져 있다.

바다, 하늘, 산 모두가 쪽빛

‘청산도’는 영화 ‘서편제’, TV 드라마 ‘봄의 왈츠’로, 또 오래전부터 갯바위 낚시터로 많이 알려져 왔고 이제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5월이면 청보리가 들녘을 온통 푸르게 하고 노랗게 피어나는 유채꽃은 마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 청보리의 풋풋한 향기가 전해지는 듯 하다.
완도 항에서 뱃길로 45분, 지루함이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바다 저 끝으로 등대 하나가 보인다. 바다를 딛고 서 있는 등대 뒤로 몸 전체를 온통 푸른 빛깔로 두르고 있는 섬이 바로 ‘청산도’다. 청산도는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고, 산도 파래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거기에 푸른 보리밭까지 어우러지니 온천지가 푸르름으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꼬불꼬불하게 휘어져 들어가는 마을길하며 그 길과 꼭 닮은 논밭들. 아직 섬 곳곳에 남아있는 초가집들은 청산도를 찾는 이들을 과거의 한때로 이끈다. 얼마 전까지 청산도는 한낮에도 조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무 때고 왁자하게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별로 없으니 그도 그럴밖에. 오가는 사람이라야 자식들을 도회지로 떠나보낸 늙은 부모들이 전부였다. 그런 섬으로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영화 ‘서편제’가 청산도에서 촬영된 이후부터다.

불후의 명작 영화 ‘서편제’에서 유봉일가가 진도아리랑을 5분20초에 걸쳐 불렀던 무대. 당시의 원시적이었던 황톳길은 아쉽게도 그대로 남아있지 않다.

언덕 바로 아래 당리 마을에는 유봉이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던 허름한 초가가 있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바람에 허물어져 버렸던 것을 복원해 놓았고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한 밀랍인형도 만날 수 있다.

풋풋한 보리 향기, 코끝에 ‘가득’

청산도는 일년 중 5월이 가장 아름답다. 몸을 꼿꼿이 세운 청보리가 돌담을 쌓아 둑을 올린 밭에 가득하다. 밭가에만 서있어도 풋풋한 보리 향기가 코끝에 달라붙고 ‘청산도’는 한층 더 푸르러진다. 봄이 한창인 들은 고즈넉하다. 이 들녘에 깃든 고요함이 오래도록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제주도처럼 청산도에도 돌이 많다. 돌이 많아서 논이나 밭고랑도 돌담처럼 축대를 쌓고 마을 어귀 집집마다 담장은 돌담이다. 돌담을 청산에서는 담불이라고 부른다. 대충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돌담에는 담쟁이넝쿨 등이 얽혀있어 웬만해서는 허물어지지 않는다. 요즘은 연한 순을 내밀며 돌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이 정감을 더하고 이국적인 느낌마저 든다.

▲ 지리해수욕장의 일몰
 
섬의 북동쪽 진산리에는 이곳 사람들이 갯돌이라 부르는 돌밭이 600m 정도 펼쳐져 있다. 돌을 밟을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제법 정겨워 한없이 돌밭 위를 서성이게 된다.

돌의 크기는 손톱만한 것에서부터 어른 머리만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그 색깔도 검은색 흰색 노란색 등 가지가지다. 갯돌 밭에 있으면 파도 소리와 갯돌 구르는 소리가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파도에 쓸려 나가며 돌들이 내는 ‘타다닥’ 소리가 그렇게 경쾌하고 맑을 수 없다. 바다 곁에 파도소리보다 듣기 좋은 소리가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다.

청산도에는 해수욕장이 세 곳 있는데, 모두 수온이 적당하고 경사가 급하지 않아 편안하게 해수욕을 즐기기에 좋다. 이 중 가장 유명한 해수욕장은 지리해수욕장으로, 오래된 노송들이 해수욕장 뒤로 도열하듯 서 있어 1km의 백사장을 가려준다.

이 외에도 몽돌이 깔린 진산해수욕장이 있고, 갯벌체험을 하기에 적당한 신흥해수욕장이 있다. 여름휴가철이 되면 신흥해수욕장 솔밭에서 야영도 가능하다.

또 청산도는 서남해안의 다른 섬들과 마찬가지로 낙조가 유명하다. 배편은 기후와 시기에 따라 변동이 있으므로 여객터미널로 직접 문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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