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영국·독일·프랑스 모델 분석해볼 생각”

노무현 대통령은 중미 2개국 국빈방문과 유엔 고위급 본회의 참석을 마치고 외교·안보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효율적인 정치시스템에 관한 현재의 고민을 소상하게 밝혔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에 실패한 노 대통령의 다음 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던 가운데, 영국, 독일, 프랑스의 모델을 분석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인 노 대통령의 수가 이번에는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효율적인 정치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노 대통령의 생각을 들어본다. ◆영국은 10, 15년 주기로 매듭…중미는 정체된 듯해 아쉬워 영국은 전후 노동당 내각이 너무 오래 끌고 왔을 때 정권교체를 통해 대처 시대로 오면서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그게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때 노동당이 다시 돌아와 10년, 15년 주기로 전체적으로 매듭을 짓는 결정을 해 나가는 그런 방식이 있다. 또 네덜란드, 아일랜드처럼 사회적 합의를 하는 나라가 있고, 영국처럼 한번 밀어주면 10년은 소신껏 밀고 갈 수 있도록 하는 나라가 있다. 일본과 독일은 정체했는데 독일은 이번 총선에서 뭔가 방향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중미를 둘러보면 (중미는)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이 그냥 서 있다. 작년, 중미의 어떤 나라 대통령의 개혁 이미지를 보고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봤는데 1년 지나 올해는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이 곤경에 빠져 있다는 보고서가 있더라. ◆일하는 국가와 교착상태 빠진 국가의 정치안정·경제성장 분석해 볼 것 한국은 앞으로 어디에 속하게 될 것인가, 굉장히 고심된다. 귀국하면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의 정치상황에 관한 모델을 분석해 볼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별로 착안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일을 하면서 ‘일을 하는 정권, 뭔가 추진하는 정권, 바뀌더라도 확실하게 대세를 가진 정권’이 교체되는 사회의 안정과 정치적으로 완전 교착상태에 빠져 힘이 주어지지 않고, 추진보다 견제에 중심이 있는 나라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에 관해 분석해 보려 한다. 4·30 보선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헌법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국회동의 없이 총리임명을 못하기 때문에 야당이 다수가 될 때는 당연히 총리를 내놓으라고 할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국회-대통령 갈등, 총리-대통령 대립 중 어느 쪽이 풀기 쉬운가? 국회와 대통령의 갈등·대립 상태가 풀어가기 좋은가, 총리와 대통령의 대립 상태가 풀어가기 좋은가? 예를 들어 (여당이 다수일 경우) 우리가 내각제 국가라면 국회와 맞으니 잘 가고, 대통령제에서도 그런대로 손발을 맞춰 가는데 야당이 다수가 되면 프랑스식으로 야당에서 총리자리를 내놓으라 할 수도 있고, 한국처럼 안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다. 안 내놓으라 하니 뜻밖인데, 정치에서 효율성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대립이 더 풀기 쉬울 것이냐, 아니면 총리와 대통령 사이에 프랑스 동거정부처럼 갈등관계를 갖고 가는 것, 거기에서 타협해 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냐? 아직 잘 모르겠으나 생각해 볼 문제다. ◆여야 맞서 싸워 제대로 해결한 것 있나…효율적으로 국가 운영하는 나라에 관심 내가 정치에 관해 뭔가 좀 변화를 줘 보자 하는 것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도 몇가지 정치적 사례에 대한 연구, 기초를 갖고 내놓은 것이지만 아직 완전한 결론을 갖고 있지 않다. 문제의식은 어떤 국가가 제도·문화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가 하는 데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한국정치가 지난 88년 이래 십수년 동안 국민들이 한 선거는 모두 여소야대였다. 그런데 정계개편을 통해 국회구조를 바꾸고 결단들을 내린다. 아마 중요한 결단이 있을 때는 다 여대 국회였을 때일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 때가 북방외교, 평시 작전권 환수, 소파(SOFA) 개정 등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이외에는 3당 합당이 가장 큰 결단이었다. 나는 그 결단에 결코 찬성할 수 없으나 그것 말고는 중대 결정이 별로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금융 실명제가 큰 결단이었는데 국회에서도 저항이 없었다. 국민지지도 높았고 야당도 한마디 반대하지 못할 일이라 대통령의 결정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여야가 맞서 팽팽히 싸운 것 중에 제대로 해결된 것이 뭐가 있느냐. 한국사회에서 계층 간 대립이 아주 심각한 문제이고, 부정부패와 정치 투명성은 명분에서 국민적 지지가 있기 때문에 여야의 구분이 없는데, 그것 말고 제대로 풀린 게 뭐가 있느냐. 이런 점을 곰곰이 돌이켜보고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세 및 연금개혁 어려운 과제…한국정치는 중미에 가까운가, 선진국에 가까운가? 예를 들어, 조세개혁이 필요하다고 할 때 지금 구도에서 조세개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연금개혁이 당장에는 큰 문제가 아니라 할지 모르나 지금 유럽에서는 가장 큰 문제다. 제일 큰 것이 실업연금 문제 아닌가. 조세 문제는 국민이 조세를 얼마나 더 부담할 것이냐의 문제인데 이런 근본문제에 손을 댈 수 있느냐. 지나서 생각해 보면 국가균형발전 문제는 참 과격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 문제는 국민적 지지가 아주 높은데 두번 일하고 있고, 행정수도도 두번 일하고 있다. 조세 문제 놓고 팽팽히 대결하고 있는데 어느 쪽으로든 개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대로 가는 것 외에 문제를 풀 수 없게 될 것이다. 노동 문제의 경우, 2003년 하반기에 노동 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굉장히 많았는데 하나도 못하고 있다. 쌍방 간 합의가 안 되기 때문에 줄 것도 못주고 받을 것도 못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사결정 구조, 정치구조 전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번 중미순방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구 선진국가의 수준에 가까이 가 있는지, 중미 수준에 더 가까이 있는지 많이 생각해봤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는데 그걸 풀 새로운 시스템을 갖고 있느냐, 이런 것이 우리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부분을 고심하고 있다. 중미순방 내내 이런 생각을 했고, 참모와 대사들에게 이런 점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주문을 많이 해놓고 왔다. ◆“9월 정기국회, 부동산.조세.양극화 대책 전념해야” 한편 노 대통령은 ‘효율적인 정치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번 정기국회서 부동산, 조세, 영극화 대책 등에 전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정기국회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부동산 정책, 조세문제, 양극화 극복 대책 등 중요한 정책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이를 점검하고 처리하는 데 집중하고 전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정치적 사안은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지난 21일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큰 틀에서 우리 정치문화를 고치고 정치혁신을 위한 방안모색에는 계속 중점을 두겠다”면서 “이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의식은 분열주의와 그에 기초한 대결적 문화를 극복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어 “그 사회의 문제와 과제를 풀어나가는 사회가 있는 반면에 과제를 풀지 못하고 계속 발목이 잡혀있는 사회가 있다”면서 “과연 한국이 앞으로 어떤 사회모델로 나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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