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 경영권 승계작업 분석해보니

재벌기업들의 경영권 승계작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사정칼날에 놓인 재벌 기업들이 그렇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탈세 및 횡령 등 혐의로 구속돼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 회장의 장남인 선호씨가 최근 신설된 미래전략실에 입사해 눈길을 끌었다. 한화그룹도 마찬가지다. 김승연 회장이 위장 계열사에 자금을 부당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황에서도 김 회장의 장남 동관씨는 그룹의 미래성장동력 계열사인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배속돼 초고속 황제 코스를 밟고 있다.
이처럼 근래 들어 재벌기업들이 경영권 승계작업에 속도를 내는 이유에 대해 재계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의 시대가 장기화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경영권 안정화를 통한 내부 결속력 강화를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한다.

재계 50위권 재벌 기업, 경영권 승계작업 속도
혼란 속 경영권 안정화, 내부 결속력 강화 목적
재벌그룹 오너 2~4세, 그룹 위기 때 고속 승진
평균 27세 계열사 입사, 33세 전후 임원 발탁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시스

재계 50위권 재벌 기업들은 위기일수록 후계구도를 다지거나 경영권 승계작업 속도를 빨리했다. 재계 1위 삼성그룹이 과거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매각 혐의 등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뗐을 때도 이 회장의 3자녀는 승진을 거듭했다.

재계 2위 현대·기아차그룹도 글로비스 사태와 대규모 리콜 사태 속에서도 경영권 승계작업은 꾸준히 진행했다. 이 외에도 LG, 롯데, GS, 금호, 두산, 한진, 효성 등 주요 재벌 기업들도 회사가 각종 악재더미 속에 놓였을 때 승계작업에 공을 들여왔다.

재벌 2~4세, 위기 속 고속 승진

50대 재벌기업들은 1990년 후반을 전후해 오너 2~3세가 이끌고 있다. 현재 2세들의 평균 연령대는 60~75세 사이에 있으며, 3세들은 30~40대 초중반이다.

60~75세 사이의 오너 2세가 회장으로 있는 재벌기업 중에는 삼성, 현대차, 한진, 신세계, 대림 등이 있는데, 현재 이들 기업은 3세 경영 체제를 이미 완료했거나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삼성 이건희(71) 회장의 장남 이재용(45) 부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에 의한 증여 및 경영권의 변칙상속, 불법대선자금, X파일 사건 속에서도 승진을 거듭, 지난 2009년 삼성전자 COO(부사장)에 오른 뒤 현재 삼성전자 부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정몽구(75) 회장의 장남 정의선(43) 부회장이 제2의 에버랜드 사태로 불리는 현대글로비스 사태 속에서도 승진을 거듭, 지난해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글로벌경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신세계그룹 이명희(70) 회장의 장남 정용진(45) 부회장, 대림산업 이준용(75) 회장의 장남 이해욱(45) 부회장 등이 경영권 승계를 완료했다.

후계 선별작업을 벌이고 있거나 경영권 승계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들어서 있는 재벌기업도 있다. 한진그룹이 대표적이다. 한진은 최근 ‘컵라면 사건’ ‘대한항공 비상착륙’ 등 각종 악재 속에서도 조양호(64) 회장의 장남 조원태(39) 부사장을 지난 17일 화물사업본부장까지 겸임하도록 해 눈길을 끈다. 재계에서는 한진의 경우 조 회장이 아직 나이가 젊은(?) 만큼, 조 부사장의 누나인 조현아(40) 대한항공 기내식기판사업본부 본부장과 동생 조현민(30)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상무에게도 경영권 승계에 대한 기회를 골고루 줄 것으로 보여, 최종 경영권 승계까지는 아직 이르다고 평가한다.

효성그룹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효성은 조석래(68) 회장의 세 아들 중 차남인 조현문(44) 효성중공업PG 사장이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장남 조현준(45) 효성 사장과 막내 조현상(42) 효성 부사장의 막판 경합이 예상된다.

이들 외에도 재계 최고령 기업인 두산그룹은 박정원(51) 두산건설 회장이 (주)두산 지주부문 회장으로 올라섬에 따라 4세대 경영권 승계 완료 단계에 와 있다. 현재 그룹 회장은 박정원 회장의 숙부인 박용만(57) 회장이 맡고 있다. 재계에서는 두산가의 상징인 ‘형제 경영’이 박용만 회장을 끝으로 마무리되면서 향후 박정원 회장을 시발로 ‘사촌 경영’ 체제로 돌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또 오너 3~4세들이 경영 수업을 받고 있거나 갓 들어간 재벌기업도 있다.

이중 특히 CJ그룹은 이재현(53) 회장이 횡령 및 탈세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이 회장의 아들 선호(23) 씨가 최근 지주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재 그는 조직개편으로 신설된 미래전략실에서 근무 중이다.

한화그룹도 위장 계열사에 자금을 부당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현재 구속집행정지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승연(61) 회장의 장남 동관(30) 씨가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그는 2010년 차장으로 입사해 현재 그룹 미래성장동력원인 한화솔라원의 기획실장으로 근무하며 실력을 쌓아가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눈에 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62) 새누리당 의원의 장남 기선(31) 씨가 최근 현대중공업의 부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2009년 현대중공업 재무팀 대리로 일하다 돌연 그해 유학길에 올랐다.

이들 외에도 LG가 4세이자 후계자인 구광모(35) 씨가 2011년 차장 승진 뒤 올 초 부장 승진했으며, 금호 박삼구(68) 회장의 장남 세창(39·금호타이어 부사장) 씨, 동양 현재현(64) 회장의 장남 승담(33·동양네트웍스 대표) 씨, 동부 김준기(69) 회장의 장남 남호(38·동양제철 부장) 씨 등이 2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입사한 뒤 고속 승진을 거듭해 오고 있다.

▲ (시계방향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구광모 LG전자 부장, 김동관 한화솔라원 기획실장, 이재현 CJ 회장 아들 선호씨, 현승담 동양네트웍스 대표,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뉴시스

새정부 제도적 압박에 조기세습?

이처럼 재벌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분석해보면 오너 2~3세들은 평균 27세에 계열사에 입사해 33세 전후에 임원이 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회사가 각종 악재 속에 있을 때 이들의 승진 속도는 빨라졌다.

올해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골목상권 진출 규제, 세무조사 등 각종 제도적 압박이 심화됨에 따라 경영권 안정화에 공을 들이는 재벌기업들이 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오너형 재벌기업들은 정치와 여론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금처럼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이 강한 시대 상황에서 후계 구도를 공고히 함으로써 내부 결집력을 강화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가 재벌기업들에 대한 편법 상속과 탈세를 강화하고 있어 재벌기업들로서는 예전처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재원 마련이 쉽지가 않게 돼 제도가 굳어지기 전에 경영권 승계를 조기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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